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0.10 19:26

멸치를 볶다가

조회 수 336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멸치를 볶다가 / 성백군

 

 

먹이 찾아

바다를 휘젓고 다니면서

파도 속에 묻혀 길을 잃고 헤매기도 하고

절벽에 부딪혀 등뼈가 부러지기도 하면서

그 작은 것이

험한 세상을 얼마나 힘들게 살았을까

 

세상살이라는 게 살면 살수록

인정사정없이 모질고 험난하여 저서

작고 힘이 없다고 봐 주지는 않는 법

어부의 촘촘한 어망에 걸려

생을 마감하기까지 얼마나 헐떡거렸으면

내장엔 피 한 방울 남아 있지 않은 걸까

 

프라이팬에서

다글다글 볶기며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한다

말 한마디 못하고 입을 앙다문 채

입 대신 몸으로 냄새만 풍긴다

 

젓가락으로 휘젓는 나

살아있는 내가 죽은 나를 뒤치기는 것처럼

멸치를 뒤치기다가 죽은 자는 말이 없다고 하지만

생명이 있는 동안은 힘껏 살았으니

이왕이면 좋은 맛 우려내려고 이리저리 살피며

노르스름하게 익을 마지막 때까지

정성을 다해 멸치를 볶는다.

내가 볶인다.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432 정상은 마음자리 하늘호수 2017.03.05 186
431 등대 사랑 강민경 2018.05.29 186
430 잔디밭에 저 여린 풀꽃들 / 성백군 하늘호수 2022.05.04 186
429 출출하거든 건너들 오시게 1 file 유진왕 2021.07.19 186
428 5월, 마음의 문을 열다 강민경 2017.05.18 187
427 바람의 면류관 강민경 2017.06.01 187
426 올무와 구속/강민경 강민경 2019.06.11 187
425 그대에게 가고 있네! / 김원각 泌縡 2020.04.16 187
424 가을 성숙미 / 성백군 4 하늘호수 2021.12.28 187
423 보내며 맞이하며 헤속목 2021.12.31 187
422 내가 세상의 문이다 강민경 2014.10.12 188
421 감기 임 강민경 2016.04.10 188
420 쥐 잡아라 / 성백군 하늘호수 2017.07.27 188
419 미루나무 잎사귀가 / 성백군 하늘호수 2022.10.23 188
418 길 잃은 새 강민경 2017.06.10 189
417 꽃 앞에 서면 강민경 2018.05.11 189
416 얹혀살기 / 성백군 1 하늘호수 2021.08.17 189
415 기상정보 / 성백군 하늘호수 2022.11.22 189
414 카멜리아 꽃(camellia flawer) / 성백군 2 하늘호수 2023.04.09 189
413 태아의 영혼 성백군 2014.02.22 190
Board Pagination Prev 1 ... 24 25 26 27 28 29 30 31 32 33 ... 50 Next
/ 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