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창작 - 꽃구경과 모란이 피기까지는 / 김영교
2017.10.12 14:34
꽃구경과 모란이 피기까지는 / 김영교
서울 방문 때 주신 큰 오라버니 선물가방에는 이외수의 책, 구상 시선 집과 건강식품 그리고 장사익의 CD ‘꽃구경’이 들어 있었다.
김용택 시인이 쓴 시 ‘이게 아닌데’를 불러 시의 묘미를 극대화시킨 소리꾼, 장사익을 가깝게 하다가 나도 모르게 그만 흠뻑 빠져들었다. 그의 대표작 ‘찔레꽃’은 국민가요처럼 모두가 즐겨듣고 흥에 취해 함께 흥얼거리지 않는가. 애잔함이 흐르는 노래들, 친숙해져있는 곡과 노래 말, 부담 없이 다가와 행복한 한 마당을 펼쳐준다.
새로 가담한 장사익 시리즈에 오라버니 선물 꽃구경 CD, 한곡한곡 듣는데 그 안에 들어있는 노래 ‘꽃구경’에 가서 내 아린 가슴이 더 절절해 지기 시작했다.
‘어머니 꽃구경 가요
따뜻한 봄 날 어머니는 좋아라고
아들 등에 업혔네‘
미국에 유학 온 나는 영주권이 없어 어머니 임종을 못 봐드린 불효여식이었다. 그래서 가슴에 남아있는 회한이 남다르다. 고교동창 남도 산사 순례가 있었던 지난 4월 섬진강에 흐드러지게 꽃비 내리던 벚꽃을 떠올리며 눈가가 하염없이 젖어들었다. 어머니는 가고 없고 어느 듯 어머니 자리에 와 있는 나를 발견하고 목이 매 이던 꽃구경이었다.
처음 노래를 시작할 때부터 그랬듯이 장사익은 호소력이 대단했다. 인생의 후반전을 아름답게 꽃 활짝 피우는 그의 창법, 독보적인 뛰어난 독창력으로 흥을 발산하는 대단한 소리꾼이다. 듣는 사람은 공명하며 함께 범벅이 되기에 누구나 그를 명창이란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미국 뉴욕, LA, 가는 곳마다 전석매진을 한 기록만 봐도 증명이 된다. ‘꽃구경’이 꽃피는 봄 날 미주로 날아와 펼친 뉴욕공연은 이민의 서러움을 달래는 위로차원에서 성공을 거두었다는 가슴 흐뭇한 신문기사를 읽고 기뻤다.
‘꽃구경’ CD에는 삶과 죽음을 분리하여 보지 않는 장사익의 관조적 태도가 깔려있다. 시공을 휘여 잡은 듯 교감과 대화로 이어가면서 가슴을 울리는 감동의 경지로 청중을 몰고 간다. 장사익의 에너지는 청중의 심혼을 매료시키는 소리를 내어 청중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삶, 죽음, 이별, 사랑을 온 몸으로 절절하게 토해내는 그의 열창은 언어와 목소리가 다른 문화권에 사는 외로움이나 서러움을 같이 흐느끼며 달래며 용감하게 일어서야 한다고 다그치는 힘, 그 자체였다. 가슴을 흔드는 공감대는이국땅에 쓰러져 흐느끼는 사람 들풀, 들풀의 손을 잡고 또 그 옆의 들풀이 서로를 일으켜 세운다. 이렇듯 장사익의 노래는 우리 모두가 사랑할 수밖에 없는 상생인 것이다. ‘돌아가는 삼각지’, ‘동백아가씨’, ‘장돌뱅이’, ‘봄날은 간다’ 등등 장사익의 특유의 감성으로 재해석, 그래서 많은 이들이 그의 노래를 통해 위안을 받기 때문에 공연도 그의 CD도 인기 높다 믿어졌다.
