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0.10 19:26

멸치를 볶다가

조회 수 333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멸치를 볶다가 / 성백군

 

 

먹이 찾아

바다를 휘젓고 다니면서

파도 속에 묻혀 길을 잃고 헤매기도 하고

절벽에 부딪혀 등뼈가 부러지기도 하면서

그 작은 것이

험한 세상을 얼마나 힘들게 살았을까

 

세상살이라는 게 살면 살수록

인정사정없이 모질고 험난하여 저서

작고 힘이 없다고 봐 주지는 않는 법

어부의 촘촘한 어망에 걸려

생을 마감하기까지 얼마나 헐떡거렸으면

내장엔 피 한 방울 남아 있지 않은 걸까

 

프라이팬에서

다글다글 볶기며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한다

말 한마디 못하고 입을 앙다문 채

입 대신 몸으로 냄새만 풍긴다

 

젓가락으로 휘젓는 나

살아있는 내가 죽은 나를 뒤치기는 것처럼

멸치를 뒤치기다가 죽은 자는 말이 없다고 하지만

생명이 있는 동안은 힘껏 살았으니

이왕이면 좋은 맛 우려내려고 이리저리 살피며

노르스름하게 익을 마지막 때까지

정성을 다해 멸치를 볶는다.

내가 볶인다.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133 이월란 2008.03.03 162
1132 윤혜석 2013.06.27 240
1131 별 셋 / 성백군 하늘호수 2024.07.16 9
1130 별 하나 받았다고 강민경 2014.12.07 340
1129 별리동네 이월란 2008.03.16 115
1128 별은 구름을 싫어한다 강민경 2013.12.03 282
1127 별이 빛나는 밤에 file 작은나무 2019.03.17 94
1126 별처럼-곽상희 1 file 곽상희 2021.02.26 72
1125 별천지 하늘호수 2017.12.12 304
1124 별천지(別天地) / 성백군 하늘호수 2021.05.11 79
1123 볏 뜯긴 수탉 / 성백군 하늘호수 2021.03.23 71
1122 병상언어 이월란 2008.03.05 123
1121 보내며 맞이하며 헤속목 2021.12.31 183
1120 보름달이 되고 싶어요 강민경 2013.11.17 217
1119 보훈 정책 / 성백군 하늘호수 2023.05.16 121
1118 시조 복수초 / 천숙녀 file 독도시인 2021.02.12 132
1117 시조 복수초 / 천숙녀 file 독도시인 2022.02.23 260
1116 복숭아 거시기 1 유진왕 2021.07.16 97
1115 복숭아 꽃/정용진 시인 정용진 2019.04.04 108
1114 복숭아꽃/정용진 정용진 2015.03.24 227
Board Pagination Prev 1 ... 53 54 55 56 57 58 59 60 61 62 ... 114 Next
/ 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