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벗이 누군가 하니/형효순
2014.09.24 07:28
내 벗이 누군가 하니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금요반 형효순
그룹 카톡을 시작했다가 행복을 몇 배로 늘이는 날이 되었다. 모두가 건강하게 잘들 계시는 것 같아 물난리로 어수선한 여름의 끝자락이 그런대로 견딜 만했다. 비가 많이 왔으니 밭에 시찰을 나간다고 하자 유 작가님은 나에게 채소들의 면장님이라고 했다. 맞다. 적어도 우리 밭에 심은 작물들은 내가 순방하면 꼼짝 못한다. 조금만 게으름을 피워도 내 눈에 딱 걸린다. 부지런히 거름을 주고, 풀을 뽑아 주면 함께 잘도 큰다. 뭉쳐있는 스트레스까지 치유가 되니 그들 또한 내 벗들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내친김에 자식들에게도 그룹 카톡으로 안부를 물으니 제비새끼들처럼 화답이 창창하다. 가슴이 따뜻하다. 뭐 인생이 별것인가? 내가 먼저 사랑하고, 내가 먼저 용서하며, 내가 먼저 욕심을 버리면 모든 것들이 평화로운 걸, 젊었을 때는 무엇을 이루고 싶어 그리 안달을 했을까. 그 초조함이 사라진 지금이 좋다.
살다보면 벗이 어디 사람만 있으랴. 바람과 구름, 비와 눈도 모두가 벗이다. 가슴이 뜨거운 날, 어딘가에 마음을 쏟아 붇지 않고서는 견디기 힘든 그런 날은 바람이 찾아 왔다. 바람은 내게 화를 오래 마음에 담아두면 병이 되니 제가 가지고 간다고 했다.
벼를 베다가 언덕에 누워 흘러가는 구름을 보면, 구름은 인생이 그리 길지 않으니 안달복달하지 말라고 당부하면서 흩어졌다. 인생은 구름처럼 잠시 살다 스러져가는 것이라고 했다. 마음이 겨울만큼 추어도 사랑하는 가족이 건강하면 더 이상 욕심을 부리지 말라며 욕심도 번뇌도 눈이 내려 하얗게 덮어주지 않던가. 사철가 한 대목처럼 월백 설백 천지백 하니 모두가 인생의 벗이라면서…….
젊은 날 꿈이 찾아와 슬며시 힘들어지면 비는 나를 밖으로 불러냈다. 우산에 떨어지는 빗소리는 혼자 간직한 아픔도 슬픔도 다독여 주었다. 울고 싶으면 빗방울의 반주에 맞추어 소리 내어 울어도 괜찮단다. 누군가 마주쳐도 빗물인 줄 알지 눈물인 줄 알겠느냐고 했다.
생각해 보니 내게는 이처럼 많은 벗들이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그런데도 굳이 다섯 벗을 생각하자면 한 세상 밭과 논과 집을 들락거렸던 터라, 기실 논이 하나요, 밭이 둘이요, 눈만 뜨면 안산이 마주하니 산이 넷이요, 만날 물을 보고 사니 물이 넷이요, 사시사철 풀꽃을 보고 사니 풀꽃이 다섯 아닐까. 이러면 너무 포괄적이라서 우리 집에서 좀 더 찾아보았다.
40년 나의 희로애락을 말없이 지켜준 집 뒤 상수리나무가 하나요, 뒤 창문을 열면 일 년 내내 푸른빛을 변함없이 보여주는 대나무가 둘이요, 10년째 함께 사는 진돌이가 셋이요, 7년째 야옹거리는 일명 우리 집 애정이가 넷이요, 창가 마당에 망부석처럼 자리한 돌 절구통이 다섯인가. 아니다. 이러면 이 세상 다섯 친구를 꼽지 못할 사람이 어디 있을까.
