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장종지는 어디로 갔을까
2013.06.10 08:54
간장종지는 어디로 갔을까
김 학
우리네 밥상에 있어야 할 간장종지가 어디로 갔을까? 그 간장종지를 찾고 싶다. 간장종지는 우리네 밥상에서 가장 작은 그릇이었다. 밥그릇이나 국그릇에 비하면 외모가 눈에 잘 띄지 않을 정도다. 그 간장종지가 언제 어디로 사라져버렸을까? 누가 그 간장종지를 밥상에서 쫓아냈을까? 그 간장종지가 그립다.
간장종지는 언제나 크고 작은 밥상의 한 가운데 턱 자리를 잡고 있었다. 한정식으로 밥상을 차릴 때는 간장종지가 먼저 자리를 잡아야 밥그릇과 국그릇, 그 밖의 갖가지 반찬그릇의 자리가 정해졌다. 간장종지가 밥상차림의 기준이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처럼 귀하게 대접받던 간장종지가 언제부턴가 우리네 밥상에서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우리 집 식탁에서도 간장종지를 찾아볼 수 없다. 어머니가 아내에게 살림을 물려주면서부터가 아닌가 싶다. 우리 집에는 간장종지도 없다. 그 간장종지는 음식궁합이 맞지 않으니까 서양인의 식탁으로 이민 갔을 리는 없다. 또 비싼 몸값을 받고 중국인이나 일본인의 식탁으로 스카웃 되었을 리도 없다. 그러면 간장종지는 어디로 갔단 말인가? 간장은 있는데 간장종지가 없다.
여름이 물러가고 가을이 오면 백반밥상에는 김[海苔]이 오른다. 김에 밥을 싸먹으려면 간장은 꼭 있어야 한다. 김과 간장은 바늘과 실처럼 뗄 수 없는 가까운 사이니까. 그런데 요즘 밥상엔 김이 있어도 간장종지는 보이지 않는다. 혹 건강하려면 짜고 매운 것을 피하라는 의학상식의 영향 때문일지도 모른다.
지난 4월 10일, 51년 전에 입학했던 대학동창생 6명이 부부동반으로 맛의 고장 전주에서 만났다. 한정식으로 유명한 반백년 전통의 백번집에서 함께 저녁식사를 했었다. 상다리가 휘어질 정도로 푸짐한 백반상차림이었다. 30여 종류가 넘는 요리가 밥상에 빼곡히 진열되어 있었다. 농산물과 해산물, 축산물로 조리된 맛깔스런 상차림이었다. 그런데 으레 한 가운데 있어야 할 그 밥상에도 간장종지는 없었다. 간장종지는 일반 가정은 물론 유명 음식점 밥상에서조차 퇴출된 모양이다. 더 안타까운 일은 그날 그 자리에서 함께 식사를 했던 친구들 중 어느 누구도 간장종지가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눈치 채지 못했다. 간장종지가 없는데도 우리는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배불리 식사를 마쳤다.
발효식품인 간장과 된장 그리고 고추장은 집집마다 1년에 한 번씩 담갔다. 간장을 담그는 일은 가정주부의 중요한 임무였다. 그러기에 음력 정월이면 말 날[午日]을 골라 정갈하게 간장을 담갔던 것이다. 간장을 담그면 더불어 된장도 나왔다. 그러니 간장과 된장은 한 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난 쌍둥이형제다. 간장과 된장은 한 집안의 음식솜씨를 갈음하는 중요한 조미료였다. 국의 간을 맞추거나 김을 싸먹는데 없어서는 안 될 것이 바로 간장이듯, 국이나 된장찌개에서 맛있는 된장이 빠질 수는 없다. 그러기에 간장 맛을 보면 그 집의 음식솜씨를 짐작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요즘엔 공장에서 대량생산된 간장과 된장, 고추장이 가정의 주방을 점령하고 있다. 그 때문에 주부들의 일감은 줄고, 맛의 평준화가 이루어졌다. 이 집 간장과 저 집 간장 맛을 구별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 때문에 자존심이 상한 간장종지가 몸을 숨겼는지도 모른다.
