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11.28 16:02

역삼동 성당*

조회 수 625 추천 수 24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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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스름한 가을 마당에 꽃들이 놀더라.
젊은 꽃 어린 꽃 남자 꽃 여자 꽃
옛날 옛날엔 나도 꽃이었다.
상처 낭자한 꽃이었어도
아름다웠다.

내가 꽃으로 울던
꽃으로 기도하던
그곳에 갔다.
평평하던 임시건물 자리엔
첨탑 높은 성당이 지어지고
주변은 알아볼 수도 없게 변해버린 곳

늦게 들어간 저녁미사엔
그 옛날 내 울음을 받아주던 하느님이 계시더라.
아가야! 왔느냐.
긴 세월을 돌고 돌아 다시 여기 왔느냐.

아아 하느님.
나는 그 세월동안 무엇을 했습니까.
바다 건너로 도망쳐 씨줄날줄 꿈실만 엮어
삶도 없는 삶을 책 안에 쓰며
두둑하던 주머니만 비웠습니다.

메마른 눈을 무심히 들었을 때
스쳐가는 낯익은 얼굴
날보고 새댁, 새댁 부르던 주걱턱 아주머니
아직도 그 동네 그 성당에 있더라.

터벅터벅 걸어 나오던 어두운 마당에
꽃들은 가고
내 그림자만 서늘한데
가슴을 울려오는 소리
아가야. 잘 살았다. 잘 살았다.

나 아직도 하느님의 꽃
씨줄날줄 꿈실로 삶 아닌 삶 엮는 일
그 옛날 내게 주신 줄 이제야 알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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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백야/최광호 2004.12.04 14:09
    하나님께서 다 기억하고 있을 것이며 또 언젠가는 저 천국의 황홀한 곳에서도 그 동네가 빛을 뿌리고 있는 것을 보게 될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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