조선조 중기와 후기의 시인이자 문신·작가·정치인이자 음악가인 윤선도가 달, 물, 돌, 소나무, 대나무 등 다섯 가지를 벗으로 들었으니 나도 자연에서 찾아볼까. 인생과 문학의 경지에 오른 윤선도의 유유자적을 어찌 내가 흉내를 낼 것인가. 다만 이제는 올려다보고 부러워할 일도 없다고 입버릇처럼 말했으니 조금은 해당되지 않을까싶어 해본 소리다. 한때 위를 올려다보느라 목이 얼마나 뻣뻣했던가. 어느 시인이 그랬지. 올라갈 때 보지 못했던 그 꽃 내려올 때 보았다고.
그래도 손가락에 꼽을 벗 다섯 명만 있어도 성공한 인생라고 했다. 감히 벗이라고 말한다면 버릇없겠지만 내 마음으로 이제는 벗이라고 우기고 싶은 분들이 있다. 젊은 날 용기와 희망을 주셨던, 지금은 미국에 살고 계신 이준무 선생님이 첫째요, 글을 쓰라고 용기를 주시며 동산에 글을 가득 심으라는 뜻으로 동산 苑자에 벌릴 羅, ‘라원’이라는 호를 내려주셨던 익산의 송호 선생님이 둘이요, 30대 어느 여름날 채소를 팔러 시장에 옹크리고 앉아있는 내 곁에서 같이 앉아 친구해주었던 왈길 이순희가 셋이요, 한국농어촌여성문학회에서 만나 언제나 같은 모습으로 격의 없이 대해주시는 순천 김수자 선생님이 넷이요, 이미 세상을 떠나버린 박종수 시인님이 다섯이라고 하고 싶은데, 가신 분을 벗할 수 없어 다시 만들려 하니, 열 명도 더 넘는 후보자들이 막상막하인지라 결정하기가 쉽지 않다. 수많은 지인님들이 자꾸만 걸리는 것을 보면 나는 깊이 벗을 두지 못하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내가 너무 행복한 사람이거나, 내가 지금 누구의 진정한 벗이 될 수 있는지 모르겠다.
(2014. 9. 24.)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금요반 형효순
그룹 카톡을 시작했다가 행복을 몇 배로 늘이는 날이 되었다. 모두가 건강하게 잘들 계시는 것 같아 물난리로 어수선한 여름의 끝자락이 그런대로 견딜 만했다. 비가 많이 왔으니 밭에 시찰을 나간다고 하자 유 작가님은 나에게 채소들의 면장님이라고 했다. 맞다. 적어도 우리 밭에 심은 작물들은 내가 순방하면 꼼짝 못한다. 조금만 게으름을 피워도 내 눈에 딱 걸린다. 부지런히 거름을 주고, 풀을 뽑아 주면 함께 잘도 큰다. 뭉쳐있는 스트레스까지 치유가 되니 그들 또한 내 벗들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내친김에 자식들에게도 그룹 카톡으로 안부를 물으니 제비새끼들처럼 화답이 창창하다. 가슴이 따뜻하다. 뭐 인생이 별것인가? 내가 먼저 사랑하고, 내가 먼저 용서하며, 내가 먼저 욕심을 버리면 모든 것들이 평화로운 걸, 젊었을 때는 무엇을 이루고 싶어 그리 안달을 했을까. 그 초조함이 사라진 지금이 좋다.
살다보면 벗이 어디 사람만 있으랴. 바람과 구름, 비와 눈도 모두가 벗이다. 가슴이 뜨거운 날, 어딘가에 마음을 쏟아 붇지 않고서는 견디기 힘든 그런 날은 바람이 찾아 왔다. 바람은 내게 화를 오래 마음에 담아두면 병이 되니 제가 가지고 간다고 했다.
벼를 베다가 언덕에 누워 흘러가는 구름을 보면, 구름은 인생이 그리 길지 않으니 안달복달하지 말라고 당부하면서 흩어졌다. 인생은 구름처럼 잠시 살다 스러져가는 것이라고 했다. 마음이 겨울만큼 추어도 사랑하는 가족이 건강하면 더 이상 욕심을 부리지 말라며 욕심도 번뇌도 눈이 내려 하얗게 덮어주지 않던가. 사철가 한 대목처럼 월백 설백 천지백 하니 모두가 인생의 벗이라면서…….