언제 결혼하느냐는 말 대신에 언제 국수를 주느냐고 했듯이, 장가를 간 신랑이 신혼집에 초대하지 않으면 언제 간장 맛을 보여주겠느냐고 다그치기도 했었다. 그렇게 중요한 간장종지가 우리네 밥상에서 사라지면서 그런 우스갯말조차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안타까운 일이다.
어느 윷놀이 판에 가보니 밥상에서 밀려난 간장종지가 그곳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전주 건지산(乾止山)에는 날마다 윷놀이로 소일하는 노인들의 간이 쉼터가 있다. 그곳에서는 많은 노인들이 모임을 만들어 날마다 서너 개의 윷판을 벌여놓고 편을 갈라 동전내기 윷놀이를 한다. 그 놀이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간장종지는 조그만 윷짝 네 개를 담는 윷종지 역할이었다. 그렇게라도 목숨을 이어가는 간장종지의 신세가 참으로 안쓰러워 보였다.
집을 나간 간장종지가 활짝 웃으면서 다시 우리네 밥상으로 돌아왔으면 좋겠다. 그렇게 되면 참으로 반가울 것이다.
(2013. 4. 20.)
*김학 약력
1980년 월간문학 등단/《나는 행복합니다》등 수필집 12권,《수필의 길 수필가의 길》등 수필평론집 2권/ 한국수필상, 펜문학상, 영호남수필문학상 대상, 신곡문학상 대상, 연암문학상 대상, 대한민국향토문학상, 전주시예술상, 목정문화상 등 다수 수상/ 전북수필문학회 회장, 대표에세이문학회 회장, 임실문인협회 회장, 전북문인협회 회장, 전북펜클럽 회장,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부이사장 역임/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전담교수/ crane43@hanmail.net http://crane43.kll.co.kr
김 학
우리네 밥상에 있어야 할 간장종지가 어디로 갔을까? 그 간장종지를 찾고 싶다. 간장종지는 우리네 밥상에서 가장 작은 그릇이었다. 밥그릇이나 국그릇에 비하면 외모가 눈에 잘 띄지 않을 정도다. 그 간장종지가 언제 어디로 사라져버렸을까? 누가 그 간장종지를 밥상에서 쫓아냈을까? 그 간장종지가 그립다.
간장종지는 언제나 크고 작은 밥상의 한 가운데 턱 자리를 잡고 있었다. 한정식으로 밥상을 차릴 때는 간장종지가 먼저 자리를 잡아야 밥그릇과 국그릇, 그 밖의 갖가지 반찬그릇의 자리가 정해졌다. 간장종지가 밥상차림의 기준이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처럼 귀하게 대접받던 간장종지가 언제부턴가 우리네 밥상에서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우리 집 식탁에서도 간장종지를 찾아볼 수 없다. 어머니가 아내에게 살림을 물려주면서부터가 아닌가 싶다. 우리 집에는 간장종지도 없다. 그 간장종지는 음식궁합이 맞지 않으니까 서양인의 식탁으로 이민 갔을 리는 없다. 또 비싼 몸값을 받고 중국인이나 일본인의 식탁으로 스카웃 되었을 리도 없다. 그러면 간장종지는 어디로 갔단 말인가? 간장은 있는데 간장종지가 없다.
여름이 물러가고 가을이 오면 백반밥상에는 김[海苔]이 오른다. 김에 밥을 싸먹으려면 간장은 꼭 있어야 한다. 김과 간장은 바늘과 실처럼 뗄 수 없는 가까운 사이니까. 그런데 요즘 밥상엔 김이 있어도 간장종지는 보이지 않는다. 혹 건강하려면 짜고 매운 것을 피하라는 의학상식의 영향 때문일지도 모른다.