그의 노래에서 삶의 희로애락을 발견한다. 우리 자신의 얼굴과 닮은꼴을 찾을 수 있는 폭 넓은 공감대가 바로 그 해답이다. 그 뿐인가, 장사익은 태풍이 지나간 자리, 허허망망 바다에서도 겨자씨 한 톨 같은 희망을 건저 올려 ‘하늘가는 길’에서 조차 낙관주의를 지향해줘 여간 고맙지가 않다.
특혜처럼 나에게 다가왔다. 그의 소리가 새벽에 길어 올린 샘물처럼 청신하고 강한 생명력으로, 국경과 언어를 초월해 내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다. 바로 나의 아픈 체험이 그의 노래에서 걸러져 우주를 관통하는 차원 높은 정화과정에 절절히 공감, 그리하여 치유의 시 발아가 가능, 나는 회복되고 있었다. 외롭고 답답한 삶을 사는 아픈 나에게 ‘힘 내’ 뜨거운 응원가로 들려왔기 때문이다. 바로 음악치료였다.
6권의 나의 시집 표지를 그려준 초개 김영태* 화백이 72세로 세상을 떠났을 때 장사익은 강화도 전등사 수목장에 조가 ‘찔래꽃’을 헌화했다. 상상해본다. 초록 숲속에서 흰 두루마기의 장사익은 한 마리 학이 되어 초개를 하늘나라로 배웅해 드렸을 것이다. 전설 같은 실제 그림 한 폭이었다.
오늘 병원을 다녀왔다. 이마를 짚어주는 어머니 손길 대신 장사익의 ‘꽃구경’이 다가왔다. 나를 글썽이게 하는 그 시간 안으로 깊이 침잠한다. 가끔 이런 나를 나는 사랑한다.
2017년 제 62회 현충일 추념식 소식이 있다. 국립국군묘지는 나라 대통령도 참석한 자리, 흰 두루마기를 입은 소리꾼 장사익이 이 현충일 추념식에서 나라를 위해 꽃처람 진 영령들에게 힘찬 위로를 전했다. ‘모란이 피기까지는’를 열창하여 보는 이들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찬란한 슬픔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김영랑 시인의 시 ‘모란이 피기까지’를 국악 리듬 소고와 해금 반주에 맞춰 애절하게 불러 주위를 숙연케 했다는 뉴스를 접한다. 노가수의 눈물을 훔치는 모습이 감동을 선사했다는 소식은 더없이 뭉클했음을 부연해둔다.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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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uck
2017.10.13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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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uck
2017.10.16 04:42
꽃 구 경
어머니 꽃구경 가요
제 등에 업히어 꽃구경 가요
세상이 온통 꽃핀 봄날
어머니는 좋아라고 아들 등에 업혔네
마을을 지나고 산 길을 지나고
산자락에 휘감겨 숲길이 짙어지자
아이구머니나
어머니는 그만 말을 잃더니
꽃구경 봄구경 눈 감아버리더니
한 웅큼씩 한 웅큼씩 솔잎을 따서
가는 길 뒤에다 뿌리며 가네
어머니 지금 뭐하신대유
아 솔잎은 뿌려서 뭐하신대유
아들아 아들아 내 아들아
너 혼자 내려갈 일 걱정이구나
길 잃고 헤맬까 걱정이구나 -
Chuck
2017.10.16 05:14
낙엽끼리 모여 산다
조병화
낙엽에 누워 산다
낙엽끼리 모여 산다
지나간 날을 생각지 않기로 한다
낙엽이 지는 하늘가에
가는 목소리 들리는 곳으로 나의 귀는 기웃거리고
얇은 피부는 햇볕이 쏟아지는 곳에 초조하다
항시 보이지 않는 곳이 있기에 나는 살고 싶다
살아서 가까이 가는 곳에 낙엽이 진다
아, 나의 육체는 낙엽 속에 이미 버려지고
육체 가까이 또 하나 나는 슬픔을 마시고 산다
비 내리는 밤이면 낙엽을 밟고 간다
비 내리는 밤이면 슬픔을 디디고 돌아온다
밤은 나의 소리에 차고
나는 나의 소리를 비비고 날을 샌다
낙엽끼리 모여 산다
낙엽끼리 누워 산다
보이지 않는 곳이 있기에 슬픔을 마시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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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교
2017.10.16 16:13
척척박사님 :
꽃구경, 고맙습니다. 어머니 바다에 빠졌드랬습니다.
