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11.28 16:02

역삼동 성당*

조회 수 629 추천 수 24 댓글 1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어스름한 가을 마당에 꽃들이 놀더라.
젊은 꽃 어린 꽃 남자 꽃 여자 꽃
옛날 옛날엔 나도 꽃이었다.
상처 낭자한 꽃이었어도
아름다웠다.

내가 꽃으로 울던
꽃으로 기도하던
그곳에 갔다.
평평하던 임시건물 자리엔
첨탑 높은 성당이 지어지고
주변은 알아볼 수도 없게 변해버린 곳

늦게 들어간 저녁미사엔
그 옛날 내 울음을 받아주던 하느님이 계시더라.
아가야! 왔느냐.
긴 세월을 돌고 돌아 다시 여기 왔느냐.

아아 하느님.
나는 그 세월동안 무엇을 했습니까.
바다 건너로 도망쳐 씨줄날줄 꿈실만 엮어
삶도 없는 삶을 책 안에 쓰며
두둑하던 주머니만 비웠습니다.

메마른 눈을 무심히 들었을 때
스쳐가는 낯익은 얼굴
날보고 새댁, 새댁 부르던 주걱턱 아주머니
아직도 그 동네 그 성당에 있더라.

터벅터벅 걸어 나오던 어두운 마당에
꽃들은 가고
내 그림자만 서늘한데
가슴을 울려오는 소리
아가야. 잘 살았다. 잘 살았다.

나 아직도 하느님의 꽃
씨줄날줄 꿈실로 삶 아닌 삶 엮는 일
그 옛날 내게 주신 줄 이제야 알았네.

?
  • ?
    백야/최광호 2004.12.04 14:09
    하나님께서 다 기억하고 있을 것이며 또 언젠가는 저 천국의 황홀한 곳에서도 그 동네가 빛을 뿌리고 있는 것을 보게 될것입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30 이제야 사랑을 박경숙 2005.06.20 435
29 그 거리의 '6월' 1 박경숙 2005.06.19 449
28 시냇가의 세 아이들 박경숙 2005.06.15 376
27 당신의 첫사랑 박경숙 2005.06.08 553
26 이사를 하면서 박경숙 2005.06.06 306
25 인생의 4계절 박경숙 2005.06.04 553
24 오해를 받을 때 말없이 사랑하여라. 2 박경숙 2005.05.31 704
23 봄날의 고백 2 박경숙 2005.03.20 376
22 5월의 노래 1 박경숙 2005.05.02 327
21 꽃을 보며 2 박경숙 2005.01.22 340
20 흔들리던 가을 뒤에* 4 박경숙 2004.12.01 389
» 역삼동 성당* 1 박경숙 2004.11.28 629
18 11월의 우요일 1 박경숙 2004.11.11 456
17 추석날 아침 박경숙 2004.09.27 274
16 고향집 폐허 3 박경숙 2004.08.04 619
15 가을 줄타기 박경숙 2004.10.12 393
14 10월엔 푸른곰팡이로 핀다. 박경숙 2004.09.30 312
13 지금은 등불을 밝힐 때 박경숙 2004.09.11 264
12 The Caveman Who Left His Cave 박경숙 2004.05.23 11844
11 그들도 한 세월 전에는 박경숙 2004.03.21 300
Board Pagination Prev 1 2 3 Next
/ 3

회원:
1
새 글:
0
등록일:
2015.06.19

오늘:
6
어제:
3
전체:
106,7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