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 그 겨우살이 준비

2012.12.13 17:14

김학 조회 수:316 추천:5

김장, 그 겨우살이 준비

                              김 학

갑자기 김치부자가 되었다. 그저께는 C시인 내외가 배추김치와 무김치를 두 통이나 가져다주었고, 어제는 초등학교 동창 L이 배추김치 한 통을 가지고 왔다. 또 대학동창 H가 알맞게 익은 무김치를 한 통 주었다. 시방 우리 부부는 기쁨이 넘쳐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는데 우리 집 김치냉장고는 몸살을 앓고 있다. 김장을 하지도 않았는데 김치부자가 된 것이다. 십시일반(十匙一飯)이란 말이 실감난다.
가을과 겨울이 임무 교대할 무렵이면, 어느 집이나 겨우살이 준비를 서둘렀다. 겨우내 취사와 난방문제를 해결할 만한 연탄을 창고에 쟁여두고, 김장을 하며, 쌀도 팔아 뒤주에 넣어 두었다. 이렇게 겨우살이 준비를 마치면 겨울이 아무리 추워도 걱정이 없었다. 아득한 옛날이야기다.
김장은 겨우살이 준비 중 가장 중요한 일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우리 집은 이런 겨우살이 준비를 하지 않았다. 땔감이 연탄에서 보일러로, 단독주택이 아파트로 바뀌면서 난방문제는 저절로 해결되었고, 쌀은 언제라도 마트에서 소포장으로 구입할 수 있으니 걱정거리가 아니다. 그러나 김장은 지금도 겨우살이 준비 중 가장 큰 고민거리다.
몸이 약하고 솜씨가 모자란 아내는 일을 무서워한다. 하지만, 그 대신 인덕이 많은 편이다. 고급식당을 경영하던 제수씨가 해마다 김치를 담가주어서 김장걱정을 하지 않고 직장에 나갔는데, 제수씨가 식당을 그만두자 반찬가게나 교회 바자회에서 김치를 사다 먹었다. 궁하면 통한다고 했던가?
김치는 종류도 많다. 지역과 집안에 따라 김치를 담그는 방법이 다르다. 어느 집이나 배추김치와 총각김치, 백김치, 물김치는 기본이다. 그런데 김장재료는 비슷할 텐데 주부의 손맛 때문인지 김치 맛은 다르다. 우리 부부는 해마다 여러 집 김치를 얻어먹다 보니 이제는 ‘김치 맛 감별사’ 수준이 되었다.
언젠가 보내준 C여사의 김치 맛을 잊을 수 없다. 내 고향 신토불이 김치여서 그런지 김치 맛이 아주 좋았다. 더구나 배추김치 통에 고들빼기김치와 파김치까지 넣어 주어서 얼마나 맛있게 먹었는지 모른다.
나는 어려서부터 유난히 김치를 좋아했다. 겨울방학 때 큰집에 가면 큰할머니는 끼니때마다 내가 김치를 잘 먹는다며 김치만 내 앞으로 밀어놓으셨다. 그러니 나는 김이나 생선, 고기반찬에는 젓가락을 가져갈 수 없었다. 60여 년 전의 일인데 지금도 그 기억이 생생하다.
김치가 세계 5대 건강식품에 선정되었다. 미국의 건강전문잡지《헬스》는 최근 기사에서 김치에는 비타민과 섬유질뿐 아니라 소화를 향상시키는 유산균이 풍부하다고 설명하고, 최근에는 김치가 암세포 증식을 막아준다는 사실까지 입증됐다고 소개했다. 드디어 김치를 바라보는 세계인의 눈이 달라졌다. 일본이 제아무리 ‘기무치’를 만들어 팔아도 우리 ‘김치’를 따라올 수는 없다.
김치는 예나 지금이나 우리 식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전통 음식이다. 이 김치는 육류나 해산물과도 잘 어울리는 변신의 천재다. 김치는 김치찌개, 김치전, 김치볶음, 등 얼마든지 새로운 맛을 창조할 수도 있다.
김치는 섬유질이 풍부한 저지방 다이어트 음식이다. 그 뿐 아니라 성인병 예방과 암세포 억제라는 놀라운 사실까지 밝혀져 세계인들의 관심을 끌게 되었다. 이런 김치가 세계 5대 건강식품에 선정된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요즘 우리 아이들이 김치를 싫어한다니 안타깝다.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전통 김치를 우리 후손들도 즐겨 먹으면 좋겠다. 김치의 맛과 효험을 알고, 김치에게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갔으면 한다.
지금도 집에서 김치를 담가먹는 사람들이 10명 중 8명쯤이라고 한다. 동물세계나 인간세계나 전체 구성원의 20%가 열심히 일을 하고 나머지 80%는 빈둥거리며 지낸다는 것이 바로 20:80의 법칙이다. 그런데 직접 자기 손으로 김치를 담가먹는 사람들이 80% 수준이라니 참으로 놀랍다. 가까이 또는 멀리 사는 아들딸들에게도 김치를 담가 보내야 마음이 놓이는 어머니들이 있는 한 겨우살이용 김장은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따뜻한 겨울을 위한 나눔의 손길, 한 포기만 더‘라는 어느 노인복지관의 김장 권유 표어가 정겹고 포근하다. 이렇게 담근 김치는 주변에 홀로 사는 노인들의 겨우살이에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어떤 모임에서 지인들과 저녁식사를 하고 있는데 스마트폰이 울렸다. 여류수필가 J여사의 목소리였다. 김장을 했기에 김치를 한 통 가져왔다는 소식이다. 또 뜻밖의 김치선물을 받게 되었다.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받는 기쁨은 짧고 주는 기쁨은 길다. 늘 기쁘게 사는 사람은 주는 기쁨을 가진 사람이다.”
올해도 김치를 보내주어서 우리 집 겨우살이를 도와 준 지인들에게 나는 이동식 씨의 이 한마디를 감사의 인사와 함께 정중히 전해드리고 싶다. 나는 언제쯤 주는 기쁨을 누릴 수 있을까?
어서 김치가 새콤하게 익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옛날 고향에 살 때처럼 함박눈이 펄펄 내리는 겨울 밤, 김치가닥을 죽죽 찢어서 밥숟가락에 걸쳐 먹고 싶다. 그러면 식은 밥을 먹어도 이마엔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힐 것이다.

                        (2012. 12. 4.)

*김학 약력
1980년 월간문학 등단/ 《나는 행복합니다》등 수필집 12권,《수필의 길 수필가의 길》등 수필평론집 2권/ 펜문학상, 한국수필상, 영호남수필문학상 대상, 신곡문학상 대상, 연암문학상 대상, 전주시예술상, 전라북도문화상, 목정문화상 등 다수 수상/ 전북수필문학회 회장, 대표에세이문학회 회장, 임실문인협회 회장, 전북문인협회 회장, 전북펜클럽 회장,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부이사장 역임/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전담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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