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바위 살랑바람 / 홍영순
2012.11.12 05:38
나무들이 우거진 동산 꼭대기에 커다란 모자를 쓴 사람이 서 있어요.
이 모자 쓴 사람은 옆 동네에서도 보이고, 멀리 지나가는 차에서도 보입니다. 머리칼에서 연기가 날 만큼 뜨거운 여름에도, 눈이 쌓이고 쌓여서 산이 눈 속에 파묻혀도 이 모자 쓴 사람은 산 위에 서 있어요.
어떻게 이 사람은 날마다 산 위에 서 있을 수 있느냐고요?
이 사람은 모자 쓴 사람을 꼭 닮은 바위니까요. 그래서 산 이름이 모자산이고, 바위 이름도 모자바위입니다. 동산 밑에 마을 이름까지도 모자리입니다.
이 모자산 모자바위 모자 속에 바람가족이 살고 있어요.
아빠바람, 엄마바람, 아기바람, 이렇게 세 식구입니다.
아기바람 이름은 '살랑' 입니다.
“살랑아!”
“예.”
“오늘도 엄마아빠는 멀리로 일하러 가니까 넌 집 근처에서 놀아라. 나쁜 짓 하지 말고 착하게 놀아야한다. 알겠니?”
“나도 엄마아빠처럼 일하고 싶어요.”
“그럼 이 동산에서 네가 할 수 있는 착한 일을 찾아보렴.”
“착한 일이 뭔 대요?”
“네가 누군가를 기쁘고 행복하게 하면 착한 일이고, 네가 누군가를 슬프고 불행하게 하면 나쁜 일이야.”
“예, 알았어요. 내가 친구를 웃게 하면 착한바람이고, 내가 친구를 울게 하면 나쁜 바람이지요?”
“그래. 역시 우리 살랑이는 참 똑똑해.”
“엄마아빠는 오늘 무슨 일을 하러 가요?”
“응, 오랫동안 비가 안와서 산과 들이 많이 말랐어. 그래서 오늘은 비구름 데리러 먼 바다에 갔다 와야 해.”
“비구름 몰고 오려면 힘들지요?”
“이렇게 가물 때 비 오면 모두 웃을 테니까 착한일이지? 착한일 하면 힘들어도 행복해.”
“아~아, 착한 일 하면 행복해지는구나!”
“그래. 우리 오늘 착한 일 하고 행복하자.”
엄마아빠바람이 일하러 가자 아기바람 살랑이도 모자 속에서 나왔어요.
“으~음! 꽃향기!
동산에는 철쭉꽃과 조팝꽃이 피고 찔레꽃도 피었어요. 각시붓꽃, 깽깽이풀꽃, 양지꽃, 둥글레꽃, 괭이눈꽃, 애기똥풀 꽃도 피었어요.
살랑이는 꽃이 떨어질세라 조심조심 꽃구경을 다녔어요.
“살랑아, 살랑아!”
하얗게 꽃이 핀 조팝나무에서 쪼그맣고 예쁜 벌새가 불렀어요.
“벌새야! 왜?”
“그네 태워줄 수 있니?”
“그네? 어떻게 그네를 태워주는데?”
“내가 가지 끝에 앉을게 네가 흔들어줘.”
“그거 재미있겠다. 내가 그네 태워 줄게.”
살랑이는 조팝꽃 가지 끝에 앉은 벌새를 살랑살랑 흔들어줬어요.
“하르르르 하르르르!”
“귀여운 벌새야, 너 지금 웃는 거니?”
“응, 너무 재미있어서 하르르르 웃잖아.”
“벌새야. 너 정말 귀엽다. 어쩜 그렇게 재미있게 웃니?”
벌새가 재미있게 웃자, 살랑이는 행복했어요.
살랑이는 벌새와 헤어져 다시 꽃구경을 다녔어요.
“살랑아, 살랑아!”
“응? 누가 날 불렀니?”
“나야, 노랑나비. 여기 괭이눈꽃에 앉았어.” “어머? 노랑나비가 노란 꽃에 앉았으니까 안 보이지! 너 아기나비니?”
“응. 이슬에 날개가 젖었어. 좀 말려줘.”
“나비는 날개가 말라야 날 수 있지? 내가 도와줄게.”
살랑이는 살랑살랑 노랑나비 날개를 말려줬어요.
“고마워. 이제 내 날개가 다 말랐어!”
노랑나비는 노란 날개를 팔랑팔랑 흔들며 살포시 날아올랐어요.
“와, 예쁘다! 정말 예쁘다! 내 등에 업혀. 넌 아기니까 내가 업어줄게.”
살랑이는 노랑나비를 업고 살랑살랑 꽃구경을 다녔어요.
“나리리리! 나리리리! 꽃들이 참 예뻐!”
“노랑나비야. 너 지금 웃고 있니?”
“응, 나 지금 나리리리! 웃잖아.”
“많이 웃어라. 네 웃음소리 정말 예쁘다!”
살랑이는 아기노랑나비가 웃으니까 행복했어요.
