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창작 -성은 비요, 이름은 둘기 1 - 2 / 김영교
2017.10.07 16:08
성은 비요 이름은 둘기 1 & 2 - 김영교
성은 비요, 이름은 둘기- 김영교
입양과 명명은 터무니없이 일방적이었다. 초록 뒤 잔디밭에 어느 날 부터 찾아온 하이얀 새 한 마리는 초록바다에 하이얀 배 한 척 (sailing boat)이 었다. 성은 비요, 이름은 둘기, 아름다운 배합이었다.
쫑쫑 걸어 다니며 쪼고 있는 모양새가 배고파 보였다. 현미쌀과 물을 내 놓았더니 먹으면서도 경계의 눈빛이 역력했다. 잘 날지를 못하고 퍼덕일 때 모양새가 오른쪽 날개가 탈이 난 것 같았다. 남편과 나는 주의 깊게 관찰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잘 가고 우리 두내외는 대화가 많아졌다.
비가 오는 날이었다. 걱정이 많은 남편은 박스를 펴 지붕을 만들어주었다. 안전하게 페디오까지 올라와 잠을 잤다. 비가 또 많이 왔다. 이번에는 우산을 펴 남편은 더 안전한 집을 아주 잘 지었다. 비는 내 대신 깨끗이 둘기 똥을 청소해 주었다.
심심한 우리 내외는 돌볼 일이 생겨 기뻤고. 마음속으로 가족으로 입양하고 나니 더 애정이 갔다. 영글어 가는 동작 사진을 매일 찍었다. 화분을 치워 왕래의 길을 넓혀주었다. 계단을 하나씩 오르더니 날개를 자주 퍼덕여 댔다. 3주가 지났다. 어느 날 둘기는 뒷담벼락까지 날아갔다. 활동무대가 넓어졌다. 돌담으로 둘러쌓인 뒷뜰은 안전했다. 모이접시가 비워지지 않은 이상한 낌새에 밤이 되자 페디오 불을 켜 살펴보았다. 어딜갔을까 그의 집은 비어 있었다. 아직도 성치 않은 몸인데 그 날 그는 어디서 잤을까. 외박을 한 것이다. 다음 날 아침 돌아와 아무 일도 없었듯이 모이와 물을 먹었다. 우리는 반갑기도 했고 지난 밤 어딜 갔을까가 더 궁금했다. 저녁에 가고 아침에는 꼭 왔다. 이것이 한 달이나 반복되자 안돌아오면 어쩌나 남편과 나는 애기 다루듯 목소리도 줄이고 허리까지 굽히며 새 모이와 새 물을 갈아주고 주변도 깨끗이 치우며 정성을 다했다.
펫샵에 가서 별도로 둘기 모이를 사왔다. 잔디에서 놀다가 페디오로 올라와 먹고 살피고 쉰다. 두발을 감추고 배를 바닥에 대고 눈을 감았다 떴다하며 잔다. 먹는 만큼 배설물도 많다. 페디오 치우는 게 조금도 성가시지 않다.
달 반이 지나고 서울 갈 스케줄 때문에 신경이 쓰였다. 남편이 오물도 치우고 물 도 갈아주고 모이나 제때에 줄까 염려가 되었다.
유리문을 가운데 두고 잘 지내라고 둘기에게 내 여행계획을 알리며 말을 건넸다. 경청해서 알아들은 듯 눈을 한동안 깜빡이더니 옆 담벼락까지 쉽게 날아갔다. 그 다음 뒷켠 높은 소나무 가지로 옮겨 날아올랐다. 한참을 우리 집을 바라보며 부동자세로 앉아 있었다. 머리만 약간 움직일 뿐,아주 오랫동안이 었다. 여행짐을 싸는 사이사이 나는 시선을 떼지 않았다. 둘기는 눈치를 챈 것일까 그날 오후 작심한 걸까. 둘기는 그렇게 떠날 만큼 회복되었던 것릏 우리는 모르고 있었다. 머물렀던 이 세상을 놓고 둘기처럼 때가 되면 가볍게 떠날 수 있을까 나는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었다.
2 주만에 돌아왔다. 어제 공항에서 나의 첫 마디는 우리 둘기 돌아왔느냐 였다. 고개를 젓는 남편도 궁금하다고했다. 소통이 가능했던 둘기와의 관계가 좋은 추억으로 가슴에 남게 되었다. 둘기는 완쾌되어 그의 가족이 있는 애초의 둥지로 돌아갔을 것이 분명했다. 보석 같은 까망 눈망울과 그의 부신 흰색을 지금 볼 수 없지만 둘기는 완전히 회복되어 자기 자리로 돌아 간 것이다. 응당 그래야 했다. 나는 기뻤다. 더없이 밝은 햇살 속을 둘기는 날아오를 것이다. 이제는 푸른 창공이 둘기의 운동장이다. 둘기는 회복의 시간을 우리 집 뒤 잔디밭에서 얻었고 답례로 '떠날 때는 가볍게' 깃털교훈을 남겼다. 잔디를 잘 가꾸어 놓으면 훗날 다친 또 다른 둘기의 치유 센터가 되지않을까. 마음 모아 잔디에 물을 주며 둘기 생각에 잠긴다.
