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03.20 19:51

봄날의 고백

조회 수 376 추천 수 30 댓글 2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고백성사 2005 봄-


부활을 앞둔 삼월,
펼쳐진 책 속엔
오래 전 삼월의 만세운동에
목이 잘린 얼굴들과
죄수복 입은 유관순 누나
십자가 당신보다
슬프고 끔찍한 1919년의 삼월을
더 생각해온 사순절이었다

십자가 앞에 수없이 무릎 꿇었어도
당신 살을 뚫는 못 치는 소리
그 아픔보다
내게로 날아와 앉던 시린 꽃가루
가슴만 아프던
참으로 몹쓸 봄날이었다

삼월에 교묘히 들끓는
동해 바위섬 이야기
왜놈들의 작두날에 목이 잘렸다는
옛날 삼월의 사진을 다시 바라보며
그 왜놈들을 욕해보던 봄날이었다
내 가슴속엔
주인 없는 바위섬 하나 솟아나
외롭다 소리쳐도
동해 바위섬은 엇갈리는 주인 때문에
더 외로워진
참으로 씁쓸한 봄날이었다

허무를 가르치던 Ash Wednesday에서
올리브 가지 흔드는 Palm Sunday까지
봄빛은 너무 자주 깨어졌고
비는 너무 많이 내렸고
십자가는 너무 기뻤고
세상은 너무 들썩였다

3월 내내 유관순 누나는
책 속에서 나를 바라보고
목이 잘린 애국자들은
바라볼 곳도 없이 초점을 잃고 있다
이렇게 또 부활은 다가오고
수난하지 않았기에 부활할 것도 없는
통회하지 않았기에 부활할 것도 없는
공허한 영혼들이
실은 꺼이꺼이 울면서도
제가 울고 있는 줄도 모른 채
봄 햇살 같은 미소를 짓는다

웃으며 울며
깊어가는 봄날,
나의 바위섬 너머
동해의 바위섬 너머
유관순 누나 너머
가까스로 바라본 십자가
봄 햇살 그리 자주 깨어질 때마다
가난해 지던 나의 영혼
다 아시는 당신은
초라할수록 깊어지는
아름다움을
배우라 하신다
?
  • ?
    강릉댁 2005.03.21 01:35
    말하지 말라,
    말하지 말라
    타이르는 말씀 위로
    가슴에 응어리진 것들

    40일의 침묵은
    십자가 지고 가시는 길

    눈을 뜨면
    내 십자가 자갈길 위에서
    흙먼지 쓰며 끌려가네

    아직 깨어나지 않은 계절은
    얼음의 늪으로 이어지고

    내려놓지 못하고
    어깨의 피멍을 터뜨리는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어느 때쯤
    얼음이 녹고
    따스함이 깊어지면

    이 십자가,
    늪 가운데 뗏목이 되어 구원해 주시려나

    기도와 통회로
    눈물 흘리는 밤들이여,
    깨어나는 새벽이여.
    ----------------------------------------
    오랫만에 문학서재에 들렸는데 그대의 좋은 시가 보이는 군요.
    잘 있다는 소식 전하고 싶어서...
    지난 달, 그대의 소식을 미리 알았더라면
    달려가 축하해 줄수도 있었을텐데.
    늦게나마 가산문학상 받으심을 축하드리고
    소설분과 여러분들 만나시면 이곳에도 숨쉬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전해주세요.
    건강하시고
    성삼일과 부활, 기쁘게 지내세요.
    안녕. 강릉댁
  • ?
    박경숙 2005.03.21 11:22
    반가워라~ 강릉댁!
    어제 성지주일 미사에 다녀와 잠이 오지 않았어요. 이번엔 어쩐지 혹독한 사순절을 겪은 것 같아 새벽에 시를 써 올렸죠. 답글로 올린 그대 시도 만만치 않구려.
    소식 주어서 고마워요.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30 이제야 사랑을 박경숙 2005.06.20 435
29 그 거리의 '6월' 1 박경숙 2005.06.19 449
28 시냇가의 세 아이들 박경숙 2005.06.15 376
27 당신의 첫사랑 박경숙 2005.06.08 553
26 이사를 하면서 박경숙 2005.06.06 306
25 인생의 4계절 박경숙 2005.06.04 553
24 오해를 받을 때 말없이 사랑하여라. 2 박경숙 2005.05.31 704
» 봄날의 고백 2 박경숙 2005.03.20 376
22 5월의 노래 1 박경숙 2005.05.02 327
21 꽃을 보며 2 박경숙 2005.01.22 340
20 흔들리던 가을 뒤에* 4 박경숙 2004.12.01 389
19 역삼동 성당* 1 박경숙 2004.11.28 629
18 11월의 우요일 1 박경숙 2004.11.11 456
17 추석날 아침 박경숙 2004.09.27 274
16 고향집 폐허 3 박경숙 2004.08.04 619
15 가을 줄타기 박경숙 2004.10.12 393
14 10월엔 푸른곰팡이로 핀다. 박경숙 2004.09.30 312
13 지금은 등불을 밝힐 때 박경숙 2004.09.11 264
12 The Caveman Who Left His Cave 박경숙 2004.05.23 11828
11 그들도 한 세월 전에는 박경숙 2004.03.21 300
Board Pagination Prev 1 2 3 Next
/ 3

회원:
1
새 글:
0
등록일:
2015.06.19

오늘:
14
어제:
18
전체:
106,6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