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 뜬금없는 카톡이 왔다. 남편들이 같은 그룹 계열사 주재원이라는 인연으로 안면 정도 있는 명주네 부부. 미국 여행길에 서부 쪽도 들를 예정이니 얼굴이나 한 번 봤으면 좋겠단다. 매사 반듯한 느낌의 명주 엄마가 떠올라 '우리 집에 짐 부려놓고 여행 다니도록 하세요'라는 말이 그냥 나오고 말았다. 음식 챙기고 차편 제공하는 일로 인해 우리의 일상에 다소의 차질이 생겼지만, 조금의 수고로 짧은 인연 길게 이어진 꿈 같은 며칠이었다.
그때 이웃으로 지낸 분 중 영국에 눌러앉은 가족들의 근황이 고향 소식 전해 듣듯 반가 웠다. 그런데 대화의 내용을 가만히 되짚어보니 어른들에 관한 소식은 간단한 안부 정도이고 어느 댁 아들 혹은 딸은 무엇을 전공하고 직장은 어디고 어느 나라 배우자를 맞았고 혹은 사귀고 있다는 등등. 자녀들 소식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는 게 아닌가. 부모 인생에 자녀가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큰지 모르는 바 아니지만, 우리 존재는 어디 갔나 싶은 쓸쓸한 생각이 잠시 스쳐 지나갔다.
카톡 프로필 사진을 보다 보면 자신을 넘어선 듯한 존재 앞에 웃음이 날 때가 있다. 아들 딸은 그렇다 치고, 손주가 자신의 프로필 사진에 올라와 있는 경우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명주 엄마의 카톡 프로필 사진 역시 첫딸인 명주가 낳은 첫 외손주이다. "손자 사진 봤어요" 했더니 배시시 웃으며 백일 지났는데 너무 보고 싶단다. 런던 한 초등학교 한국어 교사로 일하며 보람도 있고 수입도 괜찮았는데, 베이비시트 구하기도 쉽지 않고, 있어도 너무 비싸고, 손주를 봐줘야 할 것 같아 일을 내려놓았다며 아쉽다고 한다.
자녀가 결혼한다고 부모 역할 끝나는 게 아닌 당면한 현실부터, 남편들끼리 공유하는 케케묵은 옛 직장 이야기까지 대화의 소재가 참으로 다양하다. 또한 유튜브를 TV로 연결해 방탄소년단, 복면가왕, 불후의 명곡, 남한예술단 북한공연까지 한국 노래에 심취해 따라부르기도 하며 분위기가 무르익어가던 중 명주 엄마가 던지는 한마디 "여긴 북한사람 얼마나 돼요?"
갑자기 말문이 막힌다. "북한 사람? 글쎄…북한 사람인 줄 알고 본적은 없네요" 했더니 런던에는 칠팔백 명의 북한 사람이 산단다. 문제는 북한에서 바로 망명한 부류와 중국과 한국에서 살다가 망명한 부류로 편이 나누어져 자기들끼리 진짜니 가짜니 언쟁을 하게 된 모양이다. 이런 사실을 영국 정부에서 알게 되어 요즘은 북한사람 망명은 잘 안 받아준다고 한다.
북미회담의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변화의 물결이 어떻게 흘러갈까, 모든 게 미지수인 시점에 듣는 북한 사람 이야기. 같은 조상을 가진 형제자매인 줄 이제야 안 것처럼 안타까운 마음으로 듣는다.
어떤 연유로든 남의 땅에 뿌리를 내리기로 결단하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한곳에 잘 정착한 후 어렵게 용기 낸 여행길이 그래서 남다르게 느껴진다. 20여 년 전 꿈처럼 떠나온 땅에서 어렴풋이 알던 사이로 만난 명주네 부부. 우리 이십 년 후에도 만날 수 있을까, 그 말을 하며 함께 웃었다.
미주중앙일보 <이 아침에> 2018년 6월 14일
별별 다방 홍 여사와 함께하는 고민상담 !
욕심 많은 아내와 함께 살기가 힘듭니다
저는 63세 남자입니다.
평생 다니던 직장에서 퇴직하고, 바로 재취업하여 몇 년 일하다가
이번에 또 쉬게 된 사람입니다.
1남2녀의 자식들은 다 결혼했고
같이 사는 건 아내뿐입니다.
그런데 아내가, 저를 마음 편히 지내게 가만두지를 않습니다.
아내는 왜 그렇게 욕심이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제 생각에는, 아내와 제가 꾸려온 인생이 그럭저럭 성공한 편이고
매사에 감사하며, 이제는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살 때입니다.
그런데 아내는, 자꾸 뭐가 필요하다, 우리한테는 뭐가 없다, 나는 이런 걸 못하고 있다,
이런 소리를 하며 스스로를 포함해서 주변사람까지 채찍질합니다.
제가 퇴직할 때도, 하루라도 더 쉬면 큰일날 것처럼 초조해했고
자식들문제에 있어서도, 흘러가는대로 두지 못하고, 불만이 많습니다.
아내가 말하는 여유로운 노년에는, 훨씬 더 많은 돈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현재진행형으로 돈을 벌어들이는 남편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저는 지쳤습니다.
일을 재미로 하고 싶지, 의무로 하고 싶지 않습니다.
아내는 저에게, 놀면 뭐하냐, 놀면 남는 게 뭐냐고 하는데
저는 노는 게 아니라 쉬는 거고,
더 이상 뭔가를 남기기 위해 아등바등 살고 싶지는 않습니다.
남자는 일을 해야 안 늙는다는 말도 듣기 싫습니다.
돈을 벌 때와 못 벌 때 대접이 백팔십도 달라지는 것도 참 인간적으로 싫습니다.
실은 이번에 제가 다니던 직장을 또 그만두게 되었는데
그게 제 자의로 선택한 것도 아니고,
회사의 사정상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도, 아내의 눈치가 보이고, 마음이 불편하니 어쩌면 좋습니까?
처음엔 아무 말 없던 아내가 나날이 까칠해져 갑니다.
그러다가 며칠 전부터 제가 인문학 강좌를 듣고 다니는 걸 보고 화를 냅니다.
나 같으면 그럴 시간에 일이나 구해보겠다 소리를 기어이 합니다.
제가 왜 그래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왜 일 못 해 환장한 사람처럼 살아야 합니까?
이 나이에.
평생 열심히 벌어주면 늙어서 당당할 줄 알았는데
벌다가 안 버니 눈칫밥이 보통이 아닙니다.
욕심 많은 아내와 살기가 너무 힘듭니다.
댓글
jim*****그게 싫다면 집을 나가라고 하시던지요. 나가서 뭐를 하라고.
한숨만 나옴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