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난 사람, 남은 사람

2024.08.13 14:15

성민희 조회 수:17

 

 

떠난 사람남은 사람

 

 

의사의 판단은 정확했다이번 주를 넘기지 못 할 거라는 말과 함께 임종예배를 드린다는 기별이 왔다아직도 60대 초에 머무른 나이 덕분일까유방암이 폐로 전이되어 죽음을 대면했는데도 하얀 얼굴에 불그스레 볼연지를 한 모습이 참 곱다샤핑을 가자고 손을 끌면 하이힐을 신고 따라 나설 듯 밝은 표정이다이제 곧 만나게 될 그분과 어떤 교감이 있었기에 저토록 평안한가침대 헤드보드에 등을 기대고 한 사람 한 사람 껴안으며 안녕을 한다영원한 이별이다내 손을 꼭 잡고는 멋도 많이 부리고 재미있게 살라고 한다.

 

벽에 머리를 기대고 훌쩍이는 그녀 딸의 어깨를 안아주며 말했다모두가 가는 길너 엄마는 조금 일찍 가신다고 생각해라그동안 고생 했는데 이제 하나님 품에서 편안할 거라는 마음으로 보내드리자저도 그렇게 생각해요그런데... 보고 싶을 때 볼 수 없을 거라는 사실이 슬퍼요그래그래그립다는 거그거 참 슬픈 거지.

 

오늘은 친구 어머니의 임종 예배를 드렸다의사 진단에 따라 보내드리기로 했다이 예배를 끝으로 산소호흡기는 제거되고 어머니는 영원히 가신다구순을 넘긴 여린 몸이 폐렴과 싸우느라 얼마나 힘이 드셨을까오랜 세월을 견뎌온 몸이 녹아내린 듯 하얀 시트에 파묻혔다친구는 어머니의 귀에 대고 있는 힘을 다해 말했다. “엄마무서워하지 마엄마 혼자 가는 게 아니야예수님이 마중 나오실 거야.” 어머니의 뺨에 얼굴을 갖다 대는 친구의 어깨가 들썩였다울 엄마는 참 무서움을 많이 타는데... 가느다란 말소리가 흐느낌에 묻혔다.

 

두 사람이 떠났다꽃망울 몽실몽실 부끄럽던 장미가 환하게 꽃잎을 피우더니어느새 꽃잎파리 바람인 듯 한 잎 두 잎 날리고는 떠났다허공에 덩그라니 잔상만 남기고 갔다행여 외로울 땐 가슴 밑바닥에서 어른거리는 안개로만암만 손을 뻗어도 잡히지 않을 그리움으로만 존재하는 존재가 되었다그녀가 이 세상에서 사라졌다입던 옷도 신발도 웃음소리도 냉장고 여닫는 소리도 모두 그대로 있는데 그녀만 사라졌다그런데도 세상은 아무 일 없다는 듯 해가 뜨고 해가 진다함께 옛날을 추억하고 나누던 사람을 다시는 볼 수 없는데도곁에서 없어졌는데도우리는 어제처럼오늘도 밥을 먹고 웃고 즐기고 잠을 잔다.

 

죽음은마침표가 아닙니다죽음은 영원한 쉼표,/ 남은 자들에겐끝없는 물음표,/ 그리고 의미 하나,/ 땅 위에 떨어집니다어떻게 사느냐는따옴표 하나,/ 이제 내게 남겨진 일이란부끄러움 없이 당신을 해후할느낌표만 남았습니다. / 시인 김소엽 '죽음은 마침표가 아닙니다'  

 

그렇다남은 자는 느낌표 그것 하나 소중히 품고 산다죽음은 삶과의 이별인 동시에 새 생명으로 태어나는 축제의 순간이 아닌가언젠가 다시 만난다는 믿음으로 위로 받을 일이다이제 안녕이란 말은 하지 않겠다안녕

(중앙일보 이 아침에)

 

 

 

죽음이 가진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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