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선택한 길이지만, 과제가 만만찮았다. 당장 해결하지 않으면 곤란한 일 외에는 사무실 일도 집안 살림도 뒤로 밀쳐 놓았다. 문학 행사 참여도 친구들과의 모임도 최소화했다. 연방세무사. 세무회계 관련하여 관심이 있었지만 그저 생각뿐이었다. 언젠가 주변에 마음을 비쳤더니 '이제 해서 뭐할 건데?'란다. 응원한다고 해도 사실 엄두가 나지 않는 일이라 마음을 접고 말았다.
그런 나를 자극한 것은 우연히 눈에 띈 한 편의 시다. '해서 뭐할 건데?'에 대한 답을 이 시 속에서 발견한 것이다. 미주 시인 변재무 선생의 '그의 길'이라는 시 전문이다.
내 친구 백영태씨는/ 73세에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다/ 그것도 시험이 어렵다는 캘리포니아에서/ 열한 번 떨어지고 열두 번 만에 붙었으니/ 주위 사람들이 놀랄 수밖에/ 그의 용기와 도전정신에/ 모두 박수를 보낸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수군거린다/ 이제 그는 어떻게 할 것인가/ 그 나이에 그가 할 일이 있을지/ 말들이 많다/ 말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말만 할 것이고/ 그는 분명/ 그의 길을 가고 있는데.
실력은 아니지만, 정신이라도 흉내 내고 싶어 일단 세무사 반에 등록했다. 하지만 작년에 잡아놓은 여행 스케줄, 미국 여행길에 머물게 된 친구 부부 등, 수업에 충실하기 어려운 상황이 줄을 이었다. 마음의 여유를 갖고 차근차근 가야겠다 싶어 시간 날 때마다 책과 태블릿을 들고 공부에 집중할 장소를 찾아다녔다. 하지만 머리도 눈도 영어도 따라주지 않는다는 것, 인정하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장애를 뚫고 일사천리이면 얼마나 좋을까. 첫 과목 첫 시험부터 낙방했다. 성적도 바닥을 기었다. 아득했지만 마음을 추슬러 다시 시작했다. 그리고 홀가분한 오늘을 맞았다.
시험에 모두 통과했다 하여 뭘 좀 아느냐,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알수록 모르는 게 무궁무진 많다는 것을 절감할 따름이다. 어쨌든 세무 회계뿐 아니라 재정 부동산 전문가 칼럼도 신경 써서 읽게 되는 것과 아주 조금씩 이해의 범위가 확장되어 가는 기분, 정말 그만이다.
시험장 안에 들어오고 나갈 때의 공항 검색대 저리가라인 철저한 몸수색, 긴장감 가득한 시험장 안의 컴퓨터 자판 두드리는 소리, 수험자들의 가느다란 한숨 소리, 시험 시간이 모자랄까 봐 화장실 가는 시간 아끼려 물 마시는 것도 삼갔던 일, 시험을 다 치르고 나오면 즉시 합격 불합격의 결과가 프린트되어 나오는데 그 순간의 가슴의 콩닥거림, 그 모든 일들이 뿌듯한 추억으로 남는다.
요즘 왜 글 안 쓰세요? 물어 준 몇 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정말 오랜만에 밀린 글 좀 쓰려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글 쓰는 것을 보류해야 할 상황에서는 글 소재가 수시로 날 찾아오더니 막상 쓰려니 어디로 다 숨어버린 것 같다. 불을 지피는 데 시간이 걸리겠지만, 내 속의 말을 받아줄 하얀 백지(화면)를 보니 반갑고 설렌다.
아무튼 때늦게 혹사당한 머리와 눈을 위해 신선한 기운 가득한 어디 좀 떠나고 싶은데 '우리도 좀 봐주세요' 밀쳐 놓은 일들이 호소의 눈빛을 보내고 있다.
아, 놔~
미주 중앙일보 <이 아침에> 2018.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