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1.11 14:51

흔들리는 집 4

조회 수 719 추천 수 17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흔들리는 집 4



                                                                      이월란



-우리 막내딸 결혼식 비디오가 누구네 있나, 부치라고 해
-부쳤데요
-오늘 아침엔 기분이 별로 안 좋아, 의사를 봐야겠어
-같이 가입시더
-계란 프라이를 하나 먹고 갔으면 싶은데
-그라지예
-택시! (타자마자 버릇처럼 기본요금 600원을 동전지갑에서 꺼내시고,
차가 병원에 채 닿기도 전에 100원짜리 동전 6개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아버지의 고개와 함께.)


초등학교 6학년, 걸스카웃 행사로 아버지들이 오시는 날
우리 아버진 안오시는데 시간은 혼자서도 잘도 갔지
우리 아버진 안오시는데 다른 아이들의 아버진 잘도 오셨지, 모두
아버진 시계가 없으실까
포크댄스는 시작 되었네, 쟤는 아버지가 없나봐
노란 하늘도 뱅글뱅글 포크댄스를 추는데
헐레벌떡 달려오신 담임선생님 앞에서 난 결코 울지 않을래
포크댄스는 끝나가고 눈을 떼지 못한 교문 앞에서
구부정한 허리로 택시에서 내리시던 아버지


아버지, 댄스는 끝났어요
제발 그 택시를 도로 타고 돌아가세요


지구 반대편
성탄절 장식에 불바다가 된 몰몬탬플에서 스페니쉬 동서와 사진을 찍고 있을 때
정말 그 택시를 도로 타시곤 멀리, 아주 멀리 가버리신 아버지
한번도 나와 포크댄스를 추시지 않으셨던 아버지
어릴 땐 그 분의 신문과 무릎 사이에 가두어진 나의 양볼을 따끔따끔 찔러대시던
그 턱수염만큼 수많은 까칠한 기억을, 내 몸에 난 땀구멍만큼 남겨두시고
달과 6펜스*처럼 동전 6개를 남기시고 달을 따러가신 나의 아버지

                                                                2008-11-11



* 달과 6펜스 : 서머셋 모옴(Maugham, William Somerset)의 소설 제목


?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557 흔들리는 집 5 이월란 2008.11.12 740
» 흔들리는 집 4 이월란 2008.11.11 719
555 나는 나의 詩가 혐오스럽다 이월란 2008.11.06 446
554 신비로운 공식 이월란 2008.11.06 404
553 감원 바이러스 이월란 2008.11.04 422
552 여기는 D.M.Z. 이월란 2008.11.02 447
551 낙엽을 읽다 이월란 2008.11.01 423
550 단행본 이월란 2008.10.31 431
549 제3시집 내부순환도로 이월란 2008.10.30 837
548 부화(孵化) 이월란 2008.10.29 426
547 피사체 이월란 2008.10.28 446
546 인사동 아리랑 이월란 2008.10.27 588
545 어둠숨쉬기 이월란 2008.10.26 400
544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이월란 2008.10.25 516
543 견공 시리즈 욕(견공시리즈 109) 이월란 2011.09.09 659
542 견공 시리즈 말(견공시리즈 110) 이월란 2011.09.09 667
541 이월란 2008.10.24 440
540 흐림의 실체 이월란 2008.10.24 705
539 제3시집 공항대기실 2 이월란 2008.10.22 1260
538 바람의 혀 이월란 2008.10.21 454
Board Pagination Prev 1 ... 53 54 55 56 57 58 59 60 61 62 ... 85 Next
/ 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