저녁때 엄마아빠 바람이 모자바위로 돌아왔어요.
“살랑아, 오늘 행복했니?”
“예, 아기나비와 벌새가 행복하게 웃었어요. 그래서 나도 행복해요.”
“우리아기 참 잘했다. 우리도 동해바다에서 비구름을 몰아왔어. 오늘 밤 비가 내리면 모두 웃을 거야. 그래서 우리도 행복하다.”
“야아, 우리식구는 모두 착한바람이다!”
살랑이는 엄마아빠랑 모자바위 모자 속에 포근히 잠들었어요.
“살랑아, 오늘도 집 근처에서 잘 놀아라. 멀리가지 말고.”
“엄마아빠는 오늘 뭐해요?”
“엄마는 바닷가에 가서 널어놓은 생선을 말려야지. 파리를 쫓으며 꼬들꼬들 잘 말려야 어부들이 돈을 많이 받고 팔 수 있거든."
"아빠는 염전에 가서 소금을 만들 거야. 소금이 있어야 사람들이 음식을 맛있게 만들거든.”
“나도 오늘은 마을에 가서 사람들 웃게 하고 싶어요.”
“마을? 그럼 동산 밑 모자리에 가봐. 더 멀리는 가지 마라.”
“알았어요, 오늘은 모자리만 가볼게요.”
엄마아빠 바람이 바닷가로 떠나자, 아기바람 살랑이는 마을로 내려갔어요. 그런데 집집마다 사람들은 없고 강아지들이 집을 지키고 있었어요.
“멍멍아, 사람들은 다 어디 가고 네가 집을 지키니?”
“살랑이구나! 사람들은 논과 밭으로 일하러 갔어.”
“아기들은 어디 있니?”
“아기? 요즘은 시골에 아기 없어. 젊은 사람들이 다 도시로 갔거든.”
“난 아기가 보고 싶은데.”
“아참, 아기가 있다. 이 동네 맨 끝에 가봤니? 그 집에 세 살 된 남자아기가 있어. 할머니가 기르셔.”
“아빠엄마는 어디가고 할머니가 기르셔?”
“서울로 돈 벌러 갔대.”
“엄마아빠가 없으면 아기가 슬프겠다."
"그렇겠지? 엄마가 많이 보고 싶을 거야."
"멍멍아, 나 아기 보러 갈게. 다음에 또 만나자.”
살랑이는 강아지와 헤어져 마을 끝집으로 갔어요. 때맞춰 아기가 할머니 랑 밖으로 나왔어요.
“할머니, 꽃 예쁘지?”
“그래. 봄산아! 천천히 가. 넘어질라.”
“빨리 와. 할머니!”
할머니가 마당가 배나무 밑에 돗자리를 깔았어요. 하얀 배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꽃등을 킨 것처럼 배나무 밑이 환했어요.
“할머니, 과자 먹어.”
아기가 과자 하나를 할머니 입에 쏙 넣었어요.
“참 맛있다. 너도 먹어라.”
할머니도 과자 하나를 아기 입에 넣어줬어요.
아기와 할머니를 보고 있던 살랑이가 배나무로 올라갔어요. 살랑이는 예쁜 꽃 잎 몇 개 따서 아기와 할머니에게 뿌려줬어요.
아기가 웃으며 배나무를 올려다봤어요.
“할머니, 바람이 꽃 줬어.”
“살랑바람이구나!”
“살랑바람?”
“그래, 이렇게 꽃이 예쁘게 피면 살랑바람이 놀러 온단다.”
할머니도 하얀 배꽃을 살며시 뿌려주는 살랑이를 보며 웃었어요.
<중략>
온 천지가 꽃향기로 달콤한 날입니다.
모자바위 모자 속 살랑바람이 아기네 집을 찾아왔어요.
"어? 아빠가 왔나보다!"
배나무 밑 돗자리에는 할머니와 아기와 아빠가 있었어요. 그때 집에서 아기엄마가 갓 쪄낸 야들야들하고 파란 쑥떡을 들고 나왔어요.
"아기 엄마다! 아기 엄마도 왔어! 엄마아빠가 다 왔어!!!"
살랑이가 풍경한테 날아가며 소리쳤어요.
“살랑아, 아기 아빠엄마가 다시 시골에 와서 살기로 했어. 잘 됐지?"
풍경도 좋아서 웃으며 말했어요.
"아주 잘 됐다. 이제 아기도 행복하겠다."
“지난번 불났을 때 아기랑 할머니가 위험했잖아. 아기 엄마아빠가 와서 많이 울었어.”
“그래, 가족은 같이 살아야 행복한 거야.”
살랑이는 너무 좋아서 배나무로 올라가 춤을 췄어요. 꽃눈이 내리듯 배꽃이 하얗게 떨어졌어요.
“엄마, 살랑바람이 꽃 줬어.”
아기가 두 손으로 하얀 꽃잎을 받으며 생글방글 웃었어요. 아빠도 엄마도 할머니도 배꽃처럼 환하게 웃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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