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수필 - 학처럼 날아서 / 김영교

2017.02.04 19:21

kimyoungkyo 조회 수:302

학처럼 날아서 / 김영교

 

농구 시합하다가 첫 손자가 발을 삐었다. 마침 방학 중이라 용하다는 흥인당 시침 치료차 일주일에 3회씩 치료에 임했다. 그 다음 달 초 Las Vegas에서 있을 큰 시합을 위해 조속한 힐링이 우선이었다. 어린 것이 할머니 말을 믿고 시침에 임한 게 여간 고맙지 않았다. 치료에 전념하면서 손자의 왼쪽 다리를 부둥켜안고 나는 치료에 기도의 힘을 보탰다. 열세 살짜리가 한 시간 넘게 수십 개의 길고 짧은 바늘을 꽂고 묵묵히 견뎌내는 과정을 지켜봤다. 엄지를 치켜 장하다는 사인을 했다. 기특해서 생수를 마시게 하고 맛있는 점심을 먹였다.

 

발육이 정상인 것 같은데 손자는 뼈가 약한가? 손자는 검도 선수다. 자기키만 한 상패를 받았을 때 나는 무척 기뻐 눈물이 다 났다. 가슴에 ‘金’을 수놓은 검도복은 위엄 있어 보였고 늠름했다. 운동을 무척 재미있어 해 동네 학교 농구팀에도 속해있다. 손자 자신이 좋아하니깐 아들네도 나도 덩달아 열심을 다하는 후원자가 되었다. 그래서 다친 게 안쓰럽고 혹시 시합 날 까지 회복되지 않을까봐 걱정이 되었다.

 

애들은 그렇게 다치면서 크고 아물면서 영글어 가나보다. 대신 아파주지 못하는 할미 마음이 안타까웠다. 느긋하게 마음먹으며 치료와 회복에 시간을 같이 했다. 녀석이 쑥쑥 자라고 있었다. 커져가는 발과 키를 체감하면서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것을 목격하였다. 틴이 된 열 세 살짜리 앞에서 명령하고 간섭하고 지시하려고만 한 내 의자를 치워버렸다. 지난여름 방학은 그래서 특별했다

손자 침 치료 때문에 소 구릅모임에 나는 나의 불참을 알렸다. 그랬더니 날아온 Get-well 카드 한 장, 날개를 펴고 날아오르는 학 그림 카드, 그 안에 적힌 섬세한 글과 정겨운 마음을 만났다. 일인 몇 역을 살고 있는 바쁜 한 친구의 정성이었다. 다친 내 손자에게 까지 마음을 써주는 그녀의 원만한 사람관계를 살펴보며 많이 배운 지난여름이었다. 작은 인연 한 귀퉁이를 공유하고 있는 나에게 내 손자에게까지 둥글고 따스한 관심을 부어주는 친구가 늘 고마웠다.

 

옛날이 떠오른다. 그 친구와 내가 누린 인연- 정성과 배려를 쏟고 기도와 사랑으로 오가며 다독여준 그 숱한 순간들.... 깃발처럼 푸르게 내 기억을 펄럭인다. 흐르는 시간 속으로 흘러가버린 고통스럽던 삶의 현장과 사건들, 따뜻했던 우리 삶의 봄날 기억들.....그 때 그 시간이 지금도 같은 속도로 흐르고 24시간 분량으로 내 곁을 지나고 있다. 봄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 순서대로, 밝았다 퇴색되고 팽팽했다가 탈력 잃는 세월이 계절을 지나고 있다. 간단한 메시지를 적어서 위로해주는 친구가 있어 삶은 큰 위로를 받게 된다. 위로하는 그 ‘고마움’은 고마움을 싣고 우주를 도는 마음열차가 아닌가 싶다.

그 학 그림의 Get Well 카드 한 장의 효과는 컸다. 발은 땅을 딛고 살지만 학처럼 고고하게 하늘을 날아오르도록 그 카드는 격려해주었다. 손자의 삔 발에까지 마음 써주는 친구의 사랑이 고마웠다. 내 친구가 기원하던 우정의 학처럼 나도 학이 되어 건강의 푸른 하늘을 날아오르고 싶어졌다.

 

천 년 맺힌 시름을

출렁이는 물살도 없이

고운 강물이 흐르듯

학이 날은다

천 년을 보던 눈이

천 년을 파닥거리던 날개가

또한번 천애(天涯)에 맞부딪노나

산 덩어리 같아야 할 분노가

초목도 울려야 할 설움이

저리도 조용히 흐르는구나.

후략-

 

서정주 시인의 학의 첫 부분이다.

 

응석둥이로 알았던 어린 손자가 침 바늘치료를 거뜬히 받고 회복되어 Las Vegas 시합에서 드디어 우승하였다. 고통 후에 온 낭보였다. 숫하게 발이 삐고 뼈가 어긋나는 순간들이 손자의 삶에 올 것이다. 상승의지를 가지고 학처럼 푸르게 날아오르기를 나는 오늘도 소원해본다.

 

2-4-2017 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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