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6.05 14:17

그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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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



                                                             이 월란



아버지
산 사람을 모두 몰아낸 지나간 집
흐미한 골목엔 언제나 적막한 뒷모습
차려드린 적 없는 기억 한 줌 언제 와 드시곤
아직 살아계시네, 걸어가시네
흑백 텔레비전 속 주인공처럼
무색 넥타이에 반고체 포마드로 넘긴 올백 머리
진한 햇살 냄새 뿌리며 나가시면
마침내 해가 뜨던 우리 집
밤새 지켜 줄 별들을 한 아름 안고 들어오시면
소반 가득 담아 오신 세상을 한 젓갈씩 받아먹고
마침내 해가 지던 우리 집
구부정한 허리에 뒷짐 지시고
일흔 해의 봄으로도 녹이지 못한 일흔 해의 잔설이
응달진 논배미같은 실루엣마다 희끗이 고여 있어
아! 저 분은 얼음조각상이야
뜨거운 입김이라도 닿으면 녹아버릴 외로운 입상
그 위에 폴짝 뛰어올라 그 따뜻한 목에 팔을 두르고
까칠한 턱수염에 입을 맞추면 녹아버리실지도 몰라
어느 한귀퉁이라도 녹아내리면 안되는
무흠한 조각상이셔야 했지
이젠 한줌의 해빙기로 하늘 품고 바다에 누우셨나
어느 번민 삭인 바다에 물억새처럼 뿌리 내리셨나
사계절 잊은 긴 모직코트 속에서 뒷모습으로 걸어가시면
홀연 해가 지던 어린 골목길
진 노을만 사는 무채색의 집으로
문패마저 생소한 그 집으로
걸어가시네, 살아계시네



                                                          2008-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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