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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 사람들은 책을 읽지 않는다, 베스트셀러 위주로 읽는다, 인문학의 위기는 독서인구가 준 데서 온 것이다, 한국의 도서관은 독서실 기능에 치우쳐 있다, 인터넷이 책을 잡아먹고 있다……. 이런 말은 어제 오늘에 제기된 것이 아니다. 2월 5일 <독서신문>에 난 기사를 보니 우리나라 도서시장의 환경이 더욱 나빠지고 있어 한숨이 절로 난다.


  매출규모 400억대에 이르는 대형 출판 그룹이 2007년에도 꾸준한 매출 신장세를 기록했다고 한다. 이와 같이 대규모 출판사가 출판시장을 장악하는 바람에 작은 출판사는 계속해서 도산, 다품종 소량 생산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 출판사도 기업화 되어 ‘돈’이 될 책은 만들어지고 ‘돈’이 안 될 책은 만들어지지 않게 되는 것인가. 인터넷의 기능이 책을 통한 지식의 습득을 앞지르고 있기는 하지만 지혜의 전수는 책이 감당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책을 읽지 않고 있다. <독서신문>의 기자는 대한출판문화협회가 발간한 『출판연감』의 작년 통계를 제시하면서 책의 발행 종수와 발간 부수에 있어 사회과학과 순수과학, 문학 세 분야가 급격한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고 한다.


  대학에서 문학을 공부하겠다는 수험생들을 대상으로 면접을 하는 과정에서 무슨 책을 읽고 있는지 일일이 물어보았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와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은 다들 읽고 있었고, 세계 명작 고전은 아무도 읽지 않고 있었다. 예전에는 아주 드물게,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을 읽었다고 말하는 학생이 있었는데 이제는 그런 학생조차 없다.


  나는 지난해와 올 연초에 감명 깊게 읽었던 16권의 책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렇게 좋은 책을, 이렇게 정성스럽게 만들었는데, 안 팔리고 서점가에서 사라지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이 이 글을 쓰게 한다. 여기 소개하는 책 중에서 단 1권의 책이라도 사서 본인이 읽거나 주변 사람(이번에 대학에 들어간 자식이나 조카 등)에게 선물하면 얼마나 좋을까.


  숭례문이 활활 타는 이 밤에 잠은 오지 않고, 그래서 내가 감명 깊게 읽은 책 16권에 대한 서평을 짧게 써나가려고 한다. (책 소개 순서는 무순)



  1. 서경식 지음, 한승동 옮김, 『시대를 건너는 법』, 한겨레출판, 2007.


  재일교포 칼럼니스트 서경식 씨의 글은 진지하다. 서경식 씨는 역사 청산을 제대로 못한 우리나라와 역사를 조작하는 일본 사이에 정착하지 못하고 부유하는 디아스포라의 산 증인이다. 일본에서 재일교포 2세로 태어나 자라고 공부하여 동경경제대학교 교수가 된 서경식 씨는 일본의 역사왜곡과 인종차별을 정면으로 비판한다. 이런 언행이 일본에서 살아가는 그에게 음으로 양으로 압박을 가할 것이다. 하지만 양심의 목소리로 그는 일본의 지식인과 정치인들을 향해 지금도 자행하고 있는 숱한 잘못을 ‘똑 부러지게’ 지적하고 비판한다. 일본에서 교육받은 이의 눈으로 보니 한국 사회도 모순투성이다.

  현대를 살면서 역사를 반추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이 일을 제대로 하고 있는 자의 글은 짤막짤막하지만 그 울림은 대단히 크다. 한일관계는 늘 미묘할 수밖에 없는데, 그것의 이유와 과정과 결과에 대해 이렇게 명쾌한 해석을 한 글을 나는 이전에는 본 적이 없다. 우리는 일본을 잘 모르면서 막연히 적개심과 동경심이라는 양가감정을 갖는데, 이 책은 일본을 ‘제대로’ 알게 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서경식 씨의 두 형은 공부하러 대한민국에 왔다가 재일교포 유학생 간첩단 사건에 억울하게 연루되어 1971년에 투옥, 각각 1988년과 1990년에 출옥하였다. 일본의 부모는 천추의 한을 품고 두 아들의 출옥을 보지 못하고 임종을 맞이했다. 두 형의 이름은 서승과 서준식이다.



