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 상자 앞에서/강민경
슈퍼에 갔다가
좌판 위에 놓인
검은 오디 상자 앞에서
나는 영락없는 옛사람이다
주둥이 까맣게 물들이며
네 것, 내 것, 구별 없이 질리도록
나눠 먹던 생각에 군침이 돌아
쉽게, 작은 오디 상자를 들었다가
높은 가격표에 밀려 손힘이 풀리고
가난했지만 서로 배려하던
풋풋하고 따끈따끈하던
옛 인심만으로 허기를 채운다
흔해서 하찮게 여기던 것들이
때를 만나 이리 귀한 대접을 받는데
하물며, 사람 목숨은 왜 자꾸
내리막길을 구르는 돌 취급을 받는지!
세월호 사건의 참담한 현실 앞에서
네 탓, 내 탓만 찾다가
제 뱃속 썩는 냄새에 붙들려
하늘 찔러대는 한 숨소리에 닫힌 귀
내가 먼저 본이 되지 못하였으니
누구를 탓하겠는가
오늘에야 겨우, 슈퍼 좌판 위 자리한
작은 오디 한알 한알에 새겨진 귀중함을 본다.
번호 | 분류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751 | 시 | 2017년 4월아 | 하늘호수 | 2017.04.26 | 123 |
750 | 시 | 봄이 왔다고 억지 쓰는 몸 | 하늘호수 | 2017.05.02 | 123 |
749 | 시 | 짝사랑 / 성백군 | 하늘호수 | 2018.11.13 | 123 |
748 | 시 | 사목(死木)에 돋는 싹 / 성백군 | 하늘호수 | 2019.06.04 | 123 |
747 | 시 | 사랑의 선물 / 필재 김원각 | 泌縡 | 2019.12.24 | 123 |
746 | 시 | 조각 빛 / 성백군 2 | 하늘호수 | 2024.01.30 | 123 |
745 | 시 | 가을 묵상/강민경 | 강민경 | 2020.10.06 | 123 |
744 | 시 | 가을, 물들이기 / 성백군 | 하늘호수 | 2020.11.10 | 123 |
743 | 시 | 아! 그리운 어머니! - 김원각 | 泌縡 | 2020.11.11 | 123 |
742 | 시 | 종아리 맛사지 1 | 유진왕 | 2021.08.07 | 123 |
741 | 시 | 빈집 / 성백군 | 하늘호수 | 2024.04.16 | 123 |
740 | 시 | 침 묵 1 | young kim | 2021.03.18 | 124 |
739 | 시 | 물거울 / 성백군 1 | 하늘호수 | 2021.07.13 | 124 |
738 | 시 | 시간 길들이기 / 성백군 | 하늘호수 | 2023.06.28 | 124 |
737 | 시 | 꽃의 화법에서 | 강민경 | 2017.04.20 | 125 |
736 | 시 | 사람에게 반한 나무 | 강민경 | 2017.07.01 | 125 |
735 | 시 | 포스터 시(Foster City)에서 / 성백군 | 하늘호수 | 2018.07.30 | 125 |
734 | 시 | 문학-갈잎의 노래 | 하늘호수 | 2020.03.17 | 125 |
733 | 시 |
속죄양 -어머니 떠나시던 날 / 천숙녀
![]() |
독도시인 | 2021.05.29 | 125 |
732 | 시 | 노년의 삶 / 성백군 | 하늘호수 | 2022.12.06 | 1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