The Daydream- The Left -Digit Fall도 좋구요
또 Song for the Soul 연속재생해놓고 즐감, 잔잔한 음악이 참 좋군요.
분명 음악은 제 기억으로 특히 잔잔한 멜로디는 힐링의 효과가 있네요.
감사.
로버트 킨 케이드의 마지막 편지
이 편지가 당신 손에 제대로 들어가길 바라오.
언제 당신이 이걸 받게 될지는 나도 모르겠소.
내가 죽은후 언젠가가 될거요.
나는 이제 예순 다섯살이오.
그러니까 내가 당신 집 앞길에서 길을 묻기 위해
차를 세 운 것이 13년 전의 바로 오늘이오.
이 소포가 어떤 식으로든
당신의 생활을 혼란에 빠뜨리지 않으리라는데
도박을 걸고 있소.
이 카메라들이 카메라 가게의 중고품 진열장이나
낯선 사람의 손에 들어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참을 수가 없었소.
당신이 이것들을 받을 때쯤에는 모양이 아주 형편없을 거요.
하지만 달리 이걸 남길 만한 사람도 없소.
이것들을 당신에게 보내는 위험을,
당신으로 하여금 무릅쓰게 해서 정말 미안하오.
나는 1965년에서 1975년까지 거의 길에서 살았소.
당신에게 전화하거나 당신을 찾아가고픈
유혹을 없애기 위해서였소.
깨어 있는 순간마다 느끼곤 하는 그 유혹을 없애려고,
얻을 수 있는 모든 해외작업을 따냈소.
"빌어먹을, 난 아이오와의 윈터셋으로 가겠어,
그리고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프란체스카를 데리고 와야겠어." 라고
중얼거린 때가 여러 번 있었소.
하지만 당신이 한 말을 기억하고 있고,
또 당신의 감정을 존중해요.
어쩌면 당신 말이 옳았는지도 모르겠소.
그 무더운 금요일 아침,
당신 집 앞길을 빠져나왔던 일이 내가 지금까지
한일과 앞으로 할일 중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었다는 점만은 분명히 알고 있소.
사실, 살면서 그보다 더 어려운 일을 겪은 사람이
몇 사람이나 있을지 의아스럽소.
나는 1975년 "내셔널 지오 그래픽"을 그만두고,
나머지 세월을 대부분
내가 직접 고른 일에 바치고 살고있소.
한번에 며칠 정도만 떠나면 되는
작은 일을 골라 하고 있소.
재정적으로 힘들긴 하지만, 그런대로 살아나가고 있소.
언제나 그랬듯이 말이오.
작업의 많은 부분이 푸켓 사운드 주면에서 이루어지오.
나는 그런 식으로 일하는게 마음에 들어요.
남자들은 나이가 들수록 물을 좋아하게 되는 것 같소.
강이나 바다 말이오. 아, 그렇소.
이젠 내게 개도 한마리 생겼소. 황금색 리트리버.
나는 녀석을 "하이웨이" 라고 부르는데,
여행할 때도 대부분 데리고 다녀요.
녀석은 창문에 고개를 내밀고
좋은 촬영거리가 없나 두리번거리곤 하지.
1972년, 메인주의 아카디아 국립공원에 있는
벼랑에서 떨어지는 바람에 발목이 부러졌소.
떨어지면서 목걸이와 메달도 달아나버렸소.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그 주변에 떨어져 있었소.
보석상에 가서 목걸이 줄을 고쳐야 했소.
나는 마음에 먼지를 안은 채 살고 있소,
내가 표현할 수 있는 말은 그 정도요.