  2. 하종강, 『길에서 만난 사람들』, 도서출판 후마니타스, 2007.


  ‘노동 교육’을 하는 하종강이 노동 현장에 몸담고 있는 사람 55명을 만났다. 몸으로 일해서 먹고살고, 그렇게 노동하는 이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의 아픔과 슬픔을, 삶과 꿈을 한 권의 책에 수놓았다. 노동자와 노동운동가의 체취와 체온이 물씬 느껴지는 책이라 현장감이 생생하다. 워낙 치열하게 삶을 영위하고 있는 사람들이라 인터뷰 기사 하나하나가 감동적이다. 80년대에 요원의 불길처럼 일어난 노동운동의 결과 이 땅에는 노동재벌도 형성되었지만 아직도 노동자에 대한 차별과 박해가 심하다. 이 책을 읽다보니 수많은 노동자의 자기희생적 삶이 우리 사회의 소금 구실을 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노동운동이 이제는 노사분규 해결의 차원에 머물지 않고 인권운동, 환경운동, 장애인복지, 노인복지, 다문화가정 이해와 지원, 대안학교운동, 희생자 추모 등의 차원에서 행해지고 있음도 알게 된다. 20세기 종반과 21세기 노동 현장의 목소리를 이만큼 생생하게 전한 책이 또 있으랴. 발로 뛰어다니며 쓴 책이라 책상머리에서 읽기가 송구스러웠다.




  3. 박노해, 『여기에는 아무도 없는 것만 같아요』, 느린걸음, 2007.


  시인 박노해가 수첩과 카메라를 들고 레바논으로 갔다. 레바논은 지금 완전히 쑥대밭이 되어 있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이 난민촌을 짓고 살고 있는 레바논의 일반인 거주 지역을, 자력갱생을 위해 뭉친 헤즈볼라가 숨어 있다고 습격하여 무차별 학살한다. 수많은 집이 파괴되고 수많은 사람이 죽은 레바논의 폐허를 헤집고 다닌 박노해의 작가정신에 경의를 표한다. 지구 저편 중동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이 땅의 지식인들이 수수방관하고 있는데 박노해는 부자 동네를 제외하고는 폐허가 되어 있는 그곳에 가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책으로 썼다. 돌아와서는 이 나라 정부의 무관심을 비판하면서 일일시위를 했다. 가슴 아픈 사연들이 차분한 문장력에 힘입어 일상에 지친 나를 일깨운다. 이 책의 인세 수입은 지구촌의 평화를 위해 쓰일 것이라고 한다.




  4. 나렌드라 자다브 지음, 강수정 옮김, 『신도 버린 사람들』, 김영사, 2007.


  인도를 제대로 알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꼭 읽어야 할 것이다. 엄청난 빈부 격차, 요지부동인 카스트 제도, 정치적 불안과 경제적 수탈에 시달린 인도의 한 가족이 겪은 가족사를 번역한 책이다. 천민인 달리트 출신으로서 인도중앙은행 총재와 재무장관을 역임했고 현재 푸네 대학 총장인 저자 나렌드라 자다브는 가족의 연대기를 써 인도의 개혁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신도 버린 사람들』의 기교는 『백년 동안의 고독』에 미치지 못하지만 감동의 깊이는 충분히 가르시아 마르께스의 작품에 필적한다. 『백년 동안의 고독』은 환상적 리얼리즘이지만 『신도 버린 사람들』은 리얼리즘 그 자체이다.



  5. 정순우, 『공부의 발견』, (주)현암사, 2007.


  사교육비를 우리나라만큼 많이 쓰는 나라가 또 있을까. 미국 유학생 10만 명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고 하니 초중고생과 대학생을 합쳐 지금 외국에 나가 공부하고 있는 학생이 거의 백만 명에 달할 것이다. 국내 상황은 어떤가. 새 정권은 영어교육을 거의 국책사업으로 하겠다고 난리다. 대학생의 국어 실력은 맞춤법에 맞게 쓸 줄도, 띄어쓰기를 제대로 할 줄도 모르는 수준이고, 비문이 속출하는 문장으로 글을 써 문맥이 안 통할 정도이다. 몇 해 전에 교양수업을 해보았는데 다수의 학생이 수업시간에 영어단어를 외우고 있었다. 토익 점수를 잘 받아야 취직이 되기 때문이다. 국어국문학과와 문예창작학과에 영어 원어 전공과목이 개설되고 있으니 두말해 무엇 하랴.

