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길

2010.10.29 13:23

이월란 조회 수:72


몸길


이월란(2010/10)


코앞에 프리웨이 입구가 뚫린 지 열흘째
주욱 타고 달린 날보다 놓친 날이 더 많았다
핸들만 잡으면 사차원을 달리는 마음을 두고
손은 오래된 길을 향해 매번 핸들을 꺾었다

새 길에 들어서면 언제나 새로 변해버린
나와 맞닥뜨려야 하지 않던가
저 길이 언제 생겼다고
나는 벌써 6, 7분의 주행시간을 과감히 도려내었는데

놓치기 싫은 그 길 위에 내 어미 분 내음 떠 다녔을까
외면키 싫은 그 길 위에 내 아비 땀 내음 날아 다녔을까
생각 없이도 달릴 수 있는 그 길이 좋다는데

마음처럼 간사하지 못해
더 오래 기억하며, 더 먼저 기억해내는 몸속의 길
칼라시대에 흑백 브라운관이 뜨고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가 달리는 길

내 어미 등에 업혀 있었을까
내 아비 무릎에 앉아 있었을까
기억의 손이 산을 뚫고 터널을 내어 닦아 놓은 길

이젠 잊어도 좋을, 이젠 더 빠른 길로 가도 좋을
거울 속 나신 위에 실핏줄처럼 흐르는
지도에도 없는 길들이 선명하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7339 다드미 소리 최상준 2013.03.04 73
7338 숙녀와 여자 서용덕 2013.08.13 57
7337 제 구도를 그리며(여행 수필) 지희선 2009.10.09 51
7336 흑염소탕 이월란 2009.10.08 63
7335 과수원댁 이월란 2009.10.08 51
7334 안락한 총 이월란 2009.10.08 58
7333 한숨동지(견공시리즈 37) 이월란 2009.10.08 51
» 몸길 이월란 2010.10.29 72
7331 원정(園丁) 정용진 2009.10.03 54
7330 천년협곡에서 강성재 2009.10.10 66
7329 망령되이 이영숙 2009.10.03 43
7328 카스트라토(견공시리즈 35) 이월란 2009.10.01 53
7327 사랑이라 부르면 이월란 2009.10.01 29
7326 死語 이월란 2009.10.01 60
7325 고희(古稀) 정용진 2009.10.01 68
7324 죽어가는 전화 이월란 2009.10.01 60
7323 시조가 있는 수필-<작은 새 한 마리> 지희선 2009.09.30 39
7322 구두의 역사 이월란 2009.09.29 37
7321 기묘한 족보(견공시리즈 34) 이월란 2009.09.29 27
7320 마른 꽃 이월란 2009.09.29 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