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구경과 모란이 피기까지는 / 김영교

 

서울 방문 때 주신 큰 오라버니 선물가방에는 이외수의 책, 구상 시선 집과 건강식품 그리고 장사익의 CD ‘꽃구경’이 들어 있었다.

 

김용택 시인이 쓴 시 ‘이게 아닌데’를 불러 시의 묘미를 극대화시킨 소리꾼, 장사익을 가깝게 하다가 나도 모르게 그만 흠뻑 빠져들었다. 그의 대표작 ‘찔레꽃’은 국민가요처럼 모두가 즐겨듣고 흥에 취해 함께 흥얼거리지 않는가. 애잔함이 흐르는 노래들, 친숙해져있는 곡과 노래 말, 부담 없이 다가와 행복한 한 마당을 펼쳐준다.

 

새로 가담한 장사익 시리즈에 오라버니 선물 꽃구경 CD, 한곡한곡 듣는데 그 안에 들어있는 노래 ‘꽃구경’에 가서 내 아린 가슴이 더 절절해 지기 시작했다.

‘어머니 꽃구경 가요

따뜻한 봄 날 어머니는 좋아라고

아들 등에 업혔네‘

미국에 유학 온 나는 영주권이 없어 어머니 임종을 못 봐드린 불효여식이었다. 그래서 가슴에 남아있는 회한이 남다르다. 고교동창 남도 산사 순례가 있었던 지난 4월 섬진강에 흐드러지게 꽃비 내리던 벚꽃을 떠올리며 눈가가 하염없이 젖어들었다. 어머니는 가고 없고 어느 듯 어머니 자리에 와 있는 나를 발견하고 목이 매 이던 꽃구경이었다.

 

처음 노래를 시작할 때부터 그랬듯이 장사익은 호소력이 대단했다. 인생의 후반전을 아름답게 꽃 활짝 피우는 그의 창법, 독보적인 뛰어난 독창력으로 흥을 발산하는 대단한 소리꾼이다. 듣는 사람은 공명하며 함께 범벅이 되기에 누구나 그를 명창이란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미국 뉴욕, LA, 가는 곳마다 전석매진을 한 기록만 봐도 증명이 된다. ‘꽃구경’이 꽃피는 봄 날 미주로 날아와 펼친 뉴욕공연은 이민의 서러움을 달래는 위로차원에서 성공을 거두었다는 가슴 흐뭇한 신문기사를 읽고 기뻤다.

 

‘꽃구경’ CD에는 삶과 죽음을 분리하여 보지 않는 장사익의 관조적 태도가 깔려있다. 시공을 휘여 잡은 듯 교감과 대화로 이어가면서 가슴을 울리는 감동의 경지로 청중을 몰고 간다. 장사익의 에너지는 청중의 심혼을 매료시키는 소리를 내어 청중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삶, 죽음, 이별, 사랑을 온 몸으로 절절하게 토해내는 그의 열창은 언어와 목소리가 다른 문화권에 사는 외로움이나 서러움을 같이 흐느끼며 달래며 용감하게 일어서야 한다고 다그치는 힘, 그 자체였다. 가슴을 흔드는 공감대는이국땅에 쓰러져 흐느끼는 사람 들풀, 들풀의 손을 잡고 또 그 옆의 들풀이 서로를 일으켜 세운다. 이렇듯 장사익의 노래는 우리 모두가 사랑할 수밖에 없는 상생인 것이다. ‘돌아가는 삼각지’, ‘동백아가씨’, ‘장돌뱅이’, ‘봄날은 간다’ 등등 장사익의 특유의 감성으로 재해석, 그래서 많은 이들이 그의 노래를 통해 위안을 받기 때문에 공연도 그의 CD도 인기 높다 믿어졌다.

 

그의 노래에서 삶의 희로애락을 발견한다. 우리 자신의 얼굴과 닮은꼴을 찾을 수 있는 폭 넓은 공감대가 바로 그 해답이다. 그 뿐인가, 장사익은 태풍이 지나간 자리, 허허망망 바다에서도 겨자씨 한 톨 같은 희망을 건저 올려 ‘하늘가는 길’에서 조차 낙관주의를 지향해줘 여간 고맙지가 않다.

 

특혜처럼 나에게 다가왔다. 그의 소리가 새벽에 길어 올린 샘물처럼 청신하고 강한 생명력으로, 국경과 언어를 초월해 내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다. 바로 나의 아픈 체험이 그의 노래에서 걸러져 우주를 관통하는 차원 높은 정화과정에 절절히 공감, 그리하여 치유의 시 발아가 가능, 나는 회복되고 있었다. 외롭고 답답한 삶을 사는 아픈 나에게 ‘힘 내’ 뜨거운 응원가로 들려왔기 때문이다. 바로 음악치료였다.


6권의 나의 시집 표지를 그려준 초개 김영태* 화백이 72세로 세상을 떠났을 때 장사익은 강화도 전등사 수목장에 조가 ‘찔래꽃’을 헌화했다. 상상해본다. 초록 숲속에서 흰 두루마기의 장사익은 한 마리 학이 되어 초개를 하늘나라로 배웅해 드렸을 것이다. 전설 같은 실제 그림 한 폭이었다.

 

오늘 병원을 다녀왔다. 이마를 짚어주는 어머니 손길 대신 장사익의 ‘꽃구경’이 다가왔다. 나를 글썽이게 하는 그 시간 안으로 깊이 침잠한다. 가끔 이런 나를 나는 사랑한다.

 

2017년 제 62회 현충일 추념식 소식이 있다. 국립국군묘지는 나라 대통령도 참석한 자리, 흰 두루마기를 입은 소리꾼 장사익이 이 현충일 추념식에서 나라를 위해 꽃처람 진 영령들에게 힘찬 위로를 전했다. ‘모란이 피기까지는’를 열창하여 보는 이들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찬란한 슬픔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김영랑 시인의 시 ‘모란이 피기까지’를 국악 리듬 소고와 해금 반주에 맞춰 애절하게 불러 주위를 숙연케 했다는 뉴스를 접한다. 노가수의 눈물을 훔치는 모습이 감동을 선사했다는 소식은 더없이 뭉클했음을 부연해둔다.

 

*김영태화백은 큰 오라버니의 친구99A3A8335A16A555245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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