지난 4월 10일, 51년 전에 입학했던 대학동창생 6명이 부부동반으로 맛의 고장 전주에서 만났다. 한정식으로 유명한 반백년 전통의 백번집에서 함께 저녁식사를 했었다. 상다리가 휘어질 정도로 푸짐한 백반상차림이었다. 30여 종류가 넘는 요리가 밥상에 빼곡히 진열되어 있었다. 농산물과 해산물, 축산물로 조리된 맛깔스런 상차림이었다. 그런데 으레 한 가운데 있어야 할 그 밥상에도 간장종지는 없었다. 간장종지는 일반 가정은 물론 유명 음식점 밥상에서조차 퇴출된 모양이다. 더 안타까운 일은 그날 그 자리에서 함께 식사를 했던 친구들 중 어느 누구도 간장종지가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눈치 채지 못했다. 간장종지가 없는데도 우리는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배불리 식사를 마쳤다.
발효식품인 간장과 된장 그리고 고추장은 집집마다 1년에 한 번씩 담갔다. 간장을 담그는 일은 가정주부의 중요한 임무였다. 그러기에 음력 정월이면 말 날[午日]을 골라 정갈하게 간장을 담갔던 것이다. 간장을 담그면 더불어 된장도 나왔다. 그러니 간장과 된장은 한 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난 쌍둥이형제다. 간장과 된장은 한 집안의 음식솜씨를 갈음하는 중요한 조미료였다. 국의 간을 맞추거나 김을 싸먹는데 없어서는 안 될 것이 바로 간장이듯, 국이나 된장찌개에서 맛있는 된장이 빠질 수는 없다. 그러기에 간장 맛을 보면 그 집의 음식솜씨를 짐작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요즘엔 공장에서 대량생산된 간장과 된장, 고추장이 가정의 주방을 점령하고 있다. 그 때문에 주부들의 일감은 줄고, 맛의 평준화가 이루어졌다. 이 집 간장과 저 집 간장 맛을 구별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 때문에 자존심이 상한 간장종지가 몸을 숨겼는지도 모른다.
언제 결혼하느냐는 말 대신에 언제 국수를 주느냐고 했듯이, 장가를 간 신랑이 신혼집에 초대하지 않으면 언제 간장 맛을 보여주겠느냐고 다그치기도 했었다. 그렇게 중요한 간장종지가 우리네 밥상에서 사라지면서 그런 우스갯말조차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안타까운 일이다.
어느 윷놀이 판에 가보니 밥상에서 밀려난 간장종지가 그곳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전주 건지산(乾止山)에는 날마다 윷놀이로 소일하는 노인들의 간이 쉼터가 있다. 그곳에서는 많은 노인들이 모임을 만들어 날마다 서너 개의 윷판을 벌여놓고 편을 갈라 동전내기 윷놀이를 한다. 그 놀이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간장종지는 조그만 윷짝 네 개를 담는 윷종지 역할이었다. 그렇게라도 목숨을 이어가는 간장종지의 신세가 참으로 안쓰러워 보였다.
집을 나간 간장종지가 활짝 웃으면서 다시 우리네 밥상으로 돌아왔으면 좋겠다. 그렇게 되면 참으로 반가울 것이다.
(2013. 4. 20.)
*김학 약력
1980년 월간문학 등단/《나는 행복합니다》등 수필집 12권,《수필의 길 수필가의 길》등 수필평론집 2권/ 한국수필상, 펜문학상, 영호남수필문학상 대상, 신곡문학상 대상, 연암문학상 대상, 대한민국향토문학상, 전주시예술상, 목정문화상 등 다수 수상/ 전북수필문학회 회장, 대표에세이문학회 회장, 임실문인협회 회장, 전북문인협회 회장, 전북펜클럽 회장,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부이사장 역임/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전담교수/ crane43@hanmail.net http://crane43.kl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