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리는 날이면 어김없이 떠오르는 노래 carpenters의 'Rainny days are Monday.'가 있다. 여고 2학년 때던가 레코드판을 올려놓고 듣고 또 듣던 노래, 그러나 나 사는 동안 비는 월요일에만 내리지는 않았다. 그 노래에서의 Rainny day는 꼭 비가 내리는 날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우울한 월요일을 상징하고 있지만 어느 요일에 비가 내리건 나는 그 노래를 생각하곤 했다.
그때가 가장 철없이 행복하던 시절이었기 때문일까. 돌아보는 풍경 안엔 붉은 벽돌의 2층집이 보이고 내 방에서 내려다보이던 마당엔 금붕어가 살지 않는 뿌연 연못이 있었다. 중년의 내리막길을 행복한 모습으로 나란히 내려오시던 아버지와 어머니, 늘 손님이 끓고 음식 냄새가 나던 집안, 아직 미혼이던 건장한 두 오빠는 털이 숭숭 난 짐승 같은 다리(그 당시 내겐 그렇게 생각되었다.)로 집안을 휘젓고 다니고 일요일이면 한창 재롱을 부리는 조카들을 데리고 부모님을 뵈러오던 큰오빠와 큰언니 네 식구들. 그리고 미팅에 열을 올리며 미니스커트를 즐겨 입던 대학생 작은 언니, 그때는 모두가 젊고 건강했다.
삶이 우리를 위해 가장 좋은 순간에서 멈춰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렇다고 토네이도처럼 갑작스레 슬픔이 몰려오는 일 따위는 생각해 보지 않았다. 어느덧 짧지 않게 살아온 내 삶 안에는 언제나 따뜻한 등불이 있었고 한 잔의 차가 있었고 감미로운 음악도 있었다. 손을 내밀면 그다지 넘치지는 않아도 필요한 것들이 내 손에 잡혀왔고 나는 조금은 게으르고 여유로운 모습의 생을 이제까지는 잘 살아왔다.
그러나 어느 날 등불이 흐려지고 따뜻하던 찻잔이 식었다. 감미롭던 음악은 이따금 불협화음을 내며 울렸다 끊어졌다를 반복했다. 그것은 어머니가 떠나시던 3년 전 그 즈음의 내 생활 체감이었다. 적응할 수 없던 외로움에 먹지고 자지도 못하던 나는 급기야 한약방을 찾아가 온몸에 침을 꽂고 누워 눈물을 흘렸다. 진료실에 가득하던 클래식 음악엔 알 수 없는 목소리가 같이 울려왔다.
사는 일이란 그런 것이란다.
그것은 누군가가 너를 위해 밝혔던 등불,
너를 위해 마련했던 따뜻한 차와 음악이었다.
이제 누가 너를 위해 무엇을 마련해 준다는 생각은 하지 말아라.
차라리 네가 누군가를 위해 등불을 밝혀야하지 않겠니.
다른 사람을 위한 차를 끓여보렴.
그때 큰언니와 어머니를 한해 사이로 연거푸 보내고 몸과 바람이 휘청거리던 나는 그렇게 다시 살아났다. 그리고 태연한 척 살아온 몇 년의 세월 속에 슬픔은 다 잊혀진 듯 했다. 하지만 웃고 말하고 먹고 마시던 일상 속에 숨어 있던 조바심은 시간을 타고 풍선처럼 부풀어 왔다.
어머니 떠나신지 3년 만인 지난 초여름, 집안의 횃불 같던 큰오빠가 떠나셨다. 큰오빠의 유골을 납골당에 모시고 내려와 현기증에 비틀거리며 눈물을 흘리던 둘째 오빠, 그를 부축하며 같이 울던 순간엔 만약 또 다른 헤어짐이 있다면 그것은 좀 먼 세월 후의 일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운명은 늘 모르는 곳에 잠복하고 있다 느슨해진 우리에게 덮쳐오는가 보다.
유난히 단풍이 곱던 날, 아침 햇살이 장지문 사이로 아른아른 비쳐들던 고향집에서 다시 둘째오빠가 떠나셨다. 밤새 거칠던 숨이 가라앉고 아침녘이 되면서부터 고운 숨을 쉬어오던 그의 호흡은 마치 악보의 피아노시모처럼 점점 여리게 점점 작게 잦아들었다.
