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고수필 - 짦음의 미학 / 김영교

2017.02.11 02:03

kimyoungkyo 조회 수:641

짧음의 미학 - 김영교

 

달디 단 비가 내렸다. 오랜 가뭄 뒤끝이라 남가주는 몹시 반가워했다. 그동안 목이 타들어가던 나무들이 살맛이 났다. 비를 흠뻑 맞고 ‘행복’하다고 분명 소리치고 있는 듯 너풀댔다. 귀 기울리면 '행복합니다' 아우성이 들릴듯 하다. 행복이란 무엇일까. 부족함 없이 만족 할 때 느끼는 기쁘고 평안한 마음 상태가 아닐까 싶다. 가뭄으로 타들어가던 마음에 시원한 우기는 분명 행복한 젖음이었다.

 

짦아서 난처한 것중에 여자 치마가 있다. 짧아서 귀한것 중에 '행복'이란 녀석이 있다. 행복에 대한 나의 경험은 어디까지나 개인적이다. 생명이 지탱되기 위해 결핍이 채워져야 하고 바로 그때 오는 자족의 느낌이다. 나에게 있어 행복은 오래 지속되지 않는 성질의 것이고 기간이 짧아서 그 가치가 높고 귀하다고 보는 쪽이다. 빈번하게 그 느낌을 만나기는 하지만 그 순간이 오래 지속되지 않아도 불평한 적은 없다. 지속적이면 벌써 행복이 아니다란 생각 때문이다. 행복감은 본인만이 안다. 내 느낌에 결핍이 채워지는 때는 밖이 아니고 안에 있는 마음이다. 진동, 울리고 울려 포만의 진동가운데 솟는 에너지이다.

 

사람들은 오늘도 행복의 파랑새를 찾아 길 떠난다. 그 떠남 끝에 안겨지는 마음의 공허는 자기 자신 만의 것이다. 행복의 순간들은 떠남이 아니라 머물음 가운데 있는데도 말이다

 

베토벤의 교향곡 9번을 듣노라면 그 중 ‘환희의 찬가’는 나를 늘 행복에 젖어들게 한다. 가슴이 먼저 행복하다고 말한다. 하나의 외부현상이 필연적 존재성으로 내 몸에 생명적 의미를 부여 하고 있다. 온 몸과 마음이 커다란 하나의 귀가된다. 합창이 나오면 흡수되어 일어나 지휘도 하고 따라 흥얼거리기도 한다. 사람 목소리의 장엄함 바로 그것이 교향곡 안에 있는 합창의 힘이었다. 내 오감은 정확하게 일어나 높낮이 따라 함께 흐른다. 감동하고 공명한다. 흔들리는 나를 붙잡아 생각을 잘 정리 해주는 지휘자는 수많은 일들이 지나가는 길목에 행복의 전류를 보내는 것이다.

 

넓게 트인 바닷가나 숲속 키 큰 나무들의 싱싱함 앞에서 심호흡을 할 때 자연과 동화되는 듯 그 때도 진정한 행복이 오는 것이다. 햇볕 고른 오전, 뒤뜰에서 아이리스의 만개를 만난다. 내 느낌은 아주 아늑하다. 뿌리가 약간 돌출한 반 고흐의 보라빛 아이리스가 바로 뒷 정원에 군무(群舞)를 이루고 있다. 몇 년째 무더기로 꽃을 피워 폴 게티 뮤지움의 많은 추억을 끌고 온다. 흙을 보듬고 떡잎을 떼어주며 바람에 비뚤어진 꽃대를 바로 세워줄 때면 손끝을 통해 생명전류가 전달된다. 바로 행복 느낌에 직행이다. 정성으로 키운 꽃밭은 행복 거울이다. 그리운 얼굴이 비춰지면 나는 목소리를 낮추어 대화한다. 살아 있는 것은 숨 쉬는 것이고 오늘 하루 이렇게 너를 들여다 볼 수 있어는 행복하고 그래서 감사한다고. 나를 순간순간 다가가게 하는 자연은 언제나 행복을 준비하고 기다리는 가슴이다.


좋아하는 일을 할 때 나는 늘 행복하다. 행복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즐기는 것이다. 작품을 퇴고할 때 그렇다. 행복한 그 시간을 사랑한다. 내가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들과의 지속적인 관계 유지는 소통이며 그 소통은 교분을 극대화시킨다. 이 문학적 사회적 지지, 공감대를 이야기할 때 가슴은 어항속의 행복한 물고기가 된다.

 

되돌아보면 나에게는 행복한 순간들이 참 많았다. 탈고나 퇴고할 때 고민하며 마무리 지어가는 그 과정 역시 가슴 뻐근한 성취감을 안겨준다. 행복하다고 고백하는 순간순간들, 낮게 넓게 꽃밭에서 바라보는 -몽우리에서 만개 까지 - 꽃 마음이 그랬다. 첫 손녀를 안았을 때 그 어느 때보다 많이 행복했다. 그뿐인가 암 병동 졸업하던 날 감사한 마음은 불순물이 없는 증류수 행복에 젖어 버렸다. 그 순간에 왜 눈물이 나왔을까?

 

이렇듯 나의 행복감은 작고 사소한 것들을 통하여 온다. 그들이 존재하는 한 나는 늘 행복대열을 행진하게 될 것이다. 내안에 있는 마음의 북이 공명을 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따뜻하게 뭉클 내게로 전해오는 울림통이 있는한 세상 부러울 것 없다. 행복은 울림이다. 파르르 떠는 울림이다.

 

-나는 행복합니다 / 나는 행복합니다 / 정말 행복합니다.

-중략

나는 행복합니다 / 나는 행복합니다 / 정말 행복합니다

윤항기 목사의 ‘나는 행복합니다’ 이 노래만 봐도 그렇다. 노래을 부르다 보니 어느 틈에 걱정을 잊게 된다. 입으로 표현하고 가슴이 시인하면 노랫말처럼 행복해지는 메커니즘이 신기하다. 아, 생각난다. 노래을 통해 얻어지는 행복감, 누군가가 생일에 불러주던 ‘Happy Birthday' 생일축하 노래는 세계에서 제일 많이 불러지는 행복 노래라 하지 않는가.


드디어 남가주 가뭄이 해결, 연일 빗줄기다. 계속되는 비설거지 하느라 비에 흠뻑 젖어 턱이 덜덜 떨려왔을 때 느낌은 화초도 나도 살아있다는 것, 행복이며 기쁨인 것이다. 영구적은 아니지만 짧아서 귀한 그리고 자주 방문해주는 그 짧은 임재, 나의 행복관을 엿보는 주말이다.


행복하다고 생각하는가, 그대는! 

2-9-2017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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