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민희 / 재미수필가
올림픽라이온스 클럽에서 2019-2020년 회장 취임식이 있었다. 제45대 류동목 회장이라고 한다. 45대라니. 짧은 이민 역사에서 45명의 회장을 배출시킨 단체가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한 단체가 반백년 동안 변함없이 지속되어 왔다는 사실도 놀랍고 그 단체를 유지시키는 힘이 바로 봉사(We Service)라는 명제도 놀랍다.
회원과 초대 손님 등 약 200명의 인원이 넓은 홀의 테이블을 꽉 채웠다. 초대 회장 부부가 손을 잡고 입장하는 것으로 식은 시작되었다. 그 뒤로 전직 회장부부가 긴 세월 어느 지점에서 역할을 했는지 연도수가 적힌 휘장을 두르고 줄줄이 입장한다. 희끗희끗한 머리카락의 행렬이 한 해 두 해 지나간 역사의 무게를 보여준다. 그 모습이 피워 올리는 아우라, 동고동락하며 나누었던 사랑과 우정이 박수를 보내는 회원의 마음을 자부심으로 그득히 채워준다.
올림픽이라는 단어는 한인 사회에서 가장 가깝고 익숙한 단어다. 올림픽 길을 중심으로 한인 상점이 늘어서 ‘코리아타운’이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부산까지의 거리보다 스물다섯 배나 먼 곳, 서울에서 비행기로 열 세 시간을 날아가야 도달할 수 있는 곳이 엘에이다. 이 낯선 땅에서 상권을 이루고 우리의 문화를 이어가는 ‘코리아타운’은 그야말로 한국인의 무서운 집념과 땀방울이 만들어 낸 작품이다. 그 작품의 많은 주역이 바로 올림픽 라이온스의 회원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올림픽라이온스는 한인타운을 이루어 한인 경제의 기틀을 세우고 외로움과 향수를 달래어 준 고마운 이민 선배들, 한인타운에 대한 애착과 사랑의 역사가 누적된 사람이 많이 모인 단체다.
오늘의 이 행사를 위해 멀리 한국에서도 축하객이 왔다. 자매 라이온스인 청주의 상당라이온스와 마산의 무학라이온스 회장단이다. 두고 온 고국을 위한 사랑의 실천을 함께하는 파트너다. 상당과 무학라이온스는 올림픽라이온스에서 제공하는 각막의 통관과 안전한 수송은 물론 저소득 시각장애인을 발굴하여 수술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시각 장애인을 위한 무료 각막 이식 사업은 2006년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얼마나 뿌리가 깊고 열매가 풍성한 사업인지 마음이 숙연해진다. 국경을 초월하여 인류를 위한 봉사를 함께하는 세 단체의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다.
여러 단체에서 온 축하객의 축사와 덕담, 새 회장의 취임사 등 모든 공식 행사가 끝나자 축가 순서가 되었다. 미 8군에서 활약했던 가수 K 입니다. 사회자의 소개 멘트에 맞춰 고개를 꾸벅하며 등장하는 청바지와 하얀 티셔츠, 모자를 쓴 모습이 낯익다. 아, 하는 탄성과 함께 반가움이 수군수군 여러 테이블에서 흘러나온다. 1980년대 한인타운에서 가장 유명했던 Y 중국식당. 지금은 비록 주인은 바뀌었지만 아직도 그 자리에 그대로 버티고 앉아 이민 초창기의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중국식당의 그 시절 안주인이다.
이미자와 나훈아, 하춘하, 김수희, 조용필 등의 가수가 ‘교포 위문공연’이라는 이름으로 들락거리던 그 때. 한인타운 가까이에 있는 윌셔이벨극장에서 공연이 있는 날은 고국의 바람이라도 마시려는 듯 교포들은 하루 일과를 마친 피곤한 몸으로 몇 시간 운전을 하며 몰려들었다. 그런 목마름이 있는 때에 한국에서 활약한 가수가 무대를 설치하고 노래를 불러 주었으니 얼마나 고마웠던지. 그곳은 사업가들의 사랑방이었다. K가 부르는 노래에 맞춰 마음껏 노래를 부르며 향수를 달래는 손님이 많았다.
이제 30여 년이 지난 지금 추억의 재소환처럼 그녀가 나타났다. 여기저기에서 부인들이 다가가 부둥켜안는다. 함께 고생하며 서로를 위로하던 그때의 기억을 주고받으며 눈물을 훔치기도 한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왔을까. 우리가 디디고 온 세월이 휘장을 두르고 입장하는 전직 회장의 행렬처럼 머릿속에서 줄을 선다. 많은 직원을 거느리고 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녀도 그때 만난 그 사람 앞에서는 이민 초년생이 된다. 걸치고 있는 장식을 모두 벗어던지고 벌거숭이가 되어 서로 껴안는다. 옮겨진 삶의 뿌리를 조심조심 내리고 가꾸고 피워 올리던 시절이 있었건만 이제는 두고 온 고국을 도와줄 만큼 성숙했다. K도 올림픽라이온스도 이민 역사의 자랑스러운 주역임을 자부하고 있을 터. 그들이 엮어갈 또 다른 45년에 축복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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