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되기 싫어요

2008.05.08 17:30

최향미 조회 수:61

            


        작년 겨울에 한 바탕 홍역을 치르듯 한국이 들끓더니 이제는 ‘이명박 대통령’ 이란 호칭도 어느새 익숙하게 들려지고 있다. 미국도 올 십일월에 있을 대통령 선거 때문에 하루하루 새로운 뉴스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십구 년 전 일인 것 같다. 당시 교회 학교에서 어린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그날의 주제는 ‘왕 되신 예수님’ 이었다. 다섯 살짜리 꼬마 아이들에게 ‘왕’이란 높은 권세를 설명하기 위해 ‘대통령’ 이란 단어를 이용하려고 맘을 먹었다. 내 어릴 적에, 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꼭 ‘대통령‘이 되고 싶다는 아이가 한명쯤은 나오던 기억을 떠올리면서 “얘들아... 이담에 크면 뭐가 되고 싶어?”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그런데 아이들의 대답은 ‘소방서 아저씨, 트럭 운전사, 군인, 선생님, 엄마’ 하더니 끝이 나 버렸다. 조금씩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다. 어서 누군가가 ‘ 대통령 ’ 하고 답을 해줘야 오늘 공부를 부드럽게 이어갈 수 있는데 말이다. 결국 “ 얘들아 대통령 되고 싶은 사람 없어?‘ 하고 옆구리를 찌르기 시작했다. 그때 영리한 다니엘이 손을 번쩍 올린다. ’그러면 그렇지.‘ 내 얼굴에 미소가 번지는 것을 느끼는 순간 아이는” 선생님! 난 총 맞아 죽기 싫어요!“ 하는 게 아닌가. 그날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치고 끝을 맺었는지 기억이 없다. 단지 머리가 멍해지고 말을 더듬거리며 진땀을 흘린 기억은 생생하다. 한국의 대통령이 저격당한 사건이 벌어진 지 오래지 않은 때라 아이는 ‘대통령’ 을 ‘총’ 과 함께 무섭게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도  꼬마 아이 입에서 나온 대답은 삼십년이 가까운 지금까지 내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을 만큼 충격적이었다.
        
        한 나라를 다스리고, 국민을 잘 섬기는 최고의 통치자 ‘ 대통령’ 이 되는 꿈을 펼쳐 보라며 큰 꿈을 심어주시던 내 어릴 적 선생님이 생각난다. 그리고 어린 친구들의 반짝이던 그 눈빛도 기억난다. 내 조국 한국과 내가 살고 있는 이 미국 땅의 대통령을 그려본다. 요즘 아이들은 대통령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문득 궁금해진다. 그 아이들이 “나도 훌륭한 대통령이 되고 싶어요” 라며 손을 번쩍 들어 올릴 수 있도록 멋진 대통령들이 되기를 늦봄에 소망해본다.  


미주 한국일보 '여성의 창' 05-06-08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5199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날 이월란 2008.05.09 61
5198 버리지 못하는 병 이월란 2008.05.09 61
5197 유럽으로 간 금비단나비 이월란 2008.05.09 40
5196 뒷모습 이월란 2008.05.09 46
5195 어머니의 웃음 성백군 2008.05.09 32
» 대통령 되기 싫어요 최향미 2008.05.08 61
5193 부를 수 없는 이름---------------시집 이월란 2008.05.08 45
5192 너에게 가는 길 이월란 2008.05.08 50
5191 흔들의자 이월란 2008.05.08 37
5190 눈꽃사랑 이월란 2008.05.08 48
5189 잃어버린 날 이월란 2008.05.08 45
5188 탄식 이월란 2008.05.08 57
5187 숨바꼭질 이월란 2008.05.08 47
5186 ★ 알려드립니다 ★ 그레이스 2010.01.30 55
5185 에코 파크에 연꽃이 정문선 2008.05.08 45
5184 진흙덩이 이월란 2008.05.08 34
5183 하얀 침묵 이월란 2008.05.08 59
5182 그들은 이월란 2008.05.08 46
5181 왕의 이불 이월란 2008.05.08 58
5180 불가사의(不可思議) 이월란 2008.05.08 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