젊은 날 꿈이 찾아와 슬며시 힘들어지면 비는 나를 밖으로 불러냈다. 우산에 떨어지는 빗소리는 혼자 간직한 아픔도 슬픔도 다독여 주었다. 울고 싶으면 빗방울의 반주에 맞추어 소리 내어 울어도 괜찮단다. 누군가 마주쳐도 빗물인 줄 알지 눈물인 줄 알겠느냐고 했다.
생각해 보니 내게는 이처럼 많은 벗들이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그런데도 굳이 다섯 벗을 생각하자면 한 세상 밭과 논과 집을 들락거렸던 터라, 기실 논이 하나요, 밭이 둘이요, 눈만 뜨면 안산이 마주하니 산이 넷이요, 만날 물을 보고 사니 물이 넷이요, 사시사철 풀꽃을 보고 사니 풀꽃이 다섯 아닐까. 이러면 너무 포괄적이라서 우리 집에서 좀 더 찾아보았다.
40년 나의 희로애락을 말없이 지켜준 집 뒤 상수리나무가 하나요, 뒤 창문을 열면 일 년 내내 푸른빛을 변함없이 보여주는 대나무가 둘이요, 10년째 함께 사는 진돌이가 셋이요, 7년째 야옹거리는 일명 우리 집 애정이가 넷이요, 창가 마당에 망부석처럼 자리한 돌 절구통이 다섯인가. 아니다. 이러면 이 세상 다섯 친구를 꼽지 못할 사람이 어디 있을까.
조선조 중기와 후기의 시인이자 문신·작가·정치인이자 음악가인 윤선도가 달, 물, 돌, 소나무, 대나무 등 다섯 가지를 벗으로 들었으니 나도 자연에서 찾아볼까. 인생과 문학의 경지에 오른 윤선도의 유유자적을 어찌 내가 흉내를 낼 것인가. 다만 이제는 올려다보고 부러워할 일도 없다고 입버릇처럼 말했으니 조금은 해당되지 않을까싶어 해본 소리다. 한때 위를 올려다보느라 목이 얼마나 뻣뻣했던가. 어느 시인이 그랬지. 올라갈 때 보지 못했던 그 꽃 내려올 때 보았다고.
그래도 손가락에 꼽을 벗 다섯 명만 있어도 성공한 인생라고 했다. 감히 벗이라고 말한다면 버릇없겠지만 내 마음으로 이제는 벗이라고 우기고 싶은 분들이 있다. 젊은 날 용기와 희망을 주셨던, 지금은 미국에 살고 계신 이준무 선생님이 첫째요, 글을 쓰라고 용기를 주시며 동산에 글을 가득 심으라는 뜻으로 동산 苑자에 벌릴 羅, ‘라원’이라는 호를 내려주셨던 익산의 송호 선생님이 둘이요, 30대 어느 여름날 채소를 팔러 시장에 옹크리고 앉아있는 내 곁에서 같이 앉아 친구해주었던 왈길 이순희가 셋이요, 한국농어촌여성문학회에서 만나 언제나 같은 모습으로 격의 없이 대해주시는 순천 김수자 선생님이 넷이요, 이미 세상을 떠나버린 박종수 시인님이 다섯이라고 하고 싶은데, 가신 분을 벗할 수 없어 다시 만들려 하니, 열 명도 더 넘는 후보자들이 막상막하인지라 결정하기가 쉽지 않다. 수많은 지인님들이 자꾸만 걸리는 것을 보면 나는 깊이 벗을 두지 못하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내가 너무 행복한 사람이거나, 내가 지금 누구의 진정한 벗이 될 수 있는지 모르겠다.
(2014. 9.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