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05.06 13:39

밤에 피는 꽃

조회 수 726 추천 수 1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세상 모든 꽃들이 기억으로 남는 절차가 떠오른다. 꽃이 누가 보거나 말거나 악착같이 독존하는 붙박이 코닥컬러 사진일 수는 없지 않은가. 꽃은 보는 것과 보이는 것들의 노예인 우리가 잡고 늘어지는 현존의 복사체. 보고 싶다, 보고 싶다, 하며 당신이 주문처럼 뇌까리는 꽃의 복사체는 죽었다 깨어나도 실존이 아니야. 미안하다. 실존은 기억 속에서만 살아난다. 소중한 순간순간들, 부질없는 역사를 소리 없이 기록하는 꽃이 내 전부일 것이다. 꽃은 추억의 블랙 홀 속으로 완전히 흡인돼 버렸어. 저 아프도록 아슬아슬한 장면장면들. 밤에 피는 꽃은 생각지도 않던 어린 시절 불알친구와 꿈에 나누는 대화다. 반세기 전쯤에 야, 이놈아! 하던 친구 모습이 떠오르네. 밤에 피는 꽃은 한 순간 찌르르 당신 코 밑으로 부서지는 향기가 아니야. 밤에 피는 꽃은 망각 속에서 후루루 돌아가는 영상이다. 끝내는 약속처럼 잊혀지는 몸짓이다. 꽃 한 송이가 비단이불을 턱까지 덮고 죽은 듯 편안하게 누워있네. 잠간 숨을 몰아 쉬면서 오른쪽 팔을 좀 움직였을까? 지난밤 머리를 두었던 곳에 발이 두 개 놓여 있고 발바닥을 대담하게 수직으로 세웠던 자리에 커다란 머리가 옆으로 얹힌 아침이 밝아오네. 간밤에 어디 바람이 심하게 부는 세상을 쏘다니다 왔구나! 머리가 쑥밭이 된 낯익은 얼굴. © 서량 2005.03.18 (문학사상, 2005년 5월)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95 앞모습 서 량 2005.07.10 385
94 여행기 :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었던 시인을 찾아서 이승하 2005.07.10 815
93 만남을 기다리며 이승하 2005.07.10 389
92 유나의 하루 김사빈 2005.07.04 617
91 믿어 주는 데에 약해서 김사빈 2005.07.04 449
90 석류의 사랑 강민경 2005.06.28 556
89 피아노 치는 여자*에게 서 량 2005.06.22 685
88 노란리본 강민경 2005.06.18 295
87 빈 집 성백군 2005.06.18 288
86 풀 잎 사 랑 성백군 2005.06.18 327
85 유월(六月) / 임영준 윤기호 2005.05.31 295
84 아우야, 깨어나라 고영준 ko, young j 2005.05.18 394
83 밤에 듣는 재즈 서 량 2005.05.17 314
82 Fullerton Station 천일칠 2005.05.16 211
81 [가슴으로 본 독도] / 松花 김윤자 김윤자 2005.05.11 293
80 연두빛 봄은 김사빈 2005.05.08 391
» 밤에 피는 꽃 서 량 2005.05.06 726
78 유나의 웃음 김사빈 2005.05.04 501
77 아침에 나선 산책 길에 김사빈 2005.05.04 287
76 사모(思慕) 천일칠 2005.04.26 254
Board Pagination Prev 1 ... 106 107 108 109 110 111 112 113 114 115 Next
/ 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