둘기 둘기, 비둘기, 너 잘 있지?
5/4/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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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은 비요, 이름은 둘기 -2
조카 결혼식 차 서울방문 2주를 끝내고 안착했다. 여독이 피곤한 눈을 계속 무겁게 눌르고 있었다.
도착한지 사흘 째 날이었다. 시차에 표류하느라 비몽사몽인 나를 찾는 남편의 고조된 목소리가 아랫층에서 들려왔다.
'왔어, 둘기가 왔어'
내 눈을 가득 채우는 둘기의 하이얀 몸체, 그것은 눈부신 반가움이었다. 아, 이렇게 고마울 데가....고맙다. 둘기야. 3주 반 만에 돌아와 주었다. 깨끗하게 밥상을 차려 밖에 내놓았다. 모이도 먹고 물도 먹었다. 먹이를 통해 나의 사랑은 이렇게 전달되었다. 날개가 다 나은 듯 여기 저기 힘 있게 날아다니는 모습이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생기 가득해 보였다. 가슴이 뛴다. 활기찬 모습을 보노라니 나도 모르게 기뻐 눈물이 글썽여졌다. 담 위로, 나뭇가지로 자유롭게 날아오르는 정상비상이 우리 두 내외를 퍽이나 행복하게 해 주었다.
아, 둘기는 나의 부재를 알아듣고 어디론가 은신처를 찾아 피했다가 돌아온 것이다. 둘기 같은 새하고도 소통이 이렇듯 가능한데 정성들이고 노력하면 사람끼리 불통은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아주 압도적으로 확신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돌아온 탕자를 반기는 마음이 되었고 잃었다 찾은 기쁨,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는 그 마음을 가늠하게 되었다.
그 마음을 헤아리게 된 것도 둘기의 가출이었다. 있을 때 잘 해야지... 남편을 돌아보았다.
둘기 둘기 비둘기야, 고맙다 그리고 건강해 져서 정말 고맙다.
'여보, 둘기는 남잔가 봐, 여자인 당신과 더 친한 것을 보니' 남편의 우스게 발설이 최고의 환영사였다.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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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인
2017.10.07 17:04
김영교 선생님, 안녕하심을 이 서재에서 뵙습니다.
저 비둘기만큼은 사람 구실을 하며 살아야겠다 싶기도 하고
정듦과 다시 만남은 사람 마음을 출렁이게 하는 소중한 것이구나.
깨달음도 와서 한 필의 비단 같이 귀하디귀한 글에
어줍은 댓글로 감사의 마음을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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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교
2017.10.07 17:05
이숙진선생님 소식도 끊기고 그렇게 시간은 흘러 우리 이곳에서 해후.
흔적 반갑고
정감어린 댓글 고맙고
김용석병원, 치료, 옛날 금잔디 추억
창백했던 내 뺨이, 그리고 볼연지
문운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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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uck
2017.10.08 10:38
성은 김이요 이름은 두케이!
조합된 맛인 관계로 이처럼 의도적으로 길게 작명한 것이다. (^^;)
날씨가 추울 땐 뜨겁고 시원한 국물이 있는 음식 내지 반찬이 제일이다.
가수 문희옥은 자신의 히트곡 <성은 김이요> 에서 이렇게 절규(?)한다'
지금쯤 그 누구를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 있을 까봐 차마
내 영혼까지 사랑하고 간 사람 내 전부를 사랑하고 간 사람
잊을 수가 없어요 잊을 수가 없어요 찾을 수도 없었어요
그러나 꼭 한 번은 만나야할 사람 성은 김 이름은 디에스...' 라고.
하지만 오늘 내가 조리한 '성은 김이요...' 라는 이 반찬은
문희옥의 주장과는 사뭇 반하는 논지(?)를 펼치고 있다.
'성은 김이요 이름은 두케이 알파벳 약자로 두케이이지요
지금쯤 그 누구를 사랑하는 김치가 되어 있을 까봐 허나 그 이름을 밝힐 수가 있어요
내 영혼까지 사랑하고 간 김치 내 전부를 사랑하고 간 김치
잊을 수가 없어요 잊을 수가 없어요 찾을 수는 있었어요
언제나 그리워서 먹어야 할 김치 성은 김 이름은 두케이' 라고.
