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가깝게
2008.05.27 14:09
운전석 옆 자리에 앉은 아들 녀석은 그새 이어폰을 끼고 눈을 감고 있다. 수업 끝나고 쉴 틈도 없이 바쁘게 움직여야하는 아이가 얼마나 피곤할까 싶어 말을 건넬 수도 없다. 힐끗 옆자리를 본다. 어느새 훌쩍 커버린 아이를 보니 오래전 생각이 난다.
아빠가 없을 때면 운전석 옆자리는 늘 큰 딸아이가 앉았다. 그런데 뒷자리에 앉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던 아들 녀석이 언제 부터인가 운전석 옆자리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 눈치가 보였다. 그러더니 어느 날인가 제 누나보다 먼저 앞자리에 올라앉는다. 한발 늦은 딸아이는 입에 물었던 사탕 뺏긴 아이처럼 팔딱팔딱 뛴다. 꼬마 녀석은 시치미를 뚝 떼고 얼마간 버티다가 씩 한번 웃고는 자리를 내준다. 재빨리 앞자리를 차지하곤 아예 차문을 잠궈 버리거나 가위 바위 보로 승부를 내보기도 하지만 아이들은 자주 그렇게 티격태격 다퉜다. 앞자리는 당연히 제 몫으로 여기는 큰아이와 이제는 자기도 차지해 보려는 막내의 다툼이 내 눈에는 그리 밉게 보이지 않았다. 다툼 끝에 엄마의 옆자리를 차지한 아이의 얼굴은 세상을 다 얻은듯한 그런 만족스런 얼굴이었다. 그것은 내가 아이들로부터 엄마로 인정받거나, 내 옆에 가까이 있고 싶어 하는 마음을 느끼게 돼서인지 오히려 흐믓 하기도 했다.
그런데 가끔씩 아이들이 가운데 자리도 건너뛰고 맨 뒷자리로 앉는 날이 있었다. 그리고는 책을 펴 들거나 자는 척을 하곤 했다. 주로 나한테 야단을 맞거나 뭔지 모르게 심통이 나 있을 때였던 것 같다. 멀찌감치 떨어져 앉아서 저한테 말도 걸지 말라는 무언의 시위같이 보였다. 어린애다운 유치한 행동이지만 엄마에게 제 마음을 그대로 표현한 것이었으리라. 그럴 때 마다 어쭈...하는 마음 한켠엔 앉은 거리보다 천배는 더 멀리 아이와 떨어져 있는듯했다. 엄마란 존재가 거부당하는 서글픔도 슬쩍 느껴지기도 했었다. 하지만 아이들의 키가 커 가면서 자리다툼도 조금씩 뜸해졌다.
어느새 태권도 도장 앞에 도착했다. 가볍게 코를 고는 아들 녀석의 손을 가만히 잡아 깨운다. 문득 자리 뺏긴 딸아이의 어릴 적 얼굴이 떠오른다. 어느새 대학 졸업반이 되는 딸아이가 보고 싶다. 비록 아들 녀석처럼 손을 잡아 줄 수는 없지만 전화라도 한번 해야겠다. 내 사랑을 담아 말을 건네면 엄마 품에 안긴 것 같이 딸아이가 느껴줄까. 이제는 내가 그렇게라도 더 가까이 다가가야겠다. 오월이 다 지나가기 전에 내 사랑을 한번 더 전해줘야겠다.
미주 한국일보 [여성의 창] 05-2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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