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 상자 앞에서/강민경
슈퍼에 갔다가
좌판 위에 놓인
검은 오디 상자 앞에서
나는 영락없는 옛사람이다
주둥이 까맣게 물들이며
네 것, 내 것, 구별 없이 질리도록
나눠 먹던 생각에 군침이 돌아
쉽게, 작은 오디 상자를 들었다가
높은 가격표에 밀려 손힘이 풀리고
가난했지만 서로 배려하던
풋풋하고 따끈따끈하던
옛 인심만으로 허기를 채운다
흔해서 하찮게 여기던 것들이
때를 만나 이리 귀한 대접을 받는데
하물며, 사람 목숨은 왜 자꾸
내리막길을 구르는 돌 취급을 받는지!
세월호 사건의 참담한 현실 앞에서
네 탓, 내 탓만 찾다가
제 뱃속 썩는 냄새에 붙들려
하늘 찔러대는 한 숨소리에 닫힌 귀
내가 먼저 본이 되지 못하였으니
누구를 탓하겠는가
오늘에야 겨우, 슈퍼 좌판 위 자리한
작은 오디 한알 한알에 새겨진 귀중함을 본다.
-
잘 박힌 못
-
무심히 지나치면 그냥 오는 봄인데
-
요단 강을 건너는 개미
-
난산
-
그리움의 각도/강민경
-
부활
-
반쪽 사과
-
창살 없는 감옥이다
-
세월호 사건 개요
-
백화
-
어머니의 향기
-
죽은 나무와 새와 나
-
손안의 세상
-
바다를 보는데
-
6월의 창
-
오월의 아카사아
-
감나무 같은 사람
-
꽃 학교, 시 창작반
-
오디 상자 앞에서
-
모래의 고백<연애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