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2003.07.12 16:44

"정말 충분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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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은 아래 5번 "한번만 기회를 주신다면" 의 연속편입니다.)


암 선고 받은 후 이 땅에 살아있을 수 있는 기간이 6개월 남았다는 그분의 마지막 장소가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병원문을 들어섰다.  열흘 전 나의 집에 들어설 때의 그 환한 웃음으로 그는 나와 남편을 반겼다.

처음부터 뼈만 앙상하게 남은 모습을 보아서 인지 그 모습 그대로 그 사람 이려니 싶어 웃는 모습만으로도 희망이 있는 듯이 보였다. 처음 만난 그 부인의 당차 보이는 첫인상 뒤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슬픔이 온몸을 감싸고 있었다.  오십도 채 되지 않은 남편을 어떻게든 살려보려고 물설고 말설은 멕시코 병원에 앉아 있는 그녀의 참담한 눈동자에 가슴이 저렸다.

난 한국서 그 환자를 간호하러 온 남편친구와 그리고 환자의 부인을 위해서 준비해간 전기장판, 라면 그리고 몇 가지의 밑반찬을 내려놓았다.  나의 손을 잡고는 “어떻게 말로 할 수가 없네요..고마워서..”한마디 간신히 뱉은 그녀의 힘겨운 목소리가 허공에서 맴돌았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외국 나들이하는 그 부인을 위해서 한국에서 또 다른 한 친구분이 따라왔는데 일단 한국 돌아가야 된다며 우리보고 LA공항까지 데려다 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미국비자를 소유하고 있는 그 친구라는 사람이 멕시코 국경선에 있는 이민국 심사를 마치는데 무려 5시간이 걸려 밤 9시반 에서야 미국땅을 밟을 수 있었다.  자정에 출발하는 비행기시간에 맞추느라 남편은 오는 잠을 쫓아가며 있는 힘을 다해서 LA공항으로 달렸다. 비행기 출발 30분전에 도착하여 미친듯이 달려들어가는 그를 전송하고 집에 돌아오니 새벽 1시가 넘었다.

집에 오자마자 남편과 난 쓰러지듯이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집으로 오긴 했지만 환자의 상태가 아무래도 걱정이 되었고 그리고 그 부인의 넔 나간 모습이 자꾸만 떠올랐다.  도무지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리고 오후에 전화를 받았다.  보름 동안의 입원을 예약하고 들어갔는데 열흘만에 병원 측에서도 더 이상 할 것이 없다며 퇴원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간이 전혀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와 남편은 또 다른 방법으로 말기 암환자를 치료하는 병원이 있으니 한번만 더 해보면 어떻겠냐고 말했다.  아니라고 그냥 마지막 정리를 해야겠으니 한국으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환자나 부인 두 사람 다 완전히 포기한 상태였다.  돈이 엄청나게 많다는 그들 부부에게 더 이상 돈이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리고 오늘(7월12일)
한국에 잘 도착했다고….비행기 안에서 복수가 흘러 고생했으면 내리자마자 응급실로 가서 조치를 했고 이제부터 삶을 정리하게 된다며…그렇게 되었다며.. 남편친구에게서 이멜이 왔다.

열흘 전 우리 집에 들어설 때 그리고 그저께 병원에서 그는 아주 편하게 웃었는데...
교회 가기 전 나의 집 소파에 앉아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는 교회라 떨린다며 겸연쩍게 웃던 모습이 자꾸 생각난다.

늘 살아갈 앞날만 준비해오던 난 어떤 순간이 오더라도 “정말 충분했어..”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제대로 살았는지 돌아보았다.  어떻게 살면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우린 얼만큼 더 남은 걸까?

2003년 7월 12일



* 그분은 한국으로 돌아기신 이틀후 돌아가셨습니다.

한국일보 문인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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