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식에서
2004.09.26 14:23
장례식에서 / 강학희
이승에서의
마지막 한 칸 방에 누운 너를 본다
네 위에 놓인 수 많은 꽃들이
마치 살아 남은 자들의 죄를 덮으려는 것 같아서 싫다
네 가는 문전에서 처량히 부르는 노래도
그 고통을 함께하지 못하는 변명의 소리만 같아서 더욱 더 싫다
이승에서의
마지막 소유지 한 뼘 남짓한 어둠 속으로
한 줌의 흙과 함께 널 보내는 게
마치 죽어 썩을 육신의 무참함을 덮으려는 몸부림 같아서 싫다
허나 한 줌 흙으로 돌아 갈 재주 밖에 없는 우리
생성된 그 땅에서 만날 밖에
훠어이 훠어이, 딸랑 딸랑,
이제 가면 언제 보나.... 잘 가시게나. 허나 여보게,
싫어도 할 일이 이 밖에 없어
우린 또 누군가의 주검 앞에서 노래부르며 꽃을 놓고
그 위에 흙을 또 뿌릴 것이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진정 사랑하는 피붙이를 보내어도
살아 있는 우리가 할 수 있는 몫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실제로 꺼이 꺼이 우는 울음도 실은 나의 설움,
남은 자의 외로움이었습니다.
방안 가득 꽃이 즐비한 마지막 얼굴보기(viewing)도
실은 허전하게 보이지 않으려는 몸부림일 뿐이었습니다.
불러주고 싶은 노래도 차마 보내고 싶지 않은 가슴의 한 끝일 뿐이었습니다.
불숲으로 들어가는 혈육을 물끄럼히 바라보는 건
그저 눈망울 뿐 생각이 없는 하얀 공허일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보내고 지친 몸은 저도 몰래 수마에 이끌려 가고,
주린 배를 채우는 일 또한 버릴 수 없음이 왜 이리 속상한지요...
죽지 않겠다고 눈물에 비벼 꾸역 꾸역 목으로 넘어가는 밥알들....
참으로 무참한 형상이었습니다.
그래도 우리 살아 남은 자는 그 외에 할일이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이렇게 그리워하면서 살아가는 일 말고는....
또 누군가 이 설움 당한다하여도, 우리는 이 밖에 아무 것도 할 것이 없음을 알지요...
울며 꽃을 뿌리며 흙을 덮는 관습적인 일들을 할 뿐이지요.
그렇게 오고 가서, 언젠가 그 곳에서 만나지겠지요?
무엇이 되었든...
인생의 고리를 따라 돌며 돌며,
나는 너의, 너는 나의 무엇인거겠지요.
언제 어디에서 만나든 기억하려면 무슨 흔적은 남겨야 할텐데...
그게 무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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