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2012.03.20 07:48

시(詩)가 흐르는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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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다녀왔다. 역시 지하철은 빠르고 편했다. 지하철 주변에는 갈 때마다 새로운 광경이 나의 눈길을 붙잡는다. 안전사고를 위해 철로변을 모두 창문으로 가려 놓았을 때도, 바퀴 달린 가방을 굴릴 수 있도록 에스컬레이터를 설치했을 때도 그리고 간이 도서실을 만들어 놓았을 때도 나는 감격했다.

지하철뿐만 아니라 가는 곳곳마다 사람을 배려하는 작은 생각들을 만날 수 있다. 은행은 연세 드신 어른들을 위해 돋보기를 구비해 놓았고 공원은 걸으면서 발 마사지 효과를 볼 수 있도록 갖가지 예쁜 돌로 산책로를 꾸며놓았다. 안전과 편의를 고려하는 생각의 변화가 마음에 와 닿고 삶의 여유가 느껴졌다.

이번에 새롭게 나의 눈길을 끈 것은 길가나 건물 안 곳곳에 한국의 봄을 더욱 화사하게 수놓은 꽃송이들이다. 연산홍과 진달래와 찔레꽃의 좋은 점을 빼온 듯 그 화려함이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곱고 아름다웠다. 몇 사람에게 물었지만 정확하게 이름을 아는 이는 만나지 못했고 아마도 연산홍의 개량종일 것이라는 친정언니의 말이 그나마 신빙성이 있어 보였다.

그러나 이렇게 눈부신 꽃보다도 더욱 나의 눈을 번쩍 뜨이게 한 것이 있었다. 지하철 철로변을 따라 설치해 놓은 창문에 새겨져 있는 시들이다. 기차를 기다리느라 서 있으면 절로 눈에 들어오는 시들은 대부분 짧고 간결했다. 시에 대한 각별한 조예가 없더라도 편안하게 읽히는 시들이 주류를 이루는 것 같았다. 널리 알려진 시인의 시도 있지만 생소한 이름들이 더 많았다.

누가 아이디어를 낸 걸까. 시행에 들어가기까지 시련은 없었을까. 얼마만큼 자주 새로운 시로 바꾸는 걸까. 전시되는 시를 어디서 선정하는 걸까. 이런저런 상상도 하면서 시를 읽는 쏠쏠한 즐거움을 만끽했다. 지하철을 타러 갈 때마다 오늘은 어떤 시를 만나게 될까 설레었다. 관심을 가지고 주변을 둘러보니 철로변 창문뿐만 아니라 마주보는 벽에도 시가 흐르고 있었다.

“내 시를 읽어준 친구들아, 나는 아직도 작고 아름다운 것에 애태우고 좋은 시에 온 마음을 주는 자를 으뜸가는 인간으로 생각하는 멍청이다. 그럴듯한 이유를 만들어 전쟁을 일으키는 자, 함부로 총 쏴 사람을 죽이는 자, 도시를 불바다로 만들겠다면서 부끄러워하지 않는 자가 꽃과 나비에 대한 시를 읽고 눈물 흘리겠는가, 노을이 아름다워 목적지 없는 여행에 나서겠는가. 시인이 모든 사람 위에 선다는 말이 아니다. 시가 위에 선다는 말도 아니다.

나는 단지 자주 시를 읽어 넋 놓고 꿈꾸는 자가 되어 자연과 인연을 노래하며 즐기는 고결한 영혼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여태껏 성심을 다해 시를 써왔다고 말하고 싶을 뿐이다. 세상적 성공과 능률만 계산하는 인간으로 살기에는 세상이 너무나 아름답고, 겨우 한 번 사는 인생이 너무 짧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꿈꾸는 자만이 자아(自我)를 온전히 갖는다. 자신을 소유하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시를 읽는 당신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라고 한 마종기 시인의 말을 상기해 본다.

서울에 흐르는 시의 물결이 한국 전역을 첨벙첨벙 적시고 한국어로 시를 쓰고 시를 읽는 세계에 흩어져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로 철철 흘러들 것 같다.



2011.5.28 미주한국일보 -살며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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