당신 전에도 여자들이 몇 몇 있었지만,
당신을 만난 이후로는 없었소.
의식적으로 금욕 생활을 하는 것은 아니고,
그냥 관심이 없을 뿐이오.
한번은 제 짝꿍을 사냥꾼의 총에 잃은 거위를 보았소.
당신도 아다시피, 거위들은 평생토록 한 쌍으로 살잖소.
거위는 며칠동안 호수를 맴돌았소.
내가 마지막으로 거위를 봤을 때는
갈대밭 사이에서 아직도 짝을 찾으며 헤엄치고 있었소.
문학적인 면에서 약간 적나라한 유추일지 모르지만,
정말이지 내 기분이랑 똑 같은 것 같았소.
안개 내린 아침이나 해가 북서쪽으로 기울어지는 오후에는,
당신이 인생에서 어디쯤 와 있을지,
내가 당신을 생각하는 순간에 당신은 무슨 일을 하고 있을 지
생각하려고 애쓴다오.
뭐, 복잡할 건 없지.
당신네 마당에 있거나, 현관의 그네에 앉아 있거나,
아니면 부엌의 싱크대 옆에 서 있겠지.
그렇지 않소?
나는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소.
당신에게 어떤 향기가 나는지,
당신에게 얼마나 여름 같은 맛이 나는지도,
내 살에 닿은 당신의 살갗이며,
사랑을 나눌 때 당신이 속삭이는 소리,
로버트 펜 워렌은
"신이 포기한 것 같은 세상"이란 구절을
사용한 적이 있소.
내가 시간에 대해 느끼는 감정과
아주 가까운 표현이오. 하지만
언제나 그런 식으로 살 수는 없잖소.
그런 느낌이 지나치게 강해지면,
나는 하이웨이와 함께 해리를 몰고나가
며칠씩 도로를 달리곤 한다오
나 자신에게 연민을 느끼고 싶지는 않소.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니까.
그리고 대부분은 그런 식으로 느끼지도 않고,
대신, 당신을 발견한 사실에
감사한 마음을 안고 살아가고 있소.
우리는 우주의 먼지 두 조각처럼
서로에게 빛을 던졌던 것 같소.
신이라고 해도 좋고, 우주자체라고 해도 좋소.
그 무엇이든 조화와 질서를 이루는
위대한 구조 하에서는,
지상의 시간이 무슨 의미가 있겠소.
광대한 우주의 시간 속에서 보면
나흘이든 4억 광년이든 별 차이가 없을거요.
그 점을 마음에 간직하고 살려고 애쓴다오.
하지만 결국, 나도 사람이오.
그리고 아무리 철학적인 이성을 끌어대도,
매일 , 매순간, 당신을 원하는 마음까지
막을 수는 없소.
자비심도 없이 , 시간이,
당신과 함께 보낼 수 없는 시간의 통곡 소리가,
내 머리 속 깊은 곳으로 흘러들고 있소.
당신을 사랑하오, 깊이, 완벽하게,
그리고 언제나 그럴 것이오.
- 마지막 카우보이, 로버트-
...............................................................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사진기자 로버트 킨케이드(소설에서의 나이는 52세이지만 영화에서 연기한 크린트 이스트우드의 나이는 65세였다)는 지붕이 덮힌 다리 로즈만을 촬영키 위해 메디슨 카운티라는 마을에 당도하여 길을 물으려 어느 집 앞에 자신의 낡은 트럭 Harry를 세운다. 과객 킨케이드는 바로 그곳에서 맨발에 청바지와 물 빠진 청색 작업복 셔츠를 입고 현관 앞 그네에 앉아 아이스티를 마시고 있는 중년 여인 프란체스카(메릴 스트립은 소설 속 나이 45세보다 한 살이 많았다)를 만난다. 마침 프란체스카의 남편과 아이들은 박람회에 참가하기 위해 도시로 떠나 3일 후에야 돌아올 예정이다. 여기서 그들은 일생에 한번밖에 오지 않을 사랑을 엮는다. 하지만 그들은 짧은 기간 애틋하고 격렬한 사랑을 나누지만 필연적 이별을 맞는다.
