결혼식 날을 받자마자 미장원 가서 긴 생머리 싹둑 자르고 파마를 했다. 그 후 길면 긴 대로, 짧으면 짧은 대로 20여 년을 볶았더니 머리카락이 푸석푸석하니 몸서리를 치는 것 같았다. 핑곗김에 남자처럼 쇼트커트를 했다. 쇼트커트도 제때 잘라줘야 모양이 사는데 차일피일 미루다 보면 어느새 단발머리가 되었다.
그러고 보니 나는 반 곱슬. 파마하지 않아도 쳐지지 않고 아직 염색도 안 해 그저 일 년에 몇 차례 미장원 가서 조금 자르고 다듬어만 주면 된다. 파마, 염색, 코팅 등으로 미장원 출입이 잦은 한 지인이 백만 달러짜리 머리라며 치켜세운다. '아 그런데 그 돈 다 어디 간 거예요?' 혹은 '미장원 안 가서 부자 된 사람 못 봤네요.' 웃으면서 받는다.
요즘 같은 개성 시대에 헤어스타일로 미스와 미세스를 구분하는 것 자체가 뒤떨어진 생각 같다. 적지 않은 나이인데도 긴 머리를 고수하는 분이 내 주위에도 더러 있다. 잘 관리한 긴 머리로 나이보다 젊어 보이는 모습이 참 보기 좋다.
하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지, 몸에 노화가 오듯 머리숱도 줄고 탄력도 없어져 후줄근해진 머리칼 길게 늘어뜨리고 다니기는 쉽지 않다. 이럴 때 많은 주부가 손질 편하고 머리도 풍성해 보이는 파마를 선택한다.
드라이어로 웨이브를 자연스럽게 만들고 헤어롤로 볼륨을 넣으면 조금 더 단아해 보인다. 반 곱슬머리인 나도 드라이어로 손질을 하고 시간에 쫓길 때는 헤어롤 몇 개 말고 외출할 때도 있다. 차에서 내리기 전에 꼭 빼야지 다짐하지만, 깜빡하기 십상이다.
어느 주일날 교회 파킹장에 내려 걸어 들어가는데 뒤따라오던 남자분이 머리 뒤에 뭐가 묻었다든가 뭐라고 하는데 아차차 싶었다. 함께 걸어가던 아무 죄 없는 남편만 원망스레 쳐다봤다.
얼마 전 유학 온 딸을 만나러 LA에 와 있는 친구와 점심 약속이 있었는데, 머리에 말아놓은 구리뿌 빼는 것을 깜빡하고 코리아타운 오는 기차를 탔단다. 우리 엄마 세대나 사용하던 구리뿌라는 말이 새삼스러웠다. 문제는 기차 타고 오는 동안 아무도 구리뿌 매단 것을 말해주지 않더란다. '당연히 안 하지, 남의 일에 참견하지 않는 것이 미국식이잖아!' 좀 아는 척을 했다.
구리뿌가 일본말 같아 가까운 몇 분에게 한국말로 뭔지 아느냐고 물었는데 아는 사람을 아직 만나지 못했다. 며칠 전 아는 집사님이 '찍찍이'라는 말을 사용하길래 혹시나 해서 찾아봤더니 이것도 정확한 표현은 아니었다.
헤어롤, 헤어구르프, 헤어찍찍이, 모두 헤어가 붙어있는 것을 보니 순 한국말은 없어 보인다. 무슨 이름으로 불리든, 화장대에 있는 듯 없는 듯 제 역할을 감당해 내던 헤어롤이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대행 덕분에 세상 밖으로 나왔다.
분홍색 헤어롤이 달려있던 그 자리가 머리 전체 모양에 미치는 영향력을 대부분의 여자는 알고 있다. 늘 미용사한테 맡기는 사람은 경험하기 힘든 소박한 일상 속의 미용 도구 헤어롤. 어쩌다가 깜빡하고 매달려 있어도 핑크빛 웃음 지을 수 있을 것 같다.
미주중앙일보 < 이 아침에> 2017.4.3 지면
여성분 들의 어휘가 묻어나는 이야기?
잘 헤아려 읽어 보았읍니다
재미 있는 시 한편 읽기..
수박 윤문자(1941~)
나는 성질이
둥글둥글하다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허리가 없는 나는 그래도
줄무늬 비단 옷만 골라 입는다
마음속은 언제나 뜨겁고
붉은 속살은 달콤하지만
책임져 주지 않는 사람에게는
절대로 배꼽을 보여 주지 않는다
목말라 하는 사람을 보면
가슴이 아파 견딜 수가 없다
겉모양하고는 다르게
관능적이다
나를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면
오장육부를 다 빼 주고도
살 속에 뼛속에 묻어 두었던
보석까지 내 놓는다
이 시는 직선적이라 할까. '무엇은 어떠하다'라는 문법을 반복적으로 전개해가니 처음 시를 쓰는 이들이 한번 사용해 볼 만한 기법. 그러나 이 시는 그러한 단계를 넘어 감동을 자아내고 있으니 기법으로 그리 단순한 것만도 아니다. 수박이 의미하는 바의 속성을 내 삶과 연관시켜 생의 본질을 관통하는 것. 아직은 수박을 논하기 너무 이른 절기. 그러나 요즈음 제철이 어디 있고 제철 아닌 게 또 어디 있단 말인가. 딸기도 사시사철. 귤도 주구장창. 그러니 수박도 언제나 덩그러니 배를 내놓고 진열대에 놓여 있을 수밖에는. 그래서 그리하여 그렇게 수박은 항상 주빈의 위치에 보무도 당당히 우리에게 오고 또 온다.
이 시는 우화처럼 읽히는 재미가 있다. 백지 한 장을 주고 자신을 소개하라는 교수님 말씀에 이 시를 썼다는 시인의 말. 그러나 시를 쓰게 된 배경과 과정은 절대 중요한 게 아니다. 요는 감동. 감동을 주어야 하느니. 감동 없는 시가 난무하고 무미건조한 언어들이 활개를 치는 때에 이렇게 단순한 듯 정감 있게 다가오는 시의 힘이라니. 꾸밈이나 재주 없이 시가 우릴 이끈다. 이 시는 기본에 충실한 바, 그건 의인화와 비유의 원리. 이 시가 기댄 곳은 바로 그곳이다.(해설·한남대 국어국문창작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