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5.09 14:07

눕고 싶을 때가 있다

조회 수 502 추천 수 38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눕고 싶을 때가 있다



                                                                          이 월란




눕고 싶을 때가 있다
서슬 퍼렇게 달려들던 아귀다툼, 노을 속에 순하게 잦아들 때면
널러 빠진 잠자리가 아닌 솔아 터진 소파 가장자리에 쪼그리고
눕고 싶을 때가 있다
새로 산 레이스 화려한 잠옷이 아닌 보풀 가득 피어난 오래된 파자마를 입고
어느 날 한 평 땅아래 가지런히 누일 빈몸, 차마 낯설지 않도록
그렇게 눕고 싶을 때가 있다
내가 옮겨놓지 않으면 움직일 줄 모르는
내 하루의 간객으로 즐비하게 세워둔,
언젠가는 나처럼 버려질 가구와 장식품들이
참담히 고개 숙인 낯익은 길체마다
하나 둘 눈을 맞춰오겠지, 속삭여오겠지
살아 있음이라 눈시울 적셔 오겠지
물어뜯고 말리라던 그 날카로운 이빨들도
여섯 살 박이 아이의 젖니처럼 흔들리다
연륜으로 견고해질 영구치 하나씩 그 자리에 돋아나겠지
그렇게 가여운 몸짓으로 누워있다보면
내 안에 아픈 것들도 넉넉히 자리를 털고 일어나
서로 마음을 내어 너그러워도 지겠지
치고 받던 그 극성들이 정적을 물고 최면을 걸어도 오겠지
구석으로 얼키설키 내몰았던 칡덩굴 반근(盤根)들이
몸 밖으로 하나 둘 걸어나와 타인이 되어 나를 바라보다
진솔 버선되어 반닫이 속으로 차곡차곡 걸어들어 가겠고
이유 없이 목이 말라 올 것이며 손발도 저려 오겠지
다 살아있음이라 세운 힘줄 다독이며 겨울바람에 부르튼 노숙의 마음
그렇게 녹이며 사는거라 한숨 꺾어 주겠지
잠재워 주겠지


                                                                  2007-07-27


?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37 미로아(迷路兒) 이월란 2008.05.10 391
236 시차(時差) 이월란 2008.05.10 418
235 꽃, 거리의 시인들 이월란 2008.05.10 424
234 생인손 이월란 2008.05.10 464
233 견공 시리즈 거지근성(견공시리즈 22) 이월란 2009.09.12 613
232 수필 타인의 명절 이월란 2008.05.10 1373
231 제1시집 바람서리 이월란 2008.05.09 670
230 제1시집 동굴 이월란 2008.05.09 746
» 눕고 싶을 때가 있다 이월란 2008.05.09 502
228 유리기둥 이월란 2008.05.09 485
227 제1시집 바람의 길 2 이월란 2008.05.09 694
226 그 여자 이월란 2008.05.09 414
225 꽃상여 이월란 2008.05.09 430
224 제1시집 저 환장할 것들의 하늘거림을 이월란 2008.05.09 772
223 제1시집 바람의 길 이월란 2008.05.09 705
222 제1시집 삶은 계란을 까며 이월란 2008.05.09 824
221 제1시집 빈가지 위에 배꽃처럼 이월란 2008.05.09 721
220 누전(漏電) 이월란 2008.05.09 464
219 제1시집 살아도 거기까지 이월란 2008.05.09 673
218 제1시집 파일, 전송 중 이월란 2008.05.09 825
Board Pagination Prev 1 ... 69 70 71 72 73 74 75 76 77 78 ... 85 Next
/ 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