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2.04 12:26

황태자의 마지막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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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자의 마지막 사랑


                                                                   이월란



늘그막에 철 드셨던 울 아버지
주말마다 엄처시하 자처하며 마나님 모시고 여행 가시네
산도 많고 절도 많은 방방곡곡
골골 샅샅이 동반자죽 남기고 오라 밀명 받은 사자처럼
기차시간 멀었건만 고부라지는 허리 가을볕에 빳빳이 펴시고
일찌거니 앞뜰에 서 계시네
설거지 헐레벌떡 마치고 코티분 토닥이시던 울 엄마
고개는 설레설레, 버얼써 또 나가가 저래 서 있제
문틈으로 살짝 보니
브림 좁은 페도라 아래 찰스 황태자 같은 바바리 입으시고
하늘 한 번 보시고 흠흠, 땅 한 번 보시고 흠흠
조만간 고함소리 들리겠다 싶더니
- 아이, 아직도 안나오고 뭐하노?
- 번갯불에 콩 볶아 묵을 저 영감탕구, 엎어지면 코 닿을 데
  버얼써 가가 뭐할란고 좀 물어 보거래이
다소곳이 나가 아뢰기를, 아버지예, 엄마 지금 나오고 있어예
동문서답 메신저는 아랑곳 없이
다이애나 황태자비처럼 투피스를 차려 입으신 울 엄마
하얗게 흘기시는 눈 속에 새털구름 퐁퐁 솟고
황태자 뒤를 팔랑팔랑 따라가시는 마나님 뒤태에
대문 걸어두고 뒤돌아서면
가본 적 없는 내장산, 설악산 단풍이 울엄마 뿌려놓은 분내처럼
내 기억의 앞뜰 가득 울긋불긋 타올랐지

                                                                 2009-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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