  『공부의 발견』은 이 나라의 옛 선비들의 공부에 대한 논의를 쉽고도 자상하게 풀어 쓴 책이다. 제1부는 옛사람들의 공부에 대한 생각을 정리한 총론이고 제2부는 각론으로, 서경덕, 이황, 조식, 허균, 안정복, 정약용이 쓴 학문연구의 당위론과 방법론을 정리해서 실었다. 교육일선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읽기를 권하고 싶은 책이다. 아래는 정신의 자유를 위해 공부하라고 한 서경덕의 시이다.


  책 읽던 그 옛날엔 세상 다스리는 일에 뜻을 두었건만

  만년에는 안회의 가난을 달갑게 여기도다.

  부귀에는 다툼이 있으니 손대기 어려우나

  자연에는 금하는 이 없으니 몸을 편히 쉴 수 있네.

  약초 캐고 낚시하여 배를 채울 수 있고

  달을 노래하고 바람을 읊으니 정신이 맑아지네.

  공부가 의심하지 않음에 이르니 쾌활함을 알게 되고

  헛되이 백 년 사는 사람만은 면하게 되었네.



  6. 정희재, 『당신의 행운을 빕니다』, 샘터, 2007.


  우리 민족은 일제치하에 엄청난 고통을 받았다. 공출, 징용, 징병, 고문, 학살, 정신대, 창씨개명, 신사참배……. 21세기인 지금, 그에 못지않게 식민통치를 하는 나라가 중국이며, 식민지민의 고통을 당하고 있는 나라가 티베트이다. 중국은 티베트가 독립을 하면 소수민족들이 연이어 독립을 요구할까봐 철저하게 독립의 기운을 억누르고 있다. 중국에 대한 반항의 조짐이 조금이라도 보이면 잡아다가 무자비하게 고문, 학살한다.

  저자는 이런 티베트에서 도저히 살 수가 없어 인도로 넘어온 사람들을 취재하여 한 권의 책을 썼다. 이 책의 강점은 취재 노트가 아니라는 데 있다. 참된 여행기는 나그네의 객수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체류자의 참여의식에서 나오는 것이리라. 저자는 고아 아닌 고아로 살아가는 망명지의 아이들과 동고동락하는 동안 가장 아름다운 인간의 모습을 발견한다. 이 책은 티베트의 과거와 현재에 대한 기록이면서 인간의 본질에 대한 질문과 대답이기도 하다. 히말라야를 넘어오면서 동상에 걸려 양발의 발가락을 다 절단한 아이의 눈빛을 보라. 가난하고 순박한 티베트인을 무자비하게 탄압하는 중국의 식민통치에 저자는 분노한다.



  7. 송경용, 『사람과 사람』, 생각의나무, 2007.


  ‘송경용 신부의 나눔, 그 아름다운 사랑의 이야기’라는 부제 그대로, 성직자의 길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말해주는 일화 모음집이다. 송 신부는 연세대 건축학과에 다니다가 인생의 방향을 성직자로 바꾼 사람이다. 못 배운 사람에게 가르침을 베풀고, 마음이 황폐한 사람에게 사랑을 전해주고, 가난한 사람에게 생활의 터전을 마련해준 이가 송경용 신부다. 만남의 과정에서 일어난 갖가지 사연을 읽고 있노라면 이 겨울에도 마음이 푸근해진다. 또한 송 신부의 이타적인, 자기희생적인 삶의 자세에 절로 고개가 수그려진다. 삶의 현장에서 만난 수많은 사람과의 인연을 밝힌 이 아름다운 책을 읽고 있노라니 참된 성직자의 길은 바로 저러해야 하거늘…… 생각하게 되고, 이기적인 삶을 살아가는 나 자신을 반성하게 된다.



  8. 임마꿀레 일리바기자/스티브 어윈 공저, 김태훈 옮김, 『내 이름은 임마꿀레』, 섬돌, 2007.


