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05.06 13:39

밤에 피는 꽃

조회 수 689 추천 수 1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세상 모든 꽃들이 기억으로 남는 절차가 떠오른다. 꽃이 누가 보거나 말거나 악착같이 독존하는 붙박이 코닥컬러 사진일 수는 없지 않은가. 꽃은 보는 것과 보이는 것들의 노예인 우리가 잡고 늘어지는 현존의 복사체. 보고 싶다, 보고 싶다, 하며 당신이 주문처럼 뇌까리는 꽃의 복사체는 죽었다 깨어나도 실존이 아니야. 미안하다. 실존은 기억 속에서만 살아난다. 소중한 순간순간들, 부질없는 역사를 소리 없이 기록하는 꽃이 내 전부일 것이다. 꽃은 추억의 블랙 홀 속으로 완전히 흡인돼 버렸어. 저 아프도록 아슬아슬한 장면장면들. 밤에 피는 꽃은 생각지도 않던 어린 시절 불알친구와 꿈에 나누는 대화다. 반세기 전쯤에 야, 이놈아! 하던 친구 모습이 떠오르네. 밤에 피는 꽃은 한 순간 찌르르 당신 코 밑으로 부서지는 향기가 아니야. 밤에 피는 꽃은 망각 속에서 후루루 돌아가는 영상이다. 끝내는 약속처럼 잊혀지는 몸짓이다. 꽃 한 송이가 비단이불을 턱까지 덮고 죽은 듯 편안하게 누워있네. 잠간 숨을 몰아 쉬면서 오른쪽 팔을 좀 움직였을까? 지난밤 머리를 두었던 곳에 발이 두 개 놓여 있고 발바닥을 대담하게 수직으로 세웠던 자리에 커다란 머리가 옆으로 얹힌 아침이 밝아오네. 간밤에 어디 바람이 심하게 부는 세상을 쏘다니다 왔구나! 머리가 쑥밭이 된 낯익은 얼굴. © 서량 2005.03.18 (문학사상, 2005년 5월)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31 나는 외출 중입니다/강민경 강민경 2019.05.23 87
130 봄비, 혹은 복음 / 성벡군 하늘호수 2015.08.18 87
129 나목(裸木)의 울음 / 성백군 하늘호수 2018.12.24 87
128 어둠이 그립습니다 / 성백군 하늘호수 2019.02.05 87
127 촛불/강민경 강민경 2019.02.03 87
126 두루미(鶴) / 필재 김원각 泌縡 2019.06.25 87
125 산행 / 성백군 2 하늘호수 2021.03.17 87
124 시조 풍경 / 천숙녀 file 독도시인 2021.06.09 87
123 시조 코로나19-칩거蟄居중 / 천숙녀 file 독도시인 2021.08.08 87
122 시조 코로나 19 – 방심放心 / 천숙녀 2 file 독도시인 2021.08.16 87
121 개펄 풍경 성백군 2009.01.22 86
120 열쇠 백남규 2009.01.28 86
119 불안 강민경 2012.01.13 86
118 운명 / 성백군 하늘호수 2019.06.25 86
117 나그네 / 필재 김원각 泌縡 2019.09.14 86
116 파묻고 싶네요 / 泌縡 김 원 각 泌縡 2020.02.06 86
115 럭키 페니 / 성백군 하늘호수 2020.06.09 86
114 세상 감옥 / 성백군 하늘호수 2021.05.18 86
113 시조 다시한번 / 천숙녀 file 독도시인 2021.03.30 86
112 고향 흉내 1 유진왕 2021.07.13 86
Board Pagination Prev 1 ... 103 104 105 106 107 108 109 110 111 112 ... 114 Next
/ 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