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창작 -낯선 그 해의 방문객 / 김영교
2018.01.01 01:42
수필 - 낯선 그 해의 방문객 / 김영교
남편은 하던 사업을 접었다. 아니 38년이나 평생 하던 일이 그를 놓아주었다. 사다리에서 떨어진 낙상사고 전화 한통이 응급실로 나를 급히 불렀다. 달려갈 때 생과 사, 천국과 지옥이 이런 거구나 극명하게 가슴이 천 길 낭떠러지, 그 일 어제만 같았다.
은퇴라는 갑작스런 휴무시간이 와 안겼다. 일생을 앞장서서 최선을 다해 사업하던 그였다. 해외공장 확장에 출장도 잦고 친구들과 잘 어울려 골프 투어도 즐기던 그였다. 차고에 우뚝 서있는 골프백은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사람은 죽는 날까지 자기 할 일이 있어야 하고 좋아하는 일을 할 때 행복하다. 그가 평생 행복한 사람으로 남을 줄 알았다.
어느 날 낯선 파킨슨 씨가 찾아 왔다. 결과가 나온 날 이 넓은 세상에 내 남편에게만 찾아온 듯 하늘이 흙빛으로 변했다. 충격이었다. 남편이나 나는 파킨슨씨를 들어본 적도 만난 적도 없었다. 떠는 증세가 전혀 없어 그냥 낙상 사고 후유증일 뿐이라며 끝까지 고개를 저었다. 세컨드 오피니언 정밀검사를 또 거쳤다. 남편의 경우는 낙상사고와 노화가 서로 관련된 듯 신경전달 물질인 도파민을 내보내는 중뇌의 흑질 신경세포가 죽기 때문에 발생한 신경변성질환중의 하나라는 것이다. 뇌세포가 줄어들면서 동작이나 행동이 느린 운동장애가 그 특징이며 규칙적 처방약 복용이 15년에서 18년의 생명 연장은 가능하다고 한다.
나는 활동범위를 줄이고 삼식씨 아내로 적응하기 시작했다. 남편의 병간호와 섭생에 내 관심이 쏠렸다. 하루 세 번 시간 맞추어 규칙적으로 상을 차리는 편이고 사이사이 산책도 한다. 노후에 찾아온 이 방문객 파킨슨씨를 어떻게 돌려보낼 수 있을까. 치매나 뇌졸중 같은 악성병이 아닌 게 그나마 고마웠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살아온 날보다 그리 많지 않으니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힘껏 살리라 마음 다진다. 남은 내 삶의 제일 젊은 날이 오늘이고 오늘이 남은 내 생명의 첫날이라는 개념이 나를 덮친다.
두 번씩이나 투병 경력이 있는 나와 아버지의 와병을 염려한 큰 아들네가 지난여름 이웃으로 이사 오는 큰 결단을 내렸다. 백지장을 마주 들며 이웃에 다 모여 살게 되어 기쁘다. 기도학교에 나는 복학했다. 처음 일학년 때는 원망, 불평만 하는 투정기도 밖에 할 줄 몰랐다. 시간이 흘러 투정기도반에서 새벽마다 때 쓰는 때기도반으로 전과했고, 그 다음은 지난 일생 동안 곁에 있어준 건강한 남편을 고마워하는 감사기도반으로 월반했다. 새해가 온다. 남편도 나도 또 한 살 더 먹는다. 방문객 파킨슨씨도 또 한 살 먹는다. 함께 가는 거다.
