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빛 / 성백군
(시집 : 풀은 눕지 않는다. P110)
밤마다 섬돌 밑 귀뚜리 슬피 울더니
처서(處署) 지나 백로(白露)까지 열닷새,
장사(葬事)지내고
늦더위 서방님과 생이별 했나
조석(朝夕)으로 서늘한 기운
숨어 내리는 이슬에
귀뚜리 울음이 청승맞게 고여서
괜히, 가을빛이 울먹거린다
산마다 들마다 알곡들로 가득하고
단풍은 천지사방 뛰어다니는데
하늘은 자꾸 높아만 가
갈수록 멍청해지는 가을빛
아들딸 짝지어 살림 내주고
할 일 다 했다고 자조하는 늙은이 마음 한 귀퉁이
골 때리는 허전함이 저런 것일까
바보처럼 소갈머리 다 내어주고
갈 곳이 따로 없어 헤매다가
하늘 깊이 빠져서 눈물 뚝뚝 떨어뜨린다.
48 – 09082005
*2005년 월간 스토리문학 10월호에 실린 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