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껍질을 벗기며
곽상희
사과가 뚝 떨어졌다
착취 한번 이기심 한번 탐욕 한번 휘두르지 않던
네 연약함, 이제 순수의 완성을 이루었는지
파르르, 우주 하나의 멜로디가 사과의 소리만큼
넓어졌네
내 손안에서
가만 가만 분배를 하는 들리지 않는
소리의 분자
이글 이글 타는 8월의 태양, 햇빛은 기억의 땀을 흘리고
그 날 거친 들 제 길을 찾은 사과꽃의 향기
숲과 들 골짝을 지나 온 바람의 상처
효소처럼 녹아
사과의 껍질이 내 손안에서 옷을 벗고
쓴맛도 단맛도 아닌 맛의 향기
둥그스럼한 현혹의 눈빛이다
사과, 시간마다 낯서른 향기
나, 네 천만 겹 얼굴을 탐하다니
나의 검은 손 감히 날카로운 난도질 하며
네 고독한 순수 잔인한 채로 허물다니
사과가 나뭇가지에서 떨어진다는
말의 중력과
거듭난다는 말은 어떻게 다를까
너는 내 안에서 녹아 지구의 혈맥을 돌고
나는 네 안에서 우주의 젖을 빠는
들꽃 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