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은숙-붉은비
2021.06.02 20:28
붉은 비
현은숙
늦은 사랑이 해풍 위에 말없이 떠 있다
꽃잎들은 엎드린 채
몸을 흔들어 침묵을 가르고 있다
나 왔어
엄마가 여기 온 이후로
난 눈물이 안 나
햇살이 들고 있는 창 앞에 앉아
“따스해서 좋다 나 이럴 때 행복해”하던
혼자 말은 혼자서 가버렸다
“행복해” 가 환청으로 들리기 시작하면
댐의 수위가 높아졌다는 말이다
길에는 분홍 꽃들이 나와 딩굴 뎅굴 굴러다니고,
모양내는 것도 때가 있어
차리고 다녀라 하던 말이 떠올라
미장원으로 갔다
머리를 헹구고 의자에 앉았다
거울 속 한구석, 벌레가 날고
낯익은 얼굴과 마주쳤다
젖은 눈으로
붉은 비가 내렸다
둑이 터지고 강물이 넘쳤다
나를 완강히 저지하던 경계의 거울이 물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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