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05.06 13:39

밤에 피는 꽃

조회 수 684 추천 수 1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세상 모든 꽃들이 기억으로 남는 절차가 떠오른다. 꽃이 누가 보거나 말거나 악착같이 독존하는 붙박이 코닥컬러 사진일 수는 없지 않은가. 꽃은 보는 것과 보이는 것들의 노예인 우리가 잡고 늘어지는 현존의 복사체. 보고 싶다, 보고 싶다, 하며 당신이 주문처럼 뇌까리는 꽃의 복사체는 죽었다 깨어나도 실존이 아니야. 미안하다. 실존은 기억 속에서만 살아난다. 소중한 순간순간들, 부질없는 역사를 소리 없이 기록하는 꽃이 내 전부일 것이다. 꽃은 추억의 블랙 홀 속으로 완전히 흡인돼 버렸어. 저 아프도록 아슬아슬한 장면장면들. 밤에 피는 꽃은 생각지도 않던 어린 시절 불알친구와 꿈에 나누는 대화다. 반세기 전쯤에 야, 이놈아! 하던 친구 모습이 떠오르네. 밤에 피는 꽃은 한 순간 찌르르 당신 코 밑으로 부서지는 향기가 아니야. 밤에 피는 꽃은 망각 속에서 후루루 돌아가는 영상이다. 끝내는 약속처럼 잊혀지는 몸짓이다. 꽃 한 송이가 비단이불을 턱까지 덮고 죽은 듯 편안하게 누워있네. 잠간 숨을 몰아 쉬면서 오른쪽 팔을 좀 움직였을까? 지난밤 머리를 두었던 곳에 발이 두 개 놓여 있고 발바닥을 대담하게 수직으로 세웠던 자리에 커다란 머리가 옆으로 얹힌 아침이 밝아오네. 간밤에 어디 바람이 심하게 부는 세상을 쏘다니다 왔구나! 머리가 쑥밭이 된 낯익은 얼굴. © 서량 2005.03.18 (문학사상, 2005년 5월)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946 나뭇잎에 새긴 연서 강민경 2016.07.16 204
945 너의 유혹에 빨려드는 나 - 필재 김원각 泌縡 2020.06.12 204
944 돌배나무 꽃그늘 속에서 성백군 2013.03.30 205
943 그대 품어 오기를 더 기다린다지요 유성룡 2008.02.25 205
942 차원과 진화 - Dimension & Evolution 박성춘 2012.01.28 205
941 인사(Greeting)의 중요성 박성춘 2012.04.19 205
940 풍성한 불경기 강민경 2015.04.10 205
939 행복하다 / 필재 김원각 泌縡 2020.01.11 205
938 남은 길 1 헤속목 2022.01.26 205
937 전지(剪枝) 성백군 2007.01.18 206
936 바위산에 봄이 강민경 2013.04.10 206
935 미음드레* 이월란 2008.04.28 206
934 억세게 빡신 새 성백군 2013.11.21 206
933 밤비 하늘호수 2016.06.10 206
932 면벽(面壁) 하늘호수 2016.06.21 206
931 그만큼만 작은나무 2019.05.15 206
930 사모(思慕) 천일칠 2005.04.26 207
929 불멸의 하루 유성룡 2006.03.24 207
928 첫눈 (부제: 겨울 나그네) 강민경 2008.04.06 207
927 등외품 성백군 2014.01.06 207
Board Pagination Prev 1 ... 62 63 64 65 66 67 68 69 70 71 ... 114 Next
/ 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