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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엔젤이 남긴 빈자리 - 김영교 

 

소미 ‘아부지’는 경상도 남자다. 이 주택단지 안에서 동향인 소미네와는 각별하다. 음식 솜씨 좋은 소미엄마는 투병경력의 나에게 곰국, 설렁탕, 김치, 녹두죽, 닭고기 볶은 밥, 등등 늘 음식을 식기 전에 가져다준다. 어느 날 가디나에 있는 오픈 뱅크 한인 거래처에서 소미 아부지를 우연히 l만났다. 반가웠다. 오랜만인지라 비 피해는 없었는지 인사를 나누었다. 은행에도 고객 우대커피가 있고 바로 옆이 커피숍이었다. 속으로 끝내고 커피 대접해야지...

9개월짜리 엔젤이 낯선 차에 치어 숨을 거둔 게 딱 2주 전인지라 혼자서 심힌 가슴앓이를  하면서 외출도 않고 많이 우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남편에게는 더 없이 좋은  데라비스트로 였다. 재롱을 피우다가 속마음을 알아차리고 늘 손 가까이서 잠들었다. 불임수술까지 시켰을 때는 둥글고 큰 콘 고깔을 쓰고 힘들면서도 그 불편을 잘 참아줬다. 6주 오비디언스 스쿨에도 잘 적응, 훈련받으며 아프고 가려운 상처도 잘 감내했다. 완전 신뢰가 쌓여 서서히 가족이 되었다. 졸졸 따르고 눈 마주치던 절대 순종의 엔젤이 가고 지금은 없다. 가여워서, 가여워서 가슴 한 복판이 에인다. 눈치 없는 눈물은 시도 때도 없다. 둘다 다 가고 없는 빈집에 말 붙일 따뜻한 체온이 없는데  실내 화초만 싱싱하다.

코 암으로 투병중인 손아래 친구가 사정하고 설득해 자기아들의 꼬맹이 어린 녀석을 아픈 남편에게로 입양시켜 엔젤이 되었다. 태어나서 3개월, 남편과 3개월, 그리고 나와 3개월, 엔젤하고 인연은 그게 다인가!` 아들이 알면 기절할 것 같다며 비밀로 하자고 우리는 울면서 서로 위로하고 제안에 응했다. 남편은 로스힐 스카이 채풀 고별예배를 마지막으로 지상을 떠났다. 엔젤은 pet cemetery에 안장되었다. 나는 친구의 코 암 덩어리를 가지고 가줄수 있느냐고 물으며 부탁하며 쓰담고 또 쓰담으며 가슴저미는 안타까운 작별을 했다.

이웃 친구 남편 소미 아부지를 우연히 만나 반가웠다. 우리 집 반려견 엔젤 소식을 전하고 위로의 말을 듣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 무거운 나는 가벼워지고 싶었나 보다.

엔젤은 시바 이누 종자다. (Shiba Enu) 조상에 진돗개 피가 흐른다 했다. 의사가 스피치 테라피스트(speech therapist)로 추천했을 때 긴가민가했다. 영리한 3개월 어린 녀석이 비상하게 민첩했다. 눈짓, 손짓, 소리짓,  "짓"으로 남편은 소통했다. 처방약 후유증으로 성대와 기도 근육이 무기력, 실날 목소리로 엔젤하고는 척척 의사소통이 가능했다. 남편 오른 팔 옆에서 코박고 잠든다. 앵무새나 열대어, 고양이나 강아지가 데라피스트가 될 수 있다는 것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 남편을 잘 보필한 엔젤, 고마웠다. 남편이 남긴 그 엄청난 그비움에 눌려 늘브러 질수 밖에 없었던 극한 상황에 놓였다. 체온있는 어린 생명이 끙끙대는 통에 물도 주고 밥도 주고 뒷뜰 문도 열어주고... 엔젤은 그렇게 나를 침대에서 일으켜 세웠다. 그렇게 사명을 다한 엔젤이 었다.

엔젤이 사고로 떠난 후 남긴 많은 장난감과 흔적들이 나를 집안에 가두었다. 그 무렵이었다. 젖은 우기가 가시고 모처럼 은행 외출에서 소미 아부지를 만났으니 반가울 수밖에.

커피 할래요? 커피 방금 마셨는데요. 소미 아부지와 커피 마시는 동안만이라, 대화 나누는 동안 만이라도 엔젤 생각을 내려놓고 싶었나보다. 소미 어무이는 세상 상냥나긋녀인데 아차, 그는 전형적인 갱상도 남자, 무뚝뚝함이 재확인 되었다. 은행직원들 앞에서 약간 무안당한 커피타임 좌절이 기억에 있다. 그 한 마디를 능가하는 엔젤과의 좋은 추억이 되살아난다. 고마운 엔젤 얘기는 내 가슴 속 저 깊은 곳에서만 간직되어 피고 또 핀다 곱게...

중앙일보 이 아침에 3-14-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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