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3.25 12:46

저녁별

조회 수 162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저녁별


      
                                                                                                 이 월란




찬연한 어둠의 무대가 차려지기도 전, 대본을 잃어버린 빙충맞은 신인배우처럼 허둥지둥 나와버렸다. 왜 태어났을까. 아직 어둠을 모르는데. 왜 생겨났을까. 저리 서투른 외눈박이 눈빛으로. 절망으로 빚은 삶의 좌판 위에 카스트로 목이 졸린 데칸고원의 달릿*같은 가녀린 목숨으로.


생리 중의 도벽같은 습관성 우울이 싸늘히 옆에 뜨고. 어둠의 정교한 끌로 세공되지 못한 저 어슴푸릇한 조명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생의 가녘으로 밀려난 내 잊혀진 사랑으로. 그 땐 내 작은 우주를 다 비추고도, 아니 태우고도 남았을 단 하나의 기억으로.


나의 시를 죽을 때까지 읽게 해 달라던, 나의 시어들을 따라 움직일 얼굴 없는 독자의 숨겨진 눈빛처럼. 마음을 구걸해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의 머리 위에 겸허히도 떠 있다. 하늘의 오선지 위에 엇박자로 잘린 싱커페이션같은 음보 하나. 실낱같이 잦아드는 한숨도 위태한 저 혈연같은 여윈 빛에 잇대어 보면. 왜 태어났을까. 이 환한 저녁에.

                                                                                            



* 달릿(Dalit) : 산스크리트어로 ‘깨진’ ‘짓밟힌’이란 뜻으로 신의 몸에서 태어나지 않은, 상위 카스트를 섬기는 최하위 계층인 불가촉천민(untouchable)을 가리킨다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795 종아리 맛사지 1 유진왕 2021.08.07 123
1794 시조 코로나 19 -무탈無頉 / 천숙녀 file 독도시인 2021.08.27 123
1793 시조 코로나 19- 가을 오면 / 천숙녀 file 독도시인 2021.09.09 123
1792 시조 2월 엽서 . 1 / 천숙녀 file 독도시인 2022.02.15 123
1791 빈집 / 성백군 하늘호수 2024.04.16 123
1790 휴양지 김우영 2012.05.16 124
1789 시조 메타버스 독도랜드 (Metabus DokdoLand) / 천숙녀 file 독도시인 2022.01.08 124
1788 시조 동백 / 천숙녀 독도시인 2022.01.24 124
1787 침 묵 1 young kim 2021.03.18 124
1786 시조 목련 지는 밤 / 천숙녀 1 file 독도시인 2021.04.10 124
1785 시조 환절기 / 천숙녀 file 독도시인 2021.05.03 124
1784 시조 노래 / 천숙녀 file 독도시인 2021.07.13 124
1783 물거울 / 성백군 1 하늘호수 2021.07.13 124
1782 시조 코로나 19 –가을비 / 천숙녀 file 독도시인 2021.09.28 124
1781 시조 2월 엽서 . 2 / 천숙녀 file 독도시인 2022.02.16 124
1780 기타 ■소위 다케시마의 날과 독도칙령기념일 소고■ file 독도시인 2022.02.22 124
1779 시간 길들이기 / 성백군 하늘호수 2023.06.28 124
1778 미망 (未忘) 이월란 2008.02.17 125
1777 꽃의 화법에서 강민경 2017.04.20 125
1776 사람에게 반한 나무 강민경 2017.07.01 125
Board Pagination Prev 1 ...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 114 Next
/ 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