  원 세상에, 이런 끔찍한 도피처가 있다니! 저자가 일곱 명의 동료와 함께 석 달 동안 숨어 지낸 어느 목사 집의 욕실 크기는 가로 세로 1미터이다. 1994년의 일이었다.

  아프리카 르완다 내의 두 부족 후투족과 투치족은 벨기에의 식민 통치 과정에서 사이가 나빠져 독립 이후 몇 십 년째 학살극을 자행한다. 벨기에는 소수인 투치족을 지배계급으로 차출, 고등교육을 받을 기회를 주며 일종의 친일파로 길들였다. 후투족은 증오의 칼을 갈았고, 교육을 통해 독립사상을 갖게 된 투치족이 독립을 요망하자 벨기에는 후투족의 증오심을 부추겨 독립운동을 한 투치족 10만 명 이상을 살해했다. 물론 독립운동을 한 사람보다는 일반 양민이 학살되었다.

  독립을 한 이후 두 부족은 크고 작은 학살을 일삼으며 으르렁거렸는데 때마침 후투족 출신 대통령이 탄 비행기가 격추당했다. 후투족은 식민지 지배자인 벨기에가 감싸고돌았던 투치족을, 최후의 1인까지 죽이고자 학살을 시작한다. 이 때 죽은 르완다 국민의 수는 거의 백만 명에 달한다. 나치의 유태인 학살에 비견될 만한 후투족에 의한 투치족 학살에서 살아남은 임마꿀레는 르완다 내전의 상처를 아주 담담히, 객관적으로 증언한다. 이 책은 『광기의 역사』(미셸 푸코)의 완결편이라 할 수 있으며, 『잔혹』(콜린 윌슨)의 속편이라 할 만하다. 인간의 잔혹함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를 보여준 이 책이 감동적인 것은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희망의 빛을 찾아서 앞으로 나아간 대학생 임마꿀레의 진정한 용기 때문이다.



  9. 왕일민/유현민, 『어머니와 함께한 900일간의 소풍』, 랜덤하우스코리아(주), 2007.


  70대 중반에 이른 중국 왕일민 할아버지가 거동이 불편한 100세의 노모를 자전거수레에 태우고 세상구경에 나선다. 마을 바깥으로 나가본 적이 없는 어머니가 바깥세상을 동경하자 그 소원을 들어주려고 작심을 한 것이다. 왕 할아버지가 중국 최북단 탑하에서 출발하여 티베트 라싸 고원까지 3만㎞를 가면서 겪는 온갖 일들을 동행 취재한 유현민 씨가 한 권의 책을 만들었다. 사랑의 힘은 인간을 초인으로 만든다. 왕 할아버지는 말한다. “나는 어머니가 행복해 하시기만 하면 세상 어디라도 좋았다.”라고. 가족 상호간에 살해극이 자주 연출되는 이 비정한 세상에서 ‘효’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주는 눈물겨운 책이다.



  10. 야마오 산세이 지음, 최성현 옮김, 『어제를 향해 걷다』, 조화로운 삶, 2006.


  자연이 보호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내게 일깨워준 책이다. 자연은 그야말로 가장 자연스럽게 있는데 수많은 동물 중 인간만이 자연을 파괴하고 훼손한 폐허 위에다 문명을 건설한다. 태안 기름 유출 사건으로 이 나라 백성은 가슴에 너나없이 시커멓게 기름칠을 했는데 전소된 숭례문의 참담한 모습을 보자니 땅을 치며 통곡하고 싶다. 7200년 된 나무에 반해 야쿠라는 섬으로 가족을 이끌고 이사를 간, 흔히 하는 말로 귀농을 한 야마오 산세이는 나이 서른아홉에 농사꾼이 된다. 이 책은 섬 생활에 대한 세밀한 기록문이기도 하지만 자연 사랑을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실천한 사람의 글이다. 때늦게 농사를 지으면서 자연을 이해하고 자연에 동화되어 가는 과정이 잔잔한 감동을 준다. 소로우는 월든 근처 호숫가에서 2년 2개월밖에 살지 않았지만 야마오 산세이는 그 섬에서 죽었다.



  11. 김구 지음, 도진순 엮고 보탬, 『백범어록』, 돌베개, 2007.


