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문예 - 물의 길 / 김영교

2017.05.19 08:43

김영교 조회 수:305

물의 길 / 김영교

 

가장 훌륭한 것은 물처럼 되는 것이다.


'물은 온갖 것을 위해 섬길 뿐 그것들과 겨루는 일이 없고

모두가 싫어하는 낮은 곳을 향하여 흐를 뿐이다'.


중국의 철학자 노자의 말이 떠오릅니다. 겨루지 않고 섬기기만 하는 물맛을 아시는지요?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맹물, 그 물맛 말입니다. 요새 생수 바람이 불어 마켓에서도 사서 병물을 마시지 않는 사람이 없고 또 가지고 다니면서 손쉽게 마실 수 있어 얼마나 편한 세상이 되었습니까? 당분이 가미된 음료수나 설탕물 드링크와는 거리가 먼, 한결 같은 무맛의 물맛, 그런 물을 선호하는 현대인의 수가 늘고 있는 것만 봐도 건강에 관심을 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다는 추세입니다.

 

물은 물리는 법이 없고 용해도가 제일 낮아 생명에 직결 되어있다는 보고에 접합니다. 인체의 70%가 물이라고 하니 병이 난 몸은 바로 물주머니가 탈이 난 것이라 봐도 틀린 얘기는 아닌 듯싶습니다. 출혈이나 뼈가 부러지는 것도 다 물주무니가 터진 것이고, 피부가 건조해 탄력성을 잃거나 주름이 생기는 것도 다 수분 부족이라 하니 이래저래 물주머니를 늘 채우는 게 건강관리 첫 관문이라 여겨집니다. 


단물은 쉬 물리기 쉽고 또 쓴맛의 물은 몸에는 이로워도 곧잘 입에서 퇴자를 맞습니다. 옛 부터 군자의 사귐은 맹물 같아야 한다고 일침을 놓았습니다. 변함없는 사람, 잔꾀 피우지 않고 안팎이 같은 맹물 같은 사람에게는 진실성이 있어 이에 가치를 둔 말이겠습니다.

 

물의 속성을 지닌 세상에서 가장 작은 단위, 물 한 방울의 그 시작은 극히 미세하고 연약해 보입니다. 이른 아침 낮은 풀잎에 기대어 반짝이는 작디작은 몸집의 물방울은 보는 이의 가슴을 촉촉한 행복감에 젖어 들게 합니다. 비록 증발할지라도 없어지지 않는 물, 열을 받아 견딜 수 없을 때는 김으로 살아남기도 하고 추우면 얼음으로 피신했다가 녹아서 제자리로 돌아 올 줄도 압니다. 때로는 모여 반사의 힘으로 아름다운 무지개를 띄워 신의 사랑에 참여하기도 합니다. 이렇듯 물의 재롱은 끝이 없습니다.

 

물은 약하지만 모이면 엄청난 힘이 된다는 게 물의 품성이지 않습니까? 바위를 뚫는 낙수는 한 방울씩 지속적인 반복의 힘에서 비롯되는 것만 봐도 그렇습니다. 작고 약한 한 방울, 두 방울의 끈기, 물이 모여서 시작된 실개천은 강의 과정을 거쳐 그 끝은 창대한 바다가 되는게 바로 그렇습니다. 낮은 곳을 먼저 채우는 물을 보면 겸손을 배우게 됩니다. 더럽고 오염된 흙탕물을 안으로, 안으로 가라앉히는 물, 내색 않는 고요한 인내를 배웁니다. 공평하면서도 유연하여 주변을 다 껴안는 물의 넓은 가슴에서는 포용을 배우기도 합니다.

 

때 묻고 냄새나는 마음을 씻어주기도 하는 물은 어머니요, 고향이요, 생명입니다. 물을 마시고 물로 씻고 그 안에 헤엄칠 때 또 그 소리를 듣고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고 편안해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인간의 모천은 바로 자궁안의 물주머니이기 때문입니다. 물을 마시면서, 이슬방울을 바라보면서 그 입자 한 개 한 개 빛을 받으면 우주와 교감하는 안테나로 작동하는 게 신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주식이 날아가고 집이 날아가는 요즘같은 불경기에 물의 습성을 배우고 싶을 때가 많습니다. 스트레스 무게가 힘들어도 흐르기를 멈추지 않는 강물이고 싶고, 껴안을 수 없는 곤혹 상황마저 껴안으며 함께 흘러가고 싶은 지금이 우리 모두의 어려운 현실 형편 아닙니까?

 

성서에 있는 물을 통한 아름다운 예화 하나 소개합니다. 옛날 수가성이라는 우물에 그것도 땡볕 대낮에 물 길러 왔던 한 여인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고 왔던 물동이를 내 팽개치고 마을로 달려가 방금 만난 메시아를 증거 한 사건이었습니다. 이 여인이 찾은 목마르지 않는 물 역시 물방울의 집합체 생수가 본체입니다. 상징적인 물이긴 합니다만 물론 눈에 보이지 않는, 다시는 목마르지 않는 말씀물을 은유화한 현장입니다.

 

한때 저 자신도 갈증의 언덕을 헤맨 적이 있었습니다. 응달의 제 삶이 가장 연약한 때 였고 그때 생수를 만나게 되었고 그 생수를 마시면서 눈이 뜨여 드디어 눈을 떴습니다. 깨달음으로 이어지면서 엉기고 부딪치며 더 크게 솟았다 합치며 이제 떼 지어 덮쳐오는 파도가 되어 기도의 해변을 출렁입니다. 가장 작은 입자인 물방울과 인간의 심장이 교감하면서 세상은 더 살기 좋은 곳, 선함과 아름다움으로 환해지는 기쁨을 경험케 했습니다. 지상에 있는 바로 작은 천국의 모형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 세상이 당신에게도 올 것을 믿습니다.  나름대로 혼자 감당하기에는 벅찬 이 기쁨을 나누도록 용기와 응원을 아끼지 않는 생수에의 초대를 시도 합니다. 기도의 동역자들이 있어 기도의 심천(心泉)은 지속적으로 솟아 흐를것을 확신합니다.

 

약하고 약하고, 부족하고 부족하여 늘 허기진 제 삶이 었습니다. 흔들릴 때면 말씀의 물가에 가서 갈증을 해결 받았습니다. 물을 마시고 물로 씻을 때 영혼의 뒤꿈치까지 청결해짐의 체험, 이 특이한 환희를 물방울의 투명함으로 고백합니다.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맹물이 바로 예수라는, 더 기막힌 사실은 '거저' 라는 데에, '공짜'라는 데에, 더 놀라운 은총이 숨어있습니다. 이런 맹물 마시고 싶지 않으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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