사설이 길었다.(죄송하다!) 펌글 -
Chuck
2017.10.10 01:42
Ode to joy,
시월/ 황동규
1
내 사랑하리 시월의 강물을
석양이 짙어가는 푸른 모래톱
지난날 가졌던 슬픈 여정들을, 아득한 기대를
이제는 홀로 남아 따뜻이 기다리리.
2
지난 이야기를 해서 무엇하리.
두견이 우는 숲 새를 건너서
낮은 돌담에 흐르는 달빛 속에
울리던 목금(木琴)소리 목금소리 목금소리.
3
며칠내 바람이 싸늘히 불고
오늘은 안개 속에 찬비가 뿌렸다.
가을비 소리에 온 마음 끌림은
잊고 싶은 약속을 못다한 탓이리.
4
아늬, 석등(石燈) 곁에 밤 물소리
누이야 무엇 하나 달이 지는데
밀물 지는 고물에서 눈을 감듯이
바람은 사면에서 빈 가지를
하나 남은 사랑처럼 흔들고 있다.
아늬, 석등 곁에 밤 물소리.
5
낡은 단청 밖으론 바람이 이는 가을날,
잔잔히 다가오는 저녁 어스름.
며칠내 며칠내 낙엽이 내리고 혹 싸늘히 비가
뿌려와서......
절 뒷울 안에 서서 마을을 내려다 보면
낙엽 지는 느릅나무며 우물이며 초가집이며
그리고 방금 켜지기 시작한 등불들이 어스름 속에서
알 수 없는 어느 하나에로 합쳐짐을 나는 본다.
6
창 밖에 가득히 낙엽이 내리는 저녁
나는 끊임없이 불빛이 그리웠다.
바람은 조금도 불지 않고 등불들은 다만 그
숱한 향수와 같은 것에 싸여가고
주위는 자꾸 어두워 갔다
이제 나도 한 잎의 낙엽으로 좀더 낮은 곳으로
내리고 싶다.........................................................
‘시월’은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한 '즐거운 편지'와 함께 나이 스물 황동규 시인의 '현대문학' 등단작이다. 손끝으로 썼는지 가슴으로 받아 쓴 것인지는 알지 못하나 엄청 성숙한 서정성이 엿보인다. 가을엔 누구나 시인이 된다고 한다. 이때 시인이란 꼭 시를 쓰지 않더라도 눈동자에 힘을 빼고 하늘의 뭉게구름을 얼마간 바라본다든지 살랑거리는 코스모스나 노란 은행잎, 또는 단풍과 낙엽이 잠시 생의 행간에 머무는 것만으로도 시인의 성정을 갖는다는 뜻이리라. 더불어 이 땅에 살다간 혹은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시인들이 남긴 가을의 절창 가운데 한두 편 제목이라도 기억해낼 수 있다면 누군들 이 가을에 시인이 되지 않으랴.
그러는 동안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김현승의 <가을의 기도> 첫 소절이라도 문득 떠오른다면 우리에게 붙여진 시인의 칭호는 낙장불입된 팔광처럼 빛나리라. 그래서 우리 모두는 가을을 노래하는 시인이 된다. 물론 한 편의 시로 가을을 속속들이 담아내는 것은 불가능할지 모른다. 그러나 빛나는 가을의 시어들이 있기에 가을은 더 아름답고 눈물겨운 계절이다. 살면서 한번쯤 시인의 촉촉한 습성으로 가을을 바라보노라면 하늘은 더 높고 푸르며 산은 보다 싱그럽고 또렷해진다.
꼬리를 물고 뿅뿅 두더지처럼 솟아오르는 어이없는 쓰레기 같은 뉴스들에서 벗어나 공원벤치에 한참동안 멍하니 앉아있었다. ‘지난날 가졌던 슬픈 여정들을, 아득한 기대를’ ‘이제는 홀로 남아 따뜻이 기다리’는 느낌이 어떤지를 생각해보았다. 가늠이 되지 않은 채 ‘주위는 자꾸 어두워 갔다’ 너무 가을을 타지는 말자. 노 시인이 스무 살에 발견한 서정을 빌려 ‘이제 나도 한 잎의 낙엽으로 좀 더 낮은 곳으로 내리고 싶다’ 영문도 모른 채 무드도 필요 없이 더 낮게 또 가볍게. 비로소 노숙해진 기분이다. 물이 덜 든 단풍 잎사귀 하나 쪼르르 내려와 바짓가랑이에 매달린다. 시월의 추파에도 흔들리지 않을 만큼 덤덤해졌다. (권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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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교
2017.10.10 14:18
척척박사님:
파가니니 바이올린 선률 연속재생을 해놓고 김병현 시인을 생각했습니다.
<그가 살던 마을에도 가을이>
가라앉아있던 애상이 바이올린 연주로 피어올랐습니다.
감사! 황동규 시인의 시월이 1958년, 와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