  정치가는 있되 정치가 행해지지 않아 암담하기만 한 이 나라 정계의 모든 사람이 꼭 읽어야 할 필독서이다. 정치가가 『백범일지』와 더불어 이 책을 읽는다면 애국과 애족의 방법론을 알게 될 것이다. 북한의 핵 폐기 선언 이후 남북한 화해의 분위기가 조금씩 조성되고 있는 이 시점에 백범이 주장한 자주독립과 평화통일의 뜻을 다시 새겨볼 좋은 기회가 와 너무 반갑다. 각종 사진자료와 신문기사도 김구선생의 진정성을 알게 하는 좋은 자료가 될 것이다. 김구선생이 생시에 이렇게 많을 글을 썼었다는 사실에 놀랐고, 그의 문장력과 민족 사랑의 정신에 새삼 놀랐다. 선생이 숭례문이 불타는 광경을 보셨더라면 대성통곡을 했을 것이다.



  12. 홍상훈, 『漢詩 읽기의 즐거움』, 솔, 2007.


  한시는 일단 한자로 씌어져 있기에 일반인의 접근을 어렵게 한다. 하지만 이 책은 책명 그대로 한시를 읽는다는 것이 대단히 즐거운 일임을 말해준다. 번역된 한시를 읽어보니 현대시 이상으로 매끄럽다. 특히 그 시와 시인에 얽힌 이야기가 풍부하게 전개되어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었다. 저자는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수많은 서화를 곁들였는데, 이것만 하여도 충분한 볼거리이다. 이 책의 또 하나의 특징은 ‘보충해설’에 있다. 한시의 갈래와 특징 및 역사에 대해 저자가 자상하게 설명을 해주어 이 책 한 권만 읽으면 중국 한시에 대해 정통한 지식을 가질 수 있다. 소동파[蘇軾]가 아내와 사별하고 10년 뒤에 쓴 아래의 시를 보자.


  십 년 동안 이승과 저승에서 서로 아득히 떨어져 있었지만

  애써 생각하지 않아도

  절로 잊기 어려웠소.

  천리 먼 곳 외로운 무덤에 누워

  처량한 심사 하소연할 곳도 없겠구려.

  설사 만난다 해도 알아보기 어려울 게요,

  내 얼굴엔 먼지 가득하고

  귀밑털은 서리처럼 하얗게 변했으니.




  밤이 되어 어둑한 꿈속에서 고향으로 돌아가니

  작은 침실 창으로

  그대는 막 머리 빗고 화장하는 참이더이다.

  말없이 서로 바라보며

  그저 눈물만 하염없이 흘렸지요.

  아마도 해마다 내 애간장 끊어지는 곳은

  달 밝은 밤

  작은 소나무 둘러진 그대의 무덤가이겠지.



  젊은 시절 내도록 고생만 시킨 아내가 죽은 지 10년이 다 된 어느 날, 아내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쳐 이 시를 썼다. 번역이 매끄러워 현대시를 읽는 느낌이다.



  13. T.E. 로렌스 지음, 최인자 옮김, 『지혜의 일곱 기둥』 1, 2, 3, 웅진문학에디션 뿔, 2006.


  20세기 최고의 영웅이라는 칭호를 받아도 될 사람이 바로 ‘아라비아의 로렌스’인 T. E. 로렌스이다. 그는 영국 제국주의의 확산을 뛰어난 지략으로 막은 유일한 영국인이었다. 영국군 장교의 신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라비아의 군대를 지휘하여 막강한 터키와 싸웠고, 침략자 영국을 외교술로 달랬고, 정파간의 끈질긴 내분을 막았다. 아라비아 독립의 영웅이 쓴 이 책은 당시의 외교 관계와 전쟁 상황에 대한 역사서이며, 고고학자의 보고서이며, 모험가의 여행담이다. 하지만 내용이 전혀 딱딱하지 않아서 수월하게 읽을 수 있는 참전용사의 회고록이기도 하다. 이 책을 읽으며 내가 가장 놀란 것은 로렌스의 비상한 기억력과 뛰어난 문장력이었다. 중학교 시절에 <아라비아의 로렌스>란 영화를 70mm 화면으로 보았는데, 이 책을 읽자니 그 영화의 장면들이 떠올라 새삼 감동을 받았다.



  14. 장석주, 『새벽 예찬』, 예담, 2007.


