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의 작은 전시회 / 김영교

 

사라는 친구의 딸이다. 언어 장애가 있지만 희로애락 감정 표시를 할 줄 알아 나만 보면 천진한 미소로 뛰어오곤 한다. 그 사라에게 감추어진 재주가 있다. 그림을 잘 그린다. 색깔에 대한 감응이 비상하다. 사라의 색깔 선택은 얼마나 화려한지, 밝게 배합을 잘하는지 놀랍기만 하다. 어지러울 법한 현란힌 색깔로 그린 그림도 편안함이 전달되어 오는 것이 신기하다. 내면 깊이 끓고 있는 열망이 색깔을 통해서 분출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어느 날 사라의 그림 20여편이 동네 코코호두 실내 벽에 전시되는 기회가 있었다. 그림 전부가 다 팔리는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걸도록 기회를 준 주인의 문화적 발상이었다. 무료 봉사차원이었다. 한 장애소녀의 눈빛에 반짝이는 희망을 깃들게 한 동기부여 사건임에 틀림없다.

 

그 후로 계절에 맞게 빈 벽은 그림을 전시해 이 동네 문화원 분위기를 선보이고 있다. 여러 문학 서적이 꽂혀있는 작은 서가가 배치되어 있는 것만 봐도 주인의 안목을 가늠하게 된다. 깨끗한 화장실 가는 통로 옆에는 희귀한 화초가 늘어진 댕기머리의 운치를 자아내고 있다. 먹고 마시고 만남에 부드러우면서도 섬세한 시각적 터치를 보태 아늑한 카페 분위기를 살려내고 있다. 만남과 쉼터에 빈 벽을 전시공간으로 제공하는 배려가 고무적이지 않는가. 이익을 뛰어넘어 지역사회에 참여하는 이런 이타심이 기대된다. 그 기여도의 중요성과 관심 더불어 고객과 맺는 관계에서 수준 있는 주인의식아 느껴진다.

 

오늘은 하늘 높고 바람 맑은 가을날이다. 빈 벽은 손님을 기다린다. 깨끗이 닦은 전면 유리창 안쪽 실내에는 청명한 계절이 먼저 들어와 좌정하고 앉아 있다. 출입문 가까이 놓인 각가지 작은 화초가 내 시선을 끈다. 홈 디포에도 없는 그 꽃잎 화분이 그곳에 놓여있다니... 얼마 전 그만 작은 딸 화분을 실수로 깨트려 어디서 또 구하나 고심하던 참이었다. 우리 집 그 꽃잎 화분은 모녀 세트였다. 반가움에 가슴이 마구 뛰었다. 판다면 기꺼이 사고 싶었다.

 

내 실수로 깨트려 엄마와 생이별을 당한 딸 화분, 나의 미안한 마음은 끝 간 데를 몰라 했다. 코코호두 빈 벽 주인의 예기치 않은 또 다른 배려가 내 품에 꽃잎 딸 화분을 안겨줬다. 이름도 모르는 그 작은 화초를 담은 딸화분과의 만남! 이렇게 큰 기쁨을 주는 힐링 화초가 되다니 믿겨지지 않았다. 뒷뜰 우리집 화초 가족이 된 딸 꽃잎 화분을 바라볼 적마다 잃었던 양이 돌아온듯 이렇게 행복해 진다. 그림이 사라에게 힐링 테라피가 되듯이.

 

자기의 소유를 내주며 고객의 결핍을 채워줄 줄 아는 이런 배려는 주위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게 아니지 않는가. 빈 벽을 내 주며 상술을 뛰어넘은 업소가 이 동네에 있다는 그 사실 하나에도 산동네에서 이사 잘 내려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애우가 그린 이름 없는 그림을 달아줄 내 마음에 빈 벽은 있는가 살펴본다. 이산가족이던 딸과 어미 화분의 만남을 가능게 한 작은 선행이 살맛나는 큰 세상을 만들어간다. 화초가꾸기를 통해서라도 얻을 수 있는 작은 행복은 마음에 빈벽이 클수록 불어난다. 나의 글이 어느누구의 마음을 울리는 작은 종이고 싶다. 나의 이 눈뜸이 빈 벽으로 가는 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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