킨케이드는 왜 볼품없는 시골여인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꼈으며 프란체스카 또한 떠돌이 사진작가에게 그토록 쉽게 마음을 빼았겼을까? 교사직에 보람을 느꼈지만 남편의 반대로 일을 포기해야 했던 여인. 그리고 이탈리아 가곡을 틀어놓으면 팝송으로 바꾸는 딸, 요란한 소리를 내며 문을 여닫는 남편과 아들, 식탁에서의 침묵, 숨이 막힐 듯 적요한 집안 분위기... 그것은 예이츠의 시를 암송할 정도의 감성을 지닌 프란체스카에게 더욱 견디기 힘든 일상이었을 것이다. 그런 그녀 앞에 늘 그리워하던 고향 이탈리아의 바리를 가본 남자가 나타난 것이 사단이라면 사단이었다. 킨케이드는 프란체스카에게 이렇게 작업을 건다. '내가 사진을 찍어 온 것, 그 많은 곳을 다녔던 건 바로 당신을 만나기 위해서였고, 사랑하기 위해서였으며, 이렇게 확신에 찬 감정을 느껴본 것은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이오'
자신의 꿈을 버리고 살아가는 한 여인의 내면을 일깨워 그녀가 끝내 선택하지 못한 길을 지켜주고 기다리는 남자로 프란체스카에게 비쳐졌다는 것. 사랑의 조건은 이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 후 평생 동안 가슴속에 묻어만 두었던 두 사람의 사랑은 프란체스카가 세상을 뜨고서 그녀의 유품을 정리하던 자녀들에 의해 드러나게 된다. 킨케이드가 생을 마감하자 그의 가장 소중했던 카메라 니콘F가 상자에 담겨 프란체스카 앞에 도착하는데 그 안에는 빛바랜 쪽지 하나가 함께 들어 있었다.
'흰 나방이 날개짓 할 때(when white moths were on the wing) 다시 저녁 식사를 하고 싶으시면 오늘 밤 한번 더 찾아주세요, 언제라도 좋아요' 잠못 이루던 프란체스카가 한밤중 트럭을 몰고 달려가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로즈만)에 꽂아두었던, 로버트에게 보낸 쪽지(예이츠의 시를 인용한 초대의 메모)였던 것이다. 그리고 소설에는 이런 대목도 있었다. '친애하는 프란체스카.. 사진 두 장을 동봉하오. 하나는 해 뜰 무렵 초원에서 찍은 당신 사진이오. 당신도 나처럼 그 사진이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소. 또 렌즈통을 내려다보면 그 끝에 당신이 있소. 매디슨 카운티에서 찍은 사진이 잘 나왔소.당신을 사랑하는 로버트'
카메라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 사람들은 사진을 '기억을 지닌 거울'이라 하였다. 사진은 어둠 속에 묻히는 순간들을 영원한 것으로 만드는 '시간의 기술'로 사진 속에는 그때의 모든 색깔과 냄새와 소리까지도 함께 저장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흘 동안 사랑하고 평생 동안 그리워하는 그들의 사랑. 그 배경에는 굳이 그 기억을 현상, 인화, 확대하지 않았다하더라도 강한 사랑의 추억이 영원토록 자리할 수 있었기에 누구나 한번쯤 그런 사랑을 꿈꾸어 보는 것이다. 하지만 추억과 그리움은 사랑의 감정과는 그 재질이 다르고, 더구나 프란체스카가 남편의 전화를 받으며 로버트의 옷깃을 만지작거리는 장면에서 예감하듯이 만약 그를 따라갔더라면 그들 사랑은 사뭇 다른 양상으로 전개될지 누구도 모르는 노릇이다.
(권순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