  번잡한 도시를 떠나 자연의 품안에 은거한 은둔자의 사색이 나로 하여금 꼭두새벽에 일어나 찬물로 세수를 하게 한다. 장석주는 내게 날카로운 감식안을 가진 문학평론가, 이 시대의 깨어 있는 지식인의 이미지가 강했는데 이번에 낸 책을 읽고 삼라만상과 물아일체가 된 자연인, 부드러운 글을 쓰는 뛰어난 에세이스트 겸 시인의 면모를 가진 이로 바뀌게 되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그토록 많은 책을 읽고 많은 글을 쓰면서도 유유자적, 자연을 벗삼아 살아가는 작자의 인품과 인격의 향기를 맡으며 그 향기에 취하고 말았다. “제 대표작은 아직 씌어지지 않은 미래의 작품”이라는 지은이의 말도 가슴을 친다. 안성에 내려가 수졸제를 짓고 살게 된 이후 자연을 관조하게 된 것이 아니라 자연의 일부가 되어 살아가게 된 지은이의 생활철학이 잔잔히 펼쳐져 있는 이 책이 널리 읽혀져 도시인으로 살아가는 나 같은 사람에게 많은 깨달음을 전해줬으면 좋겠다.



  15. 김호웅/김해양 편저, 『김학철 평전』, 실천문학사, 2007


  조선의용대 대원으로 사선을 수도 없이 넘었던 독립운동가 김학철은 일본 감옥에서 3년 6개월 동안 옥살이를 했는데 전향서를 쓰지 않아 총상을 입은 다리 치료를 받지 못해 한쪽 다리를 절단했다. 광복 후 일본에서 서울로, 서울에서 북으로(월북), 북한에서 중국으로 가 연변에 정착, 소설가로 활동하였다. 그는 1957년, 중국 당국에 의해 반동분자로 몰려 강제노동형을 선고받는다. 형을 살게 된 지 10년 뒤에 모택동의 개인숭배와 대약진운동, 문화혁명을 원색적으로 비판한 소설 『20세기의 신화』를 써 10년의 징역형을 추가로 받는다. 1957년부터 옥살이를 한 김학철은 1977년, 61세 환갑의 나이에 만기 출옥한다. 이런 참담한 경험을 바탕으로 쓴 그의 소설작품에 못지않게 재미있는 책이 『김학철 평전』이다. 한 소설가의 평전이 이렇게 재미있을 수 있다니, 솔직히 경이를 넘어 경악했다. 이 책은 김학철의 전기이기도 하지만 일제의 한반도 강점기 시대, 중국에서의 독립운동 전개 양상을 생생하게 기록한 실록이다.



  16. 이호신, 『그리운 이웃은 마을에 산다』, 학고재, 2007.


  아직도 이 땅에는 ‘산골마을’이라는 곳이 있다. 문명의 손때가 덜 묻어 공기 좋고, 산천경개 수려하고, 인심도 좋은, 그런 산골 말이다. 평택 진위마을, 양구 송현마을, 삼척 신선고을, 충주 단월마을, 홍성 문당마을, 영덕 옥계마을, 봉화 닭실마을……. 화가이며 글쟁이인 이호신 씨는 전국의 산골마을 30곳을 답사하여 그 마을의 모습을 글과 그림에 담았고,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모저모를 꼼꼼하게 기술했다. 독자는 지은이의 박물학적 지식에 감탄하고, 유려한 문장에 감탄하고, 기층민중의 삶의 모습에 감탄할 것이다. 이미 도시적 삶에 인이 박혀 그곳에 가서는 못 살 나이지만 아, 가보고 싶다, 딱 한 달만 여기서 살아보고 싶다고 마음속으로 외치면서 읽은 책이다. 우리네 삶의 터전을 잘 보살피는 것이 왜 중요한가를 역설한 이 책의 값어치는 무궁무진하다. 책에 가득 풍기는 지은이의 발 냄새 앞에서 옷깃을 여미고 정좌하고 싶다. 지은이는 이 책을 쓸 때 네 가지 지침을 정했다고 한다. 마을에 갈 때는 가능한 한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한다. 반드시 마을에서 먹고 자며, 주민들과 함께 지낸다. 마을에서 화첩을 한 권 이상 충실하게 그린다. 주문이나 청탁에 의한 마을 그림은 배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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