결코 놓고 싶지 않던 생을 이제는 흔연히, 가벼이 놓고 가듯 가볍게, 더 가볍게 쉬던 숨이 이윽고 멈춰지고 오빠의 몸은 생명체에서 물체로 돌아갔다. 누구에게든 한번은 오고야 만다는 그 전환의 순간은 마치 물가에 드리워진 치맛자락이 끝에서부터 적셔져 차츰 온몸이 젖어오듯 그렇게 가만가만 다가왔다.
임종의 순간을 함께 한 건 내게 첫 경험이었으나 나는 울지 않았다. 그곳에 있던 일곱 명 혈육의 잔잔한 흐느낌이 고요한 방안을 채우고 있었을 뿐이다. 우리는 완성의 과정을 밤새 지켜보았고 그 순간을 함께하며 스스로 경건해 졌다.
그렇게 또 하나의 내 따뜻한 사람을 보내고 비 내리는 일상에 앉아 쓸쓸한 미소를 짓는 나는 반복되는 헤어짐과 슬픔에 고무되어 있는 자신을 내려다본다.
저기 저 빗속엔 아직도 아스라한 불빛이 반짝인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따뜻한 찻잔과 청춘의 미소들..... 삶은 흘러갔으나 기억은 결코 흐름이 없이 차곡차곡 쌓일 뿐이다. 감당할 수 없이 쌓인 기억의 두께만큼이나 생은 무겁다. 그러나 어디로 흘러가는가. 이 무거움은 운명의 강을 가볍게 흘러 어디로 가려는가. 나 정착하는 곳도 아마 먼저 떠나간 그들이 간 그 영원의 품이리라.
이 11월엔 연옥의 소리가 들려온다. 울고 웃는 연옥의 질고, 아직은 견디어야 할 인생의 강이다. 하늘과 땅 사이, 생과 죽음 사이의 공간에서 절규하는 연옥의 바람소리, 나는 그 소리를 듣는다. 후두둑 떨어지며 낙엽을 적시는 저 빗소리 사이로 영혼과 영혼이 웃고 우는 소리, 뼈가 시린 고독으로 온몸이 휘어지는 소리, 그러나 그 고독의 깊이만큼 형용할 수 없는 빛으로 다시 태어나는 소리..........
이런 우요일, 나는 비가 되고 삶이 되고 죽음이 되어 온 세상에 떨어져 내린다.
그때가 가장 철없이 행복하던 시절이었기 때문일까. 돌아보는 풍경 안엔 붉은 벽돌의 2층집이 보이고 내 방에서 내려다보이던 마당엔 금붕어가 살지 않는 뿌연 연못이 있었다. 중년의 내리막길을 행복한 모습으로 나란히 내려오시던 아버지와 어머니, 늘 손님이 끓고 음식 냄새가 나던 집안, 아직 미혼이던 건장한 두 오빠는 털이 숭숭 난 짐승 같은 다리(그 당시 내겐 그렇게 생각되었다.)로 집안을 휘젓고 다니고 일요일이면 한창 재롱을 부리는 조카들을 데리고 부모님을 뵈러오던 큰오빠와 큰언니 네 식구들. 그리고 미팅에 열을 올리며 미니스커트를 즐겨 입던 대학생 작은 언니, 그때는 모두가 젊고 건강했다.
삶이 우리를 위해 가장 좋은 순간에서 멈춰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렇다고 토네이도처럼 갑작스레 슬픔이 몰려오는 일 따위는 생각해 보지 않았다. 어느덧 짧지 않게 살아온 내 삶 안에는 언제나 따뜻한 등불이 있었고 한 잔의 차가 있었고 감미로운 음악도 있었다. 손을 내밀면 그다지 넘치지는 않아도 필요한 것들이 내 손에 잡혀왔고 나는 조금은 게으르고 여유로운 모습의 생을 이제까지는 잘 살아왔다.
그러나 어느 날 등불이 흐려지고 따뜻하던 찻잔이 식었다. 감미롭던 음악은 이따금 불협화음을 내며 울렸다 끊어졌다를 반복했다. 그것은 어머니가 떠나시던 3년 전 그 즈음의 내 생활 체감이었다. 적응할 수 없던 외로움에 먹지고 자지도 못하던 나는 급기야 한약방을 찾아가 온몸에 침을 꽂고 누워 눈물을 흘렸다. 진료실에 가득하던 클래식 음악엔 알 수 없는 목소리가 같이 울려왔다.
