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목발과 함께한 통금의 날들 김영교

김영교 / 시인선 065.JPG
이태영 작품/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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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중앙일보] 발행 2020/06/08 미주판 18면 기사입력 2020/06/07 14:15

 

 
9주에 걸쳐 불편한 목발 탈출이 가능했다. 순한 아이처럼 착하게 누워만 있는 동안 욕창도 찾아왔다. 욕창이 영어로 ‘bedsore’라는 것도 이번에 배웠다. 그 심한 통증을 겪으며 배운 단어이니 잊을 리 없게 됐다.

운전면허 시력 미달이라 4월 생일(면허증 만기일)되기 전에 백내장 수술이 불가피했다. 왼쪽 눈은 3월 17일, 그 주말 코로나 사태가 커졌다. 오른쪽 눈 수술은 4월 14일 바로 내 생일 날이었다. 그동안 코로나는 창궐했고 CNN 방송 경청하느라 바빴다. 다시 6월 4일, 마스크 착용, 6피트 거리두기, 집콕 등은 계속됐다. 그뿐인가. 코로나에 더 보태 경찰 폭력에 의한 흑인 사망, 통행 금지령, 상가 약탈 등 세상의 아우성은 설상가상이었다.

다급한 이웃을 보고 들으면서도 저들의 아픔보다 나의 저린 다리와 늦은 시력 회복이 더 걱정이었다. 내 손톱 밑 통증이 나에게는 더 절실했고 급한 것이 미안했다. 글쟁이가 글을 읽을 수가 없다. 처방약 작은 글씨는 확대경이 도와준다. 카톡도 이메일도 볼 수가 없다. 이게 나의 현주소이다.

6월 말에 생일을 맞는 친구의 부음을 6월 초 오늘 들었다. 신장암 투병 중이었다. 손아래 친구 사라 엄마랑 자주 문병을 갔다. 남편이 기원에 가는 오전이면 그 친구를 방문, 기도도 하고 음식도 나누며 이것저것 도와 왔다. 떡을 좋아하는 친구를 위해 장도 봐주고 LA행복떡집의 떡을 사다 날랐다. 친구는 행복해했다.
그날은 집안을 치우다 김치냉장고 위 타월에 감긴 친구 남편의 무거운 웨이트 하나가 굴러 떨어져 내 왼 발등을 부러뜨렸다.  2번 3번이었다. TM병원 응급실, 그게 9주에 걸친 목발 사건이었다.사라 엄마는 현장 증인이라 놀라 병원 운전을 도맡아 해줬다. 자기 집에서 일어난 이 사고를 친구도 친구 남편도 아직 모른다. 알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못 가본 그동안 친구는 신장암이 악화되어 오늘 떠났다는 통보를 받은 것이었다. 가슴이 서늘했다. 마음의 눈물샘은 ‘측은타’ 와 '안됐구나’를 쏟아내며 안식을 빌었다.

안과를 다녀왔다. 망막 황반 변성 현상이라 시력회복이 늦다고 했다. 그간 운동 부족이었다. 누워만 있으니 입맛도 의욕도 멀리 나들이 갔다. 몸도 마음도 유연하지 못한 것, 노화현상 아닌가, 목발 9주면 충분했고 외려 감사할 일 아닌가. 그게 9개월이 아니었고 긴긴 9년이 아니어서 말이다. 71세 생일을 앞두고 성경반 리더였던 그 친구는 고통없는 곳으로 떠나갔다. 모두 예측하지 못했다. 난 아직 남은 자 자리에서 참을 만한 불편과 고장난 몸 구석구석 부품을 점검, 수리할 수 있어 여간 고맙지가 않다. 10명의 장례 참가자 그리고 6 feet 거리두기, 헌화 그리고 코로나 눈 부릅뜬 고별식 이라니 가슴이 짠해진다. 생명이 약동하는 싱그러운 6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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