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거*



                                                                   이 월란




성가대 중간 좌석 쯤, 타고난 절대음감으로 소프라노를 든든히 받쳐주던 그녀
알토가 사라졌다
내 또래인 그녀가 강제로 이주당한 새 거주지는
Intermountain Medical Center: 5121 So. Cottonwood St. Murray


꽃을 사러 갔다
꽃들은 세상 밖으로 나가면 바로 시들어 버린다는 걸 아는지
나 같은 사람의 손에 걸린다면, 시들어가는 꼬라지 보기 싫다며
당장 거꾸로 매달려 절정의 순간에 말려진다는 걸 아는지
간택하러 간 나의 시선을 하나같이 외면하며 미동도 하지 않는다


팔려나가는 꽃들의 운명은 단 두 가지
상갓집에 가면 울어야 하고 결혼식에 가면 웃어야 한다
꽃처럼 소리도 없이 잘 울고, 잘 웃는 생명을 본 적이 있었던가
난 가장 우울해 보이는 꽃을 골랐다


수인번호같은 병원 1225호실
악보를 떨어뜨리고 쓰러진 그녀가 휠체어에 앉아 있다
주사바늘에 피멍이 든 손등이 왼쪽 반신과 함께 기억상실증에 걸려 있고
왼쪽 입가에 거품을 물고도 쉴 새 없이 웃으며 얘기를 하는 그녀는
뇌출혈로 중한자실에서 일반실로 온지 하루 밖에 되지 않았다

  
<난 감사해요, 이렇게 살아 있으니까요.>
<아직 나이가 있으니 금방 완쾌될 거예요.>
데리고 간 꽃들은 그녀처럼 웃지도 않고 나처럼 울지도 않는다
사무치는 꽃의 심장을 흥건한 운명 속에 꽂아두고
라스베가스의 호텔같은 야경을 보며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상으로 도망치듯 내려왔다


세속의 아내가 되어, 육중한 건물을 뒤돌아 본 난
젖은 가슴 아래 소금인형이 되어
하이힐 속에 단단히 박은 발목이 녹아내리고 있었다


밤물이 차오른 하늘은 검푸른 저수지 같다
금방이라도 쏟아져 내릴 것 같은 하늘 옥상에
응급 헬리콥터가 하강하고 있다


소돔의 야경 속으로 페달을 밟는 후사경 속에서
나의 반신을 두고 온 거대한 빌딩이
통째로 휴거 중이다

                                                         2008-05-12





* 휴거(携擧) : ꃃ〖기독교〗예수가 세상을 심판하기 위하여 재림할 때
              구원받는 사람을 공중으로 들어 올리는 것.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0499 별 하나 받았다고 강민경 2014.12.07 46
10498 달빛의 노래 / 석정희 석정희 2014.12.06 59
10497 미쳐 버릴 것 같은 일 차신재 2014.12.04 57
10496 천개의 돌과 천개의 나무들이 차신재 2014.12.04 104
10495 어머니와 매운 고추 동아줄 2014.12.04 236
10494 다음 생이 있다면 정국희 2014.12.03 55
10493 겨울비야 김수영 2014.12.03 58
10492 겨울비야 김수영 2014.12.03 82
10491 나는 살고 싶다 김영강 2014.12.03 202
10490 세모(歲暮)에 정용진 2014.12.01 39
10489 일상은 아름다워 성백군 2014.12.01 80
10488 촛불 강민경 2014.12.01 44
10487 <font color=green>동상에게 거수경례를 박봉진 2014.12.01 139
10486 커피 한 잔 이영숙 2014.11.30 100
10485 파이커스 벤자민 김수영 2014.11.29 57
10484 크리스마스와 추억 최영숙 2014.11.28 101
10483 빗겨 가는 예감 노기제 2014.11.27 65
10482 팜트리 김수영 2014.11.26 81
10481 가을 길을 걷다가 오연희 2014.11.26 124
10480 풍선 오연희 2014.11.26 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