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언---책을 덮고서

2005.11.22 06:46

윤석훈 조회 수:359 추천:22

         책을 덮고서


                                 김언



겨우 연애 한 번 실패한 걸 가지고
내가 죽었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친구 몇 명 잃은 걸 가지고
내가 정말 죽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몇 년째 사람구실 못한다고 해서
죽어야 한다면
죽었다고 한다면
지금 내 앞에 살아있는 나는 뭔가
살아서 이렇게 떠들어대는 나는 뭐란 말인가
죽은 내가 떠든다고 해서
죽은 내가 살아나지 않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한 번씩 죽음이 진짜처럼 들리는 걸 가지고
내가 진짜로 죽었다고 떠드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 나는 진짜로 죽었다
죽었었다
두꺼운 이 철학책이 따로 증명해주지 않아도
나는 지난여름 진짜로 죽었고
죽었었고
죽었다고 지금은 내가 증언하고 있다
내가 요즘 이상한 책을 읽는다고 해서
내가 이미 내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겨우 연애 한 번 실패한 걸 가지고
내가 아니라면
이미 내가 아니라면
달라진 건 또 뭔가 뭐란 말인가
몹쓸 그년은 그대로 몹쓸 그년이다
덕분에 증오 몇 번 한 걸 가지고
내가 다시 일어설 거라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겨우 죽음 몇 번 본 걸 가지고
내가 바뀔 거라고 믿는 사람들이 아직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