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 상자 앞에서/강민경
슈퍼에 갔다가
좌판 위에 놓인
검은 오디 상자 앞에서
나는 영락없는 옛사람이다
주둥이 까맣게 물들이며
네 것, 내 것, 구별 없이 질리도록
나눠 먹던 생각에 군침이 돌아
쉽게, 작은 오디 상자를 들었다가
높은 가격표에 밀려 손힘이 풀리고
가난했지만 서로 배려하던
풋풋하고 따끈따끈하던
옛 인심만으로 허기를 채운다
흔해서 하찮게 여기던 것들이
때를 만나 이리 귀한 대접을 받는데
하물며, 사람 목숨은 왜 자꾸
내리막길을 구르는 돌 취급을 받는지!
세월호 사건의 참담한 현실 앞에서
네 탓, 내 탓만 찾다가
제 뱃속 썩는 냄새에 붙들려
하늘 찔러대는 한 숨소리에 닫힌 귀
내가 먼저 본이 되지 못하였으니
누구를 탓하겠는가
오늘에야 겨우, 슈퍼 좌판 위 자리한
작은 오디 한알 한알에 새겨진 귀중함을 본다.
번호 | 분류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951 | 시 | 아! 내가 빠졌다고 / 김원각 | 泌縡 | 2020.08.31 | 83 |
950 | 시 | 아버지의 새집 / 천숙녀 | 독도시인 | 2021.05.21 | 83 |
949 | 시 | 몰라서 좋다 / 성백군 | 하늘호수 | 2020.11.16 | 84 |
948 | 시 | 새싹의 인내 / 성백군 | 하늘호수 | 2024.01.09 | 84 |
947 | 시 | 밤 공원이/강민경 | 강민경 | 2020.05.31 | 85 |
946 | 시 | 바 람 / 헤속목 1 | 헤속목 | 2021.07.29 | 85 |
945 | 시 | 구겨진 인생 / 성백군 2 | 하늘호수 | 2021.10.19 | 85 |
944 | 시 | 껍질 깨던 날 / 천숙녀 | 독도시인 | 2021.05.24 | 86 |
943 | 시 | 눈 꽃, 사람 꽃 / 성백군 | 하늘호수 | 2019.02.19 | 86 |
942 | 시 | 밑거름 | 강민경 | 2020.05.15 | 86 |
941 | 시 | 럭키 페니 / 성백군 | 하늘호수 | 2020.06.09 | 86 |
940 | 시 | 고향 흉내 1 | 유진왕 | 2021.07.13 | 86 |
939 | 시 | 신경초 / 성백군 1 | 하늘호수 | 2021.08.24 | 86 |
938 | 시 | 산아제한 / 성백군 2 | 하늘호수 | 2021.10.05 | 86 |
937 | 시 | 들길을 걷다 보면 / 성백군 | 하늘호수 | 2024.01.02 | 86 |
936 | 시 | 날파리 / 성백군 | 하늘호수 | 2024.03.26 | 87 |
935 | 시 | 봄비, 혹은 복음 / 성벡군 | 하늘호수 | 2015.08.18 | 87 |
934 | 시 | 두루미(鶴)의 구애(求愛) / 김원각 | 泌縡 | 2020.10.10 | 87 |
933 | 시 | 가을/ 김원각-2 | 泌縡 | 2021.01.09 | 87 |
932 | 시 | 세상 감옥 / 성백군 | 하늘호수 | 2021.05.18 | 8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