사는 일이란 그런 것이란다.
그것은 누군가가 너를 위해 밝혔던 등불,
너를 위해 마련했던 따뜻한 차와 음악이었다.
이제 누가 너를 위해 무엇을 마련해 준다는 생각은 하지 말아라.
차라리 네가 누군가를 위해 등불을 밝혀야하지 않겠니.
다른 사람을 위한 차를 끓여보렴.
그때 큰언니와 어머니를 한해 사이로 연거푸 보내고 몸과 바람이 휘청거리던 나는 그렇게 다시 살아났다. 그리고 태연한 척 살아온 몇 년의 세월 속에 슬픔은 다 잊혀진 듯 했다. 하지만 웃고 말하고 먹고 마시던 일상 속에 숨어 있던 조바심은 시간을 타고 풍선처럼 부풀어 왔다.
어머니 떠나신지 3년 만인 지난 초여름, 집안의 횃불 같던 큰오빠가 떠나셨다. 큰오빠의 유골을 납골당에 모시고 내려와 현기증에 비틀거리며 눈물을 흘리던 둘째 오빠, 그를 부축하며 같이 울던 순간엔 만약 또 다른 헤어짐이 있다면 그것은 좀 먼 세월 후의 일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운명은 늘 모르는 곳에 잠복하고 있다 느슨해진 우리에게 덮쳐오는가 보다.
유난히 단풍이 곱던 날, 아침 햇살이 장지문 사이로 아른아른 비쳐들던 고향집에서 다시 둘째오빠가 떠나셨다. 밤새 거칠던 숨이 가라앉고 아침녘이 되면서부터 고운 숨을 쉬어오던 그의 호흡은 마치 악보의 피아노시모처럼 점점 여리게 점점 작게 잦아들었다.
결코 놓고 싶지 않던 생을 이제는 흔연히, 가벼이 놓고 가듯 가볍게, 더 가볍게 쉬던 숨이 이윽고 멈춰지고 오빠의 몸은 생명체에서 물체로 돌아갔다. 누구에게든 한번은 오고야 만다는 그 전환의 순간은 마치 물가에 드리워진 치맛자락이 끝에서부터 적셔져 차츰 온몸이 젖어오듯 그렇게 가만가만 다가왔다.
임종의 순간을 함께 한 건 내게 첫 경험이었으나 나는 울지 않았다. 그곳에 있던 일곱 명 혈육의 잔잔한 흐느낌이 고요한 방안을 채우고 있었을 뿐이다. 우리는 완성의 과정을 밤새 지켜보았고 그 순간을 함께하며 스스로 경건해 졌다.
그렇게 또 하나의 내 따뜻한 사람을 보내고 비 내리는 일상에 앉아 쓸쓸한 미소를 짓는 나는 반복되는 헤어짐과 슬픔에 고무되어 있는 자신을 내려다본다.
저기 저 빗속엔 아직도 아스라한 불빛이 반짝인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따뜻한 찻잔과 청춘의 미소들..... 삶은 흘러갔으나 기억은 결코 흐름이 없이 차곡차곡 쌓일 뿐이다. 감당할 수 없이 쌓인 기억의 두께만큼이나 생은 무겁다. 그러나 어디로 흘러가는가. 이 무거움은 운명의 강을 가볍게 흘러 어디로 가려는가. 나 정착하는 곳도 아마 먼저 떠나간 그들이 간 그 영원의 품이리라.
이 11월엔 연옥의 소리가 들려온다. 울고 웃는 연옥의 질고, 아직은 견디어야 할 인생의 강이다. 하늘과 땅 사이, 생과 죽음 사이의 공간에서 절규하는 연옥의 바람소리, 나는 그 소리를 듣는다. 후두둑 떨어지며 낙엽을 적시는 저 빗소리 사이로 영혼과 영혼이 웃고 우는 소리, 뼈가 시린 고독으로 온몸이 휘어지는 소리, 그러나 그 고독의 깊이만큼 형용할 수 없는 빛으로 다시 태어나는 소리..........
이런 우요일, 나는 비가 되고 삶이 되고 죽음이 되어 온 세상에 떨어져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