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퇴고 / 성백군
나뭇잎 물든
가을 숲길을 걷습니다
낙엽들이 어깨에 부딪히며 발끝에 차이며
땅 위에 떨어져 뒹굽니다
하늘은
맑고, 멀고, 너무 높아 따라갈 수 없어서
평생 지고 다니던 괴나리봇짐을
다 풀었습니다
노란 잎, 빨간 잎……,
벌레 먹고 멍든 잎들을 내려놓을 때가
가장 아팠습니다만
품 안의 자식들마저 제 삶 따라 떠나고
직장에서도 쫓겨나다시피 한 이 나이에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오랜만에 커피숍에 들여
흰 머리 애어른들과 수다를 떨었습니다
계급장이 위력을 발하지 못하는 초등학교 동기들
“야, 너,” 하고 마구 이름을 부르다 보니
순수한 시(詩) 한 편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