중앙일보 이 아침에 12-30, 2017
동창 이은영/ 2018년 정월
손님, 오늘 손님 / 김영교
아주 먼곳에서
나를 만나러 온 손님
아무도 걸어간 적 없는
지도에도 없는 이 길을
무사히 당도했네
오늘은
남은 내 삶이 첫 출근하는 하루
깨끗한 복장, 예의 바른 어조
상냥한 미소와 친근한 표정
기분좋게 활보
오늘이 내 생일인 것 처럼
오늘은
깊은 어둠을 건너온 하루 여정을 가늠한다
스물넷의 하이얀 자루시간
낭비를 털고 계획을 넣어
순간 순간 오늘을 잘 살면
나머지 열두달은 그저-
펄럭이는 기쁨의 깃빨
하루만이라도
오늘
곧은 마음이 사랑하고
깨워서라도 사랑해야 하리
그리고 달려가 감사해야 하리
원없이
한없이
부끄럼없이
저 손님이 내 삶 마지막 기척인 것처럼
사랑해야 하리!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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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uck
2018.01.05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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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uck
2018.01.06 01:42
파사데나에서 새해
파사데나에서 두번째로 새해을 맞고 보냄니다
철새라고 부르는 삶이라 들 말했던가요
그러나 나 자신은 어느덧 이곳에 제법 익숙했으니
늦었으나
인생의 황혼 길이나
정착해 보려는
야심을 품어본다
늦었으나
인생의 황혼길이나
내 발길 이제는 더디고 지쳤으나
그 옛날의 그욕망
이곳은 아름다운곳
어디서던 조용이 살렴니다라고
매일밤 꿈 꾸어본다
조용히 살련다 나는
시끄러운 사람들 틈에서도
어는새 이곳 저녁은 깊어지고
내 주위는 고요와 내가슴을 달래는 음악뿐
이렇게 파사데나의 겨울의 어느 하루밤은
또 지나가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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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교
2018.01.07 22:32
첫손자 테니스 시합 온가족 동행 큰 개 두마리까지-
어젯밤 귀가.
환성과 침묵, 승자와 패자
둘다 값진 경험
파사데나는 city of grace & history!
좋은 데서 새해를 누리셨군요!
저는 이렇게 댓글을 이 아침도 누리고 있습니다. 당케!
꽃이름 외우듯이/ 이해인
우리 산 우리 들에 피는 꽃
꽃이름 알아가는 기쁨으로
새해, 새날을 시작하자
회리바람꽃, 초롱꽃, 돌꽃, 벌깨덩굴꽃,
큰바늘꽃, 구름채꽃, 바위솔, 모싯대,
족두리풀, 오이풀, 까치수염, 솔나리
외우다 보면
웃음으로 꽃물이 드는 정든 모국어
꽃이름 외우듯이
새봄을 시작하자
꽃이름 외우듯이
서로의 이름을 불러주는 즐거움으로
우리의 첫 만남을 시작하자
우리 서로 사랑하면
언제라도 봄
먼데서도 날아오는 꽃향기처럼
봄바람 타고
어디든지 희망을 실어 나르는
향기가 되자
- 시집『꽃은 흩어지고 그리움은 모이고』(분도,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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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란 꽃은 죄다 아름답습니다. 보는 시각에 따라 예외도 있겠습니다만
이럴 땐 시비하지 마시고 그냥 눈감아 주는 것도 예의라고 생각합니다.
꽃 이름은 어떻습니까. 꽃보다 더 아름다운 꽃 이름도 참 많지요.
그런데 그 꽃의 이름을 외우고 이름을 가만 불러주면 꽃만이 아니라 부르는 사람까지도 아름다워진다는 사실을 아시는지요. 김춘수 시인도 그랬지요.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고.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고 말입니다. 그럴 때 내게로 와 꽃이 된 그도 그지만 이름을 불러준 나도 꽃이 되었던 건 아닐까요.
아니면 나비가 되었든가요
세상에 ‘이름 모를 꽃’이란 게 어디 있답니까. 식물도감이나 인터넷을 뒤지면 다 제 이름을 갖고 산과 들에서 그 이름을 불러주기를 은근히 희망하고 있지요.
사람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사람이 꽃보다 더 아름답다는 노래가 흥겨운 리듬때문에만 사람들로부터 사랑받았던 게 아닐겁니다.
사람이건 꽃이건 그 귀한 이름을 즐겁게 불러주고, 기쁨으로 화답하는 향기로운 나날들을 맞는다면 세상은 온통 아름다운 꽃동산이겠지요. 꽃 이름을 알아가듯,
선생님이 새로 맡은 반 아이들의 이름을 일일이 외우고 불러주듯 새해를 시작한다면
우리의 삶에도 아름다운 꽃물이 환하게 들지 않을까요.
어제 면목없는 시와시와 신년회임에도 귀한 걸음해주신 분들을 비롯하여
이런저런 경로로 응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인사드리며
한 분 한 분 꽃같은 이름들을 호명해 봅니다.
'꽃이름 외우듯이' 새해를 시작하겠습니다( 권 순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