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기 오던 날(1) / 정찬열
2011.11.14 08:02
우장을 둘러쓴 나는 삽자루를 들고
논배미로 뛰어가는 중이었다
장대비 쏟아지는 신작로에
토란 잎 하나 달랑 받쳐 들고 한 처녀가 뛰어갔다
거센 비바람에 떠내려 갈 것만 같아
그녀를 불러 세웠다
비에 젖어 굴곡이 드러난 그녀를
차마 바로 볼 수 없었다
나는 우장을 벗어 여인에게 입혀주며
-언능, 언능 가세요-
잠깐 머뭇거리더니 우장을 여미며
온몸으로 고맙다는 말을 하듯 천천히 걸어갔다
가다가 뒤돌아보기에
어여, 어여 가라고 손짓 했다
그녀가 수줍게 손을 흔들었다
바람이 그녀를 떠밀었다
금빛 왕골 우장을 입은 여인은
소실점이 되었다가
모퉁이를 돌아 사라져 갔다
산 넘어 무지개 뜰 때까지
열다섯 살 소년은 그 자리에
못 박혀 서 있었다
감자밭에 감자꽃이 흐드러지고
감자 두룩에 금이 쩍쩍 벌어지는것이
땅속 